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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 때문에 인기를 끈 퀸의 이야기입니다. 퀸은 전성기 시절에도 이렇게 찬사와 인기를 동시에 얻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아마도 대중음악 역사상 평론가들에게 가장 혹평을 받았던 그룹이었을 겁니다. 제일 큰 이유가 종잡을 수 없는 음악을 한다는 거였어요. 하드록, 프로그레시브 록, 글램록, 팝, 포크송, 오페라, 심지어 디스코까지, 당시 평론가들은 퀸이 잡탕 같은 음악을 한다며 슈퍼마켓 록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요, 이게 바로 퀸의 강점이었습니다. 1971년 영국의 대학생 4명으로 결성된 퀸은 공교롭게도 각자 음악스타일이 다 달랐습니다. 오페라와 중창을 좋아했던 ‘프레디 머큐리’, 빠른 록음악 뿐만 아니라 멜로디 있는 발라드도 많이 작곡한 ‘브라이언 메이’, 비트 있는 정통 하드록을 좋아했던 드러머 ‘로저 테일러’, 디스코나 댄스 형식의 음악을 좋아했던 베이시스트 ‘존 디콘’. 우리가 아는 퀸의 히트곡은 이들 4명의 멤버가 골고루 만든 거지, 한두 사람이 만든 게 아닙니다. <Bohemian Rhapsody>는 프레드 머큐리, <We will rock you>는 브라이언 메이, <Radio ga ga>는 로저 테일러, 미국에서 1위를 한 <Another one bites the dust>는 존 디콘. 그래서 퀸은 멤버 전원이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최초의 밴드입니다. 재미있는 건 이들은 서로, 다른 멤버들의 스타일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맨날 싸웠고 툭하면 불화설이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1980년대 초반에 멤버들은 각자 솔로앨범을 내기도 했습니다. 1985년 프레디 머큐리는 <Mr. Bad Guy>라는 팝음악 앨범을 냈고요, 브라이언 메이는 1983년 당시 인기 있던 록밴드 멤버들과 프로젝트 앨범을 만들었죠. 로저 테일러는 1981년과 84년에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냈습니다. 밴드 활동을 하면서 이처럼 따로 솔로 앨범을 내는 일이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사실 록밴드들은 해체하고 다른 사람을 구해서 음악을 하면 했지, 따로 활동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그건 그만큼 퀸의 멤버들이 강한 개성과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재미있는 건요, 이들의 솔로 앨범이 대부분 망했다는 건데요, 퀸의 앨범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퀸의 오랜 매니저는 프레디 머큐리의 앨범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퀸의 강점은 그들의 말다툼에서 나온다는 겁니다. 각자 멤버들이 밴드 내에서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싸웠고, 그러면서 노래들이 더 다듬어지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의 솔로 작업에서는 이런 긴장감이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퀸은 한 사람이 작곡을 하면, 그 사람이 최초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사운드와 믹싱, 최종적인 프로덕션까지 책임졌습니다. 곡이 생겨날 때는 서로 수없이 싸우지만, 일단 제작에 들어가면 그 멤버의 방식을 존중했습니다. 이런 퀸의 작업방식을 알 수 있는 사례가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작업한 <Under Pressure>인데요. 이 노래는 즉흥적으로 이뤄졌습니다. 당시 퀸이 구한 녹음실 주변에 데이빗 보위가 살고 있었고, 그가 놀러 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뭐라도 해볼까 하면서 만들어진 노래였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할 때, 프레디와 데이빗이 함께 노래를 해야 하잖아요. 퀸 멤버들은 보컬 부분을 따로 녹음하자고 했고, 한 사람이 노래 부르는 걸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냥 자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부르라고 말이죠. 이걸 프레디는 엄청 좋아했습니다. 데이빗이 노래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퀸의 메가 히트곡 중 하나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게 퀸의 음악에 대한 철학이었습니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집단이 모였다고 해서, 반드시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두 사람의 의견에 편승해서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는 조직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인데요. 심리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그룹 싱크’라고 불렀습니다. 한 사람의 의견이 지배적이거나, 또 구성원들이 서로 지나치게 친해도 더 이상 상호작용이 이뤄지지 않아서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래서 조직에 적절한 갈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집단지성, 즉 ‘그룹 지니어스’는 다양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생각을 하고 그걸 끄집어낼 수 있는 상황에서만 일어난다고 합니다. 실제로 퀸 멤버들은 자신의 아이디어와 스타일을 더 좋아했지만, 일단 다른 멤버가 좋은 멜로디나 리듬을 생각해내면 환호하며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도록 도왔습니다. 존 디콘이 신나는 베이스 리프를 계속 두드리다가 피자 먹으러 갔다 와서 그 리프를 잊어버리자, 로저 테일러가 곧바로 알려줬습니다. 디콘이 딩딩 거리던 게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겁니다. 이게 바로 <Under Pressure>의 기본 리듬이 됐습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단순한 문제를 풀 때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인 그룹이 더 좋은 성과를 올린다고 하고요, 예상치 못한 문제를 풀어야 할 때는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된 그룹이 더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환경이 점점 복잡해지고 있는데요. 퀸처럼 다양한 각자의 개성을 모두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겠습니다. 1992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프레디 머큐리’ 추모 콘서트가 있었는데요, 당대 기라성 같은 가수는 모두 참가했습니다. 그런데, ‘프레디 머큐리’보다 퀸 노래를 더 잘 부르는 가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베이시스트 ‘존 디콘’은 ‘프레디 머큐리’가 없는 퀸은 더 이상에 의미가 없다며 1997년부터는 일체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이들은 매일 싸우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있었던 거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