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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도시도 비슷한데요. 도시에도 트렌드가 있고,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는 도시는 쇠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오늘은 20세기에는 공업도시로, 21세기에는 문화도시로 각광을 받는 독일의 루르지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세기, 독일 루르지방은 유럽의 성장엔진이었습니다. 1840년대에 석탄 채굴이 시작되면서 도시가 세계 최고의 중화학공업지역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석탄 및 철강산업의 성장 속도가 둔화되면서 루르지방의 경제도 점점 활기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한때 유럽 최대의 성장엔진이었던 루르지방은 실업 증가와 소득감소, 인구감소로 몸살을 앓았고, 여기에 환경오염이 겹치면서 깊은 침체에 빠져들었습니다. 루르지방을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변화를 모색할 수밖에 없었던 루르지방의 지자체들은 당시 독일의 최고 화두였던 ‘문화’를 도시 혁신의 주제로 선정하고 힘을 모았습니다. 대표 공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탈바꿈을 시작한 것이지요. 17개 도시들은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바 엠셔팍계획’이라고 명명하고 도시 체질개선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혁신에는 늘 반발이 있듯이 새로운 계획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변신이 쉽지 않았던 것인데요. 수십 년 동안 중공업에 종사해온 시민들에게는 ‘문화도시’라는 개념이 생소했고, 자신들이 삶의 터전이 순식간에 바뀌는 것 같아 도시변화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즉 비록 지금은 쇠락해버린 공장이라 할지라도 시민들에게는 추억이 서린 소중한 유산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자체들은 산업시설과 공업용 토지를 재활용하는 묘안을 내놓습니다. 시민들의 터전이었던 산업시설을 재활용함으로써 시민들을 도시변화에 중심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센의 ‘촐페라인 탄광 공업디자인센터’입니다. 200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곳은 붉은 벽돌과 녹슨 철문 등 옛날 공장 건물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산업화 시대’의 옛 모습을 살리는 방향으로 리모델링한 것이죠. 특별히 낡은 보일러 하우스에 설치된 레스토랑은 지역의 명물로 사랑받고 합니다. 유럽 최대의 석탄광산이었던 촐페라인 탄광은 현재 디자인 박물관과 디자인 센터, 140개의 디자인·문화 기업이 입주한 디자인 센터가 되었습니다. 흘러간 역사를 잘 활용해서 새로운 문화유산을 창조한 것이죠.
또 다른 사례는 오버하우젠시의 가스탱그입니다. 오버하우젠시에 있던 가스탱크는 원래 유럽 최대의 가스저장소였는데요. 높이 120m, 폭 67m의 거대한 구조물이 지금은 전망대를 갖춘 이색적인 전시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또, 뒤스부르크-메이데리히 제철소는 매일 밤 슬로모션의 라이트 쇼를 볼 수 있는 경관 공원으로 바뀌었습니다. 공업도시에서 문화도시로 탈바꿈한 루르지방! 가히 환골탈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한 가지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루르지방은 분명 문화도시로 바뀌었지만, 그 속에는 과거 공업도시의 명성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사용하지 않는 산업시설들을 없애지 않고 오히려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간직한 것이죠. 그들에게 버려진 산업시설들은 부끄러운 과거가 아닌 현재의 밑거름이 된 자랑스러운 도시의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조직이나 새로운 모습으로 혁신을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변화가 과거의 유산을 잘라 내버리는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재를 있게 해 준 과거의 유산을 재해석하고 그것을 계승하고 새롭게 발전시키는 것이 혁신의 참모습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