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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4월 일본 정부는 소비세를 5%에서 8%로 올렸습니다. 1997년 4월 소비세 인상 후 17년 만인데요. 이번 세율 인상은 현재 GDP의 2배를 넘어선 재정적자를 줄이고, 고령화 등으로 늘어난 사회 보장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세금이 오르게 되면, 충격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오르기 직전에는 미리 앞당겨 구매하려는 가수요가 생겨 소비가 늘어나고, 반대로 실제 오르고 난 직후에는 그 가수요 분만큼 소비가 줄어드는데요. 그런데 이번 일본의 소비세 인상의 여파는 당초 예상보다 심각합니다. 소비세 인상 직후인 2014년 2분기 일본 국내 연구기관이 예측한 GDP 성장률은, 전기 대비 -1%, 연율로 환산하면 -4% 내외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발표된 2분기 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1.8%, 연율로는 -7.1%나 되는데요.
물론 성장률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하락한 데는, 일본정부의 소비세 인상에 따른 충격 완화 조치가 예상보다 지연된 측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소비세 인상의 충격이 커진 데에는 소비 위축이 화근이었습니다.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가수요가 크게 발생하였던 자동차, 가전뿐만 아니라 PC, 일용잡화 등 폭넓은 분야에서 개인소비가 급감하면서, 개인소비 증가율이 전분기 대비 5.1%, 연율로는 19%가 줄어든 것인데요. 이는 1997년 소비세 인상 직후의 감소폭 13.2%를 훨씬 능가하는 수치입니다. 게다가 주택투자와 설비투자도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내수가 전반적으로 생각보다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일본 경제가 또다시 꺾이면서 새로운 장기불황으로 진입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겨나고 있는데요. 일본경제는 1990년 버블 붕괴를 계기로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침체에 들어갔지만, 1997년 소비세 인상을 계기로 장기불황과 동시에 본격적인 디플레이션 세계로 들어갔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일본경제는 소비세 인상의 충격으로 재차 침체되면서 1997년의 전철을 밟게 될까요? 그 진단을 위해 현재와 1997년 당시 상황을 비교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국내외 경제 여건입니다. 아시다시피 1997년 당시에는 아시아 통화 위기 발생에 따른 대외여건 악화로 일본의 수출, 특히 대아시아 수출이 급감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세계경제가 전반적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데다 환율도 약세여서 수출에 유리한 여건인데요. 또한 당시 일본에서는 대형 금융기관이 잇달아 파산하는 등 금융시스템 위기까지 겹쳐 신용경색이 심각했지만, 현재는 금융완화로 유동성이 넘치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1997년 당시에 비해 일본의 국내외 경제 여건은 매우 양호합니다.
둘째는 기업의 대응력인데요. 1997년 당시에는 기업들이 과잉채무에 처해있었던 터라 투자 확대보다는 채무 상환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장기업의 절반이 실질 무차입이라고 할 정도까지 디레버리징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게다가 2014년 기업의 수익성도 사상 최고 수준으로 달해, 2분기 매출액 경상이익률은 2007년 당시(2.7%)의 2배 수준인 5.4%인데요. 또한 손익분기점 매출도 1997년 당시에는 85~90%였으나, 최근에는 75% 전후까지 하락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일본 기업의 경기대응력도 현저하게 개선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 가계가 처한 상황도 1997년에 당시에 비해 훨씬 개선되어 있습니다. 당시에는 기업이 고용 과잉을 인식하고 있는 터라 고용 불안이 확산되고, 정규직의 비정규직 전환도 빠르게 추진되기 시작하던 시기였습니다. 반면, 지금은 오히려 일손 부족 현상이 나타나면서 완만하지만 고용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당시에는 전반적으로 인건비 삭감 압력이 작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임금 상승은 기대조차 할 수 없었으나 현재는 임금 상승 여력이 생겨나 나면서 6년 만에 기본급 인상도 추진되었는데요. 게다가 1997년에는 기업들 간 가격 인하 경쟁이 일상화되면서 디플레이션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기업들이 저가격 전략에 신중해졌고, 소비자물가가 상승하면서 디플레이션 탈출에 대한 기대도 형성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정부 정책 측면에서도 1997년 당시의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소비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습니다. 1997년에는 재정재건화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에 소비세 인상과 동시에 소득세 감면제도 폐지, 연금 및 의료보험료 인상 등도 동시에 이루어져 가게 부담이 컸는데요. 이번에는 5.5조 엔의 추경 예산과 현행 5%인 자동차 취득세 2%p 인하, 주택대출상환금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등 충격 완화를 위한 시책들이 동원되었는데요. 때문에 1997년보다 소비세가 1% p 더 인상됨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가계부 담은 완화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소비세 인상이 일본 경제 회복에 어느 정도 제동은 거는 것은 불가피하겠지만, 1997년처럼 재차 침체기로 접어드는 계기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본 국내 경제예측기관들 역시 3분기 이후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요. 그런데 진짜 중요한 건 그다음부터입니다. 3분기 성장률은 소비세 인상의 충격뿐만 아니라 향후 일본 경제의 향방을 좌우할 중요한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2015년 10월부터 소비세를 10%로 추가 인상하는 법안을 제정해두었는데요. 이를 실제 실행에 옮길지 여부는 늦어도 12월 말까지 아베 총리가 최종 결정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때 가장 핵심적인 판단 지표가 바로 이 3분기 성장률입니다. 만약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소비세 추가 인상이 보류될 경우, 1997년 소비세 인상의 트라우마가 살아나면서 디플레이션 탈출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급랭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아베노믹스도 차질을 빚게 되겠죠.
이 때문에 아베 총리는 당초 예정보다 앞당겨 경기 점검에 나서, 여차하면 추가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태세입니다. 향후 일본 경제가 소비세 충격에서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지, 아베 총리가 어떤 복안과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예정대로 소비세 추가 인상을 단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