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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수도인 아바나는 원래 쿠바 전체 인구의 약 20%가 거주하는 카리브해 최대의 공업도시였습니다.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쿠바는 7%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정도로 경제가 좋았는데요. 하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생각지도 않았던 위기가 찾아옵니다. 쿠바 전체 수출입 물량의 80%를 차지하던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차례로 붕괴된 것이죠. 소련의 원조가 줄어든 것에 이어 미국의 정치경제적 봉쇄가 겹치면서 쿠바 경제는 그야말로 마비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공장은 폐쇄되고 실업자가 넘쳐났죠.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식량이었습니다. 당시 쿠바는 식료품의 6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는데요. 교역이 마비되자 식량난이 닥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민들의 평균 몸무게가 9kg이나 줄었고, 나쁜 영양 상태 탓에 전염병마저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최악의 위기를 아바나는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그 답은 바로 도시농업에 있었습니다. 쿠바 정부는 "도시 내의 미경 작지는 모두 없앤다"는 격문을 발표하면서 공업도시에서 농업도시로의 변신을 천명합니다. 아바나의 도시농업 추진단계는 크게 3단계로 볼 수 있는데요. 첫 번째 단계는 도시농업을 위한 토지개혁이었습니다. 기존 사회주의 대농장체제 대신 개인과 협동조합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토지를 분배하는 개혁을 단행한 것이지요. 토지 개혁 전에는 국가직영농장 비율이 80%를 넘었지만, 개혁 후에는 협동 농장과 개인 농장의 비율이 80%로 늘어납니다. 그리고 개인에게 대여된 토지는 개인 마음대로 농사를 지을 수도 있고, 수확한 농산물을 판매할 수도 있게 했습니다. 그 결과 도시 곳곳에 농지가 늘어나게 되었죠. 시민들에게 농업을 장려하기 위해 사회주의 시스템에 자본주의 시스템을 적절히 융합한 셈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친환경농업을 위한 환경 정화입니다. 환경이 살아나지 않으면 사람도 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아바나는 '녹색도시 만들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매년 250만 그루의 나무를 거리에 심었죠. 또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던 도시 한가운데 7ha에 이르는 산림을 조성하고, 하천을 복원시켜 스트레스가 많은 도시민들에게 휴식처를 제공했습니다.
마지막 단계는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농업 장려입니다. 아바나의 토양은 아열대성 토양으로 유기물 함량이 1% 이하인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열대농업 기초연구소를 중심으로 농약 없이도 농산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유기농업기술을 개발하고 농민들에게 전파했습니다. 또, 연구원들과 농민들이 의견 교환을 원활히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고, 각 마을마다 '컨설팅 샵'을 설치하여 농업에 필요한 지식과 도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아바나는 완벽한 농업도시로 거듭났습니다. 아바나 면적의 40%, 7만 3천 ha의 토지가 농지로 바뀌었고, 210만 명의 시민 모두가 먹어도 남을 만큼의 신선한 유기농 채소를 도시 내에서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바나의 도시농업은 아바나 시민들의 식량난 해소는 물론 시민들의 건강도 회복시켰습니다. 각 가정에서 채소를 기르고, 직판장에서 신선하고 깨끗한 채소를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감자, 고구마 등의 채소 중심의 식사를 하게 되었죠. 식습관의 변화는 시민들의 건강증진으로 이어졌습니다. 쿠바 국민 1인당 의료 지출비는 미국의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참으로 놀랍지 않으십니까?
한편, 아바나의 도시농업은 관광산업과 연결되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데요. 웰빙도시가 된 아바나를 보러 온 사람들로 관광산업은 매년 15%씩 성장하고 있으며, 이는 외화수입의 40% 이상을 차지합니다. 지금까지 아바나의 녹색혁명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경제봉쇄라는 위기에 빠진 아바나의 생존전략이었던 '도시농업'은 단지 '도시의 농촌화'가 아닙니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혁신 모델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자연이 살 수 있는 곳에 인간도 살 수 있다는 아주 간단한 진리를 보여준 것이죠. 숲과 강물 대신 아스팔트와 건물들이 들어찬 우리 도시에게 아바나는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상생모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