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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제인 구달의 침팬지 연구

biumgonggan 2021. 8. 26. 13:59

오늘은 침팬지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영화 <혹성탈출>에는 똑똑해진 침팬지가 인간과 전쟁을 벌이고 결국 인간을 지배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실제로 교토대 영장류 연구소에서는 침팬지가 숫자를 세고 사람과 퀴즈 대결에서 이기는 실험을 선보이기도 했죠. 또 자아를 알아봐서 거울을 가져다주면, 온갖 표정을 지으며 자기 얼굴에 빠져듭니다. 인간과 DNA가 98.8% 같다고 하니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지금은 상식이 된 영장류에 대한 이런 지식은 제인 구달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녀가 탄자니아 곰베에 들어가 침팬지들을 관찰하면서부터였죠. 재미있는 건 당시에 구달은 고졸이었습니다. 대학을 나오지 않고 박사를 받았는데요,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볼까요?

 

제인 구달은 1934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카레이서인 아버지가 자동차 경기장 주변으로 이사를 다녀서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그녀는 시골에서 온갖 동물들을 데리고 놀았는데요, 개는 물론이고 소, 말, 오리, 닭, 거위 등 수많은 동물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심지어는 마당에 있는 지렁이가 너무 신기해서 지렁이를 모아서 침대 머리맡에 놓고 자겠다고 해서 식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책도 동물에 관한 책만 주로 봤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크면 아프리카에 가서 동물들과 함께 지내며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비서 자격증을 따고 대학, 영화사 등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케냐로 간 친구가 자기 집에서 농장을 샀다며 구달을 초대했고, 꿈에 그리던 아프리카로 가게 됐습니다. 케냐에서도 구달은 원숭이를 비롯해 여러 동물을 길렀는데요, 그걸 보고 친구가, 케냐 자연사박물관장이었던 루이스 리키 박사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구달은 바로 전화해서 그를 만났고, 곧바로 리키의 조수가 됐죠.

 

리키는 당시 매우 유명한 고인류학자였는데요, 아내와 아들 모두 고 인류의 뼈를 발굴하고 두개골을 연구해서 학계에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당시 리키는 고 인류를 이해하기 위해 인간의 사촌인 침팬지를 연구하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를 제인 구달에게 제안했고, 구달은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연구비가 모이자 1960년 구달은 모친과 함께 탄자니아의 곰베 국립공원에 들어가 텐트를 치고 침팬지들을 관찰했습니다. 무려 10년 이상을요, 구달 모녀는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했지만, 그걸 이겨내고 낮에 본 걸 매일 밤 기록했습니다. 얼마간은 침팬지들이 구달을 경계했지만, 먹이도 주고 애정을 갖고 침팬지에게 다가가자 구달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래서 침팬지들은 구달이 따라다녀도 자기들 행태를 그대로 보여줬고요, 머지않아 구달은 엄청난 발견을 하게 됩니다. 당시까지 침팬지는 벌레는 잡아먹어도 기본적으로 채식을 하는 줄 알았는데요, 침팬지가 멧돼지 고기를 들고 가는 걸 본 것입니다. 침팬지가 사냥을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거죠. 더욱 놀라운 발견은 이건 데요, 침팬지가 풀을 뜯어서 그걸 흰개미 굴에 넣고, 풀에 흰개미가 딸려오자 단백질이 풍부한 흰개미를 훑어먹는 것이었습니다. 풀이 찢어지자 나뭇가지를 골라서 흰개미 낚시를 계속했습니다. 심지어는 달려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나뭇가지를 줍고, 그걸 나중에 흰개미를 잡는 데 사용했습니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죠. 그때까지만 해도 오직 인간만이 도구를 쓴다고 생각했기에 이 발견은 충격이었습니다. 이걸 리키 박사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인간만이 도구를 쓴다는 말을 바꾸거나, 도구의 정의를 다시 해야겠어”라고 말하며 흥분했다고 합니다. 구달의 발견은 영장류 연구를 질적으로 변화시켰던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리키 박사는 구달의 과학적 성과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도록 도와줬습니다. 대학도 나오지 않은 고졸이었지만 영장류 연구에서는 그 어떤 박사도 못했던 발견을 했다고 대학 측에 설득했죠. 이렇게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학위를 받을 때 문제가 된 게, 구달의 연구기법이었습니다. 당시 영장류 연구의 전통을 몰랐던 구달은 침팬지들에게 일일이 이름을 붙였고, 실제로 침팬지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지도교수는 이런 방법이 연구의 객관성을 해친다며 비판했는데요, 최소한 학위논문에서만큼은 침팬지 이름을 빼고 번호를 넣자고 제안했습니다. 구달은 그럴 수 없다면서, 자신의 연구성과는 침팬지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보았기 때문에 침팬지의 행동을 더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사실 성과를 빨리 내려는 연구자들은 동물을 따라다니며 관찰하기보다 실험실에서 실험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구달은 묵묵히 침팬지를 관찰하면서도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습니다. 오래 지켜보다가 미세한 차이에서 의미 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또 발견한 게 엄청난 성과를 내게 된 겁니다. 결국 구달의 뜻대로 논문이 발표되었고, 오늘날 침팬지 연구자들은 침팬지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동물을 사랑했던 구달은 침팬지 연구를 왜 하는지, 일에 대한 의미를 분명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녀에게 침팬지 연구는 과학적 발견이 목적이 아니라 동물과 인간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곰베에서 10년 이상 침팬지 연구를 한 이후에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해서 야생동물 연구와 보호를 지원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여든이 넘는 지금도 1년에 300일 이상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동물과 환경보호에 대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혁신도 사랑과 열정, 믿음이 기반이 되었을 때 가능한 것 아닐까요? 그래야 어려움을 넘어갈 수 있고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구달은 아인슈타인처럼 천재도 아니었고 피카소처럼 신동도 아니었으며 잡스처럼 괴짜도 아닙니다. 수학을 잘하지 못했지만 위대한 과학자가 되었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오직 그녀의 사랑과 열정으로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