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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의사결정 잘하는 리더

biumgonggan 2021. 8. 26. 10:04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미국과 북한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이 있었죠. 우리나라 사람이면 모르는 분이 없을 겁니다. 그만큼 그 과정도 드라마틱했는데요. 남북정상회담 이후 잘 진행되다가 북한 당국자가 미국의 태도를 비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를 전격 발표했습니다. 국가 간 중대 의사결정이, 더욱이 역사상 최초의 이벤트가 이처럼 허망하게 번복된 전례가 거의 없다 보니 전 세계가 모두 놀랐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우리 국민들은 기대와 희망이 너무 컸기 때문에 정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다 아시는 것처럼 이후 북한이 온화한 태도를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을 다시 번복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했습니다. 이건 고도의 협상전략이었다고도 이야기하지만,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의사결정을 쉽게 번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미국으로의 이민을 어렵게 하는 이민법 개정에 지지했다가 다시 연기해서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비난을 받았고요. 화학무기를 사용한 시리아를 공격하고 시리아를 지원한 러시아를 제재한다고 했다가 번복해서 외교 전문가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습니다. 또, 미국이 철수한 TPP에 복귀한다고 했다가 자신의 말을 바꿔서 복귀하지 않을 거라고 했죠. 트럼프의 변덕과 횡설수설 때문에 보좌관들이 아주 애를 먹고 있다는데요. 국정현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빚어지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런데요, 혹시 이게 트럼프의 경쟁력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국정파악을 제대로 못해서 의사결정에 실수를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신의 의사결정을 쉽게 수정할 줄 아니까 말입니다. 뇌 과학 측면의 의사 결정에 대해서 오랫동안 연구해온 카이스트의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의사결정을 잘하는 리더들은 완벽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보다는 결정을 재빠르게 하고 틀렸을 경우 쉽게 수정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올바른 의사결정을 하느냐 보다 언제까지 의사결정을 하느냐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의사결정의 순간이 왔을 때, 좋은 결정이라는 생각이 절반 이상만 들어도 때를 놓치지 않고 실행에 옮긴다는 거죠. 나중에 잘못됐다고 깨닫는 순간 재빨리 번복하면 되니까요. 애플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든 스티브 잡스도 그랬답니다. CEO인 팀 쿡은 스티브 잡스를 가리켜 “세계 최고의 변덕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잡스는 1주일도 안돼 생각이 달라져서 결정을 뒤집은 일이 허다했다고 합니다. 보통 사람은 어떤 결정을 하면 결정하는 행동 자체가 그 입장을 더 고수하게 만드는데요, 잡스는 한 가지 입장이나 관점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혁신이라는 더 커다란 원칙으로 자신의 의사결정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다시 살펴봤다는 거죠. 트럼프 역시 미국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의사결정을 되짚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의사결정을 잘하는 조직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데요. 컨설팅회사인 베인 앤 컴퍼니에서 10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지닌 기업의 경영진을 대상으로 의사결정에 관한 설문을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성과가 높은 기업일수록 의사결정의 질 못지않게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요. 실제로 의사결정을 빠르게 내리는 조직이 더 나은 결정을 할 확률이 네 배 가까이 높았다고 합니다. 예컨대 구글은 의사결정이 필요한 회의가 있으면 의사결정 담당자와 논점을 정해서 이메일로 먼저 공유합니다. 그런데 의사결정자가 회의가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회의 없이 의사결정을 해버린다고 합니다. 그만큼 속도를 중시한다는 거죠. 아마존 역시 모두가 합의를 하는 회의를 거치지 않고 어느 정도 필요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실행에 옮긴다고 합니다. 다만 일단 의사결정이 이뤄지면 거기에 완전히 동의해서 따라야 합니다. 물론 나중에 의사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수정하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의사결정이라고 하면 미래에 대한 예측, 치밀한 계획, 체계적인 분석, 정확한 판단 같은 말을 떠올렸습니다. 과거에 변화가 적었던 환경에서는 예측과 분석이 더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변화가 빠른 환경에서 완벽한 의사결정은 불가능합니다. 쉽게 말해서 의사결정의 성공 확률은 옆의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판단의 정확도에다 기회의 확률을 곱한 것입니다. 헤겔의 <법철학> 서문에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그 날개를 편다’라는 말이 나오는데요. 어떤 일이 다 끝난 후에야 완벽하게 알 수 있다는 의미죠. 즉, 시간이 지나야 판단의 정확성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시간이 가면 기회의 확률은 떨어집니다. 비트코인이 그렇게 오를지 지나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사결정은 정확도에 대한 판단이 어느 정도 든 상태에서, 기회의 확률이 떨어지지 않았을 때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트럼프가 욕을 얻어먹는 것은 스스로의 결정을 번복한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의사결정을 수정하는 게 어려운 건 잘못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도 어려운데, 심지어 오판이나 자신의 무능력, 때로는 치부까지 인정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이걸 인정하지 못해 조직이 커다란 비용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환경에서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것입니다. 이제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재빠르게 판단하고 상황 변화에 따라 수정해 나가는 방식을 익혀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결정할 줄 아는 배포, 잘못됐을 때 사과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의사결정은 분석의 영역인 것 같지만 사실은 행동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