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우리가 알고 있는 소비자상이나 소비의 법칙이 이미 과거의 것으로 진 부화되어 버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놓친 기업은 어떤 소득층 또는 어떤 연령층에 자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팔아야 하는지 타깃을 만들지 못하고 도태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일본에서는 과거에는 당연시되었던 소비 시장에서의 철칙이나 또는 이를 노린 정형화된 기업의 마케팅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소비의 나노화'인데요. 그만큼 소비가 복잡해지고 다양해져서 기존의 소비의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일본의 소비시장에서 어떤 상식들이 깨지고 있는지 또 이런 변화의 배경이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소비를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게 상식처럼 퍼져있는데요. 취업난이 심하고 취업을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많아서 소비를 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보니, 학비나 아르바이트에 쫓겨 자동차 같은 고가품은 커녕 돈이 많이 드는 결혼식 때문에 결혼까지 피하고 있는 젊은 층이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아주 현명하게, 그리고 가끔씩, 그 순간만큼은 저명인처럼 느끼게 해주는 서비스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답니다. 그중 하나가 리무진 대여 서비스인데요. 업체가 마련한 드레스샵에 들러서 맘에 드는 옷으로 갈아입고,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을 타고 시내를 돌면서 차안에서는 샴페인이나 와인을 마시며 근사한 파티를 즐기는 것이죠.
1시간 기준으로 우리 돈 8~9만원 정도의 서비스인데요, 입소문을 타고 번지기 시작해 지금은 예약 없이는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붐빈다고 합니다. 원래 리무진 서비스는 해외에서 오는 귀한 손님을 모시기 위해 시작된 틈새시장인데요. 주 타깃을 보통의 여대생으로 설정하고 서비스명도 ‘리무진 공주 파티’로 바꾸면서 인기 상품으로 탈바꿈한 셈입니다. 매일매일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하지만, 일 년에 한 번쯤 친구들과 스페셜 파티를 즐기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죠.
또 하나 사례를 들어 볼까요.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주부들은 바쁩니다. 그래서 소비를 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렇지만 여성으로서 한 번쯤 빛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어디나 같겠죠? 이런 주부들을 대상으로 라이브 토크쇼, 전람회 등 특별 이벤트를 준비해 성공한 업체가 에이벡스 그룹의 자회사인 마마 페이즈입니다. 2010년 시작해 6회째인 2014년 가을 이벤트에는 만 오천명을 동원했고, 현재 등록 회원만 3만 명이 넘는다고 하는데요. 전용 탁아시설을 만들어 놓고 행사장도 롯폰기나 에비스 가덴 같은 화려한 장소를 고릅니다. 그런데 이 이벤트에는 주부뿐만 아니라 자사 제품을 선전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까지 몰려듭니다. 산토리 등 주류 회사는 파티장의 술을 협찬하고, 후지필름은 간단한 사진 촬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요. 주부의 마음을 자극해 순간적인 소비를 이끌어낸 성공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외에도 대량으로 소비되던 중국산 제품의 인기가 식고 대신 국산 제품의 인기가 20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인터넷 쇼핑몰 라이프스타일 악센트인데요. 야마다 사장은 30만 원 수준의 해외 고급 와이셔츠와 동질의 와이셔츠를 10만 원 수준에 제공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국내에 영세하지만 실력이 검증된 섬유 공장에서 제조 위탁 형식으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시작해 2년간 매출이 3배 증가하고, 2014년에는 이세탄 가설 매장에서 매출 신기록까지 세웠다고 하는데요. 처음 타깃은 40대였지만, 실제 구매자는 2,30대가 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유니클로만 알고 있을 법한 세대들이 10만 원 이상의 국산 셔츠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젊은 층이 싸고, 편한 옷만 추구할 거라는 상식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러한 소비행태의 다양화, 복잡화의 배경은 무엇일까요. 먼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입니다. 방금 소개한 리무진 서비스도 실은 광고 선전보다는 경험자의 SNS 투고의 힘이 컸습니다. 촬영된 파티 영상이 SNS를 타고 번지면서 동년층의 부러움을 산 것이죠. 이제는 SNS에서의 반응이 소비를 좌우하고, 이 반응의 감도는 시시각각 변화하면서 소비의 다극화가 진행됩니다. 또 하나가 가족의 변화입니다. 부부와 자식으로 구성된 핵가족 시대가 저물고, 그 자리를 독신세대가 채워가고 있습니다. 2010년에 무려 32%로 15년 전에 비교하면 6% 포인트나 오른 수치인데요. 만혼이 일상화되면서 남자의 경우 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하지 않는 비율이 20%를 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보니 결혼은 일생에 한 번이라는 상식도 깨진 지 오래입니다. 후생성의 조사에 따르면 2013년 결혼한 커플 중 4분의 1이 어느 한쪽이 재혼인 결혼이었다고 합니다. 이혼률이 증가한 반면 수명이 늘면서 재혼이 늘게 된 것인데요. 이러다보니 시니어를 상대로 한 맞선 이벤트나 결혼 컨설팅 사업이 호황을 맞을 수밖에 없겠죠.
하나 더 이유를 든다면 바로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입니다. 2013년 15세 ~ 64세 여성의 취업률이 60%를 넘어섰습니다. 정사원, 전업주부, 비정규직이 있고 아이가 있고 없고의 차이도 크고, 이러한 여성들이 집단별로 새로운 소비를 만들고 소비의 나노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죠. 이렇게 소비는 점차 복잡해지고 다양해지지만 그 저변에 깔린 인식의 변화는 뚜렷해 보입니다. 자기가 중시하는 제품이나 서비스에는 비싸더라도 돈을 아낌없이 투자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은 되도록 싼 것을 선호하는 것이죠. 버블 붕괴나 대지진을 겪은 일본의 소비자들이 점점 더'마음의 여유, 만족'을 중시하게 되면서, 실용성 즉 제품의 충족보다는 '자신의 가치관에 맞고 공감하고 마음을 울리는 그 무엇'을 추구하게 된 것인데요. 좀 전의 와이셔츠 사례도 제품의 질을 떠나'범람하는 중국산으로부터 국산을 지키자'는 공감대가 젊은이들에게 어필했다는 것입니다.
소비는 경제를 이끄는 수레바퀴입니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는 소비 마인드를 정확하게 인지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그에 맞게 변화시켜 나가는 기업이 많을수록 소비가 늘고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이겠죠. 일본은 지금 아베노믹스 이후 장기적인 경기 활황을 맞고 있는데요. 한국 경제는 아직도 찬바람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도 '한국의 소비는 이렇다'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고, 변화하는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작은 트렌드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활용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소비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