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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공포영화 <사이코> 감독

biumgonggan 2021. 8. 26. 17:34

오늘의 주인공은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인데요. 박찬욱 감독도 히치콕의 영화를 보고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지금 활동하는 거의 모든 영화감독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명작과 히트작도 다수 만들어냈습니다. 공포영화 <사이코>는 그 해 전 세계 흥행 2위를 기록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요, 이런 히치콕이 아카데미 감독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건 그가 평단으로부터 흥행 영화나 잘 만드는 감독으로 인식됐고, 영화의 예술성은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치콕의 영화는 너무나 쉬웠고, 관객이 몰입하도록 스토리를 어찌나 잘 만들던지, 하도 재미있어서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으니까요. 한마디로 너무 인기 있어서 평론가들이 예술성을 논할 때 아예 생각지도 않았던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히치콕이 62편의 영화를 만드는 동안 평생 발전하고 개선되는 예술가였기 때문입니다. 런던 출신으로 영국에서 영화를 시작한 히치콕은 1926년 두 번째 장편영화 <하숙인>이 히트한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결국 1940년 <레베카>로 할리우드에 데뷔했는데요, 이 영화 역시 성공해서 미국에서의 감독생활도 아주 쉽게 시작했습니다. 이후 〈의혹의 그림자〉, 〈오명〉, 〈다이얼 M을 돌려라〉, 〈이창〉, 〈나는 결백하다〉,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사이코>, <새> 등 주옥같은 작품을 만들어냈죠. 서스펜스의 거장답게 히치콕은 호기심과 궁금증, 긴장감을 끝까지 유발하는 쫄깃쫄깃한 스토리를 계속 만들어냈으며, 이전 영화에서 시도한 기법을 조금씩 발전시켰습니다. 비슷한 스타일로 조금씩 변했기 때문에 평단에 충격을 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랫동안 예술가 연구를 한 데이비드 갈렌슨은 히치콕을 나이 든 대가의 전형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그는 예술가를 둘로 나눠서 Young Genius와 Old Master로 구분했죠. 피카소 같은 젊은 천재는 영감을 중시하는 개념적 예술가로, 자신의 명확한 생각을 작품이라는 도구에 표현합니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경험이 고정관념으로 작용해서 젊을 때 대작을 내놓는다는 거죠. 하지만 세잔과 같은 나이 든 대가는 경험적 예술가로 처음에는 예술에 대한 확고한 생각도 불명확하지만 수많은 작품을 창작해 나가면서 경험이 쌓여 예술에 대한 자기만의 혜안을 갖게 된다는 거죠. 히치콕이 <현기증>에서 개발한 줌인 트랙 아웃 기법은 앞에 있는 피사체는 그대로인데 배경이 급격히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는 효과인데요. 히치콕은 이 기법을 <레베카>에서부터 쓰고 싶어 했는데, 이후 영화를 찍을 때마다 조금씩 실험하면서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15년 이상 고민한 결과 카메라 렌즈는 줌을 하고 카메라는 뒤로 빼는 방법을 창안해 냈습니다. 또 나이 든 대가들은 대부분 인생 말년에 대표작을 만들어냅니다. 히치콕의 대표작이 대부분 60세 전후인 것처럼요. 실제로 갈렌슨은 젊은 천재의 작품 가격은 어릴 때 최고를 찍고 나이가 들수록 감소하는 데 반해, 나이 든 대가의 작품 가격은 나이 먹었을 때 만든 것일수록 가격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실증했습니다. 영화감독 중에서 젊은 천재는 단연 오슨 웰스입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26세에 만들어서 미술계에 충격을 줬듯이, 오슨 웰스 역시 26세에 <시민 케인>을 내놔서 영화계에서 찬사를 받았습니다. 몽타주와 미장센, 추리에 따른 스토리텔링 등 온갖 혁신적인 기법들을 소개했죠. 영국영화협회가 발행하는 잡지 <Sight & Sound>는 전 세계 평론가들의 의견을 모아서 10년에 한 번씩 역사상 최고의 영화 10편을 뽑는데요. 1962년부터 2002년까지 5번 연속으로 <시민 케인>이 1위에 뽑혔습니다.

 

갈렌슨이 젊은 천재와 나이 든 대가를 구분해서 연구한 이유는 우리가 예술적 창조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스타일로 젊을 때 세상을 놀라게 하는 창작가나 베토벤처럼 괴팍하면서 보통과는 다른 특이한 사람을 예술가의 전형으로 여기고 있다는 거죠. 그러나 사실은 나이 든 대가의 점진적이면서도 조금씩 발전하는 예술 역시 세상에 커다란 영향을 준다는 겁니다. 너무 친숙해서 당대에는 잘 알아보지 못하지만 후세들은 이들을 더 많이 참고한다는 거죠. 히치콕이 개발해낸 기법은 수많은 후배 영화감독들에 의해 쓰이고 있습니다. 지금 활동하는 거의 모든 영화감독은 히치콕을 텍스트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Sight & Sound>는 2012년에 와서 비로소 역사상 최고의 영화로 히치콕의 <현기증>을 1등으로 뽑았습니다. 창조와 혁신이 이런 거 같습니다. 과학사의 위대한 발견, 문명의 위대한 창조물은 어느 천재에게서 갑자기 튀어나온 것도 있지만, 시대와 동료들의 영향을 받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차곡차곡 쌓이다가 터진 게 더 많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