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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노벨 문학상은 매우 이례적이었죠. 수상자는 미국의 포크 가수인 밥 딜런으로, 문학가가 아니었으니까요. 뿐만 아니라 상 받는 과정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밥 딜런은 노벨상 수상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수상자 발표 당일 콘서트를 하고 있었는데요, 노벨상에 대해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죠. 2주간 침묵이 이어지자 스웨덴 한림원에서도 딜런의 이런 행동을 무례하고 건방진 일이라며 비판했습니다. 결국, 보름 만에 노벨상은 받기로 결정했지만 선약이 있어서 시상식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하며,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고의 상인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요? 1941년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태어난 밥 딜런은 유대인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본명이 로버트 앨런 짐머맨이었는데요,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미네소타 대학에 입학했지만 곧바로 자퇴하고 음악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때부터 시인 딜런 토마스의 이름을 따서 ‘밥 딜런’으로 활동했죠. 당시에는 포크, 록, 블루스 같은 음악이 인기였는데, 밥 딜런은 포크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포크의 중심인 뉴욕으로 가서, 그리니치 빌리지의 수많은 클럽과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작곡을 시작했는데요, 하루에 몇 곡씩 만들기도 했습니다. 밥 딜런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오롯이 담아내 금방 인기를 끌었습니다. 전통적인 포크는 민속음악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담은 노래가 전해 내려오는 건데요, 반면 모던 포크는 작곡자가 주로 반전, 인종차별 등 사회문제를 담았습니다. 그래서 워싱턴대행진 같은 시위에 불려 나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때 밥 딜런의 노래 Blowing in the Wind가 가장 인기를 끌었습니다. 사람들은 데모를 하면서 밥 딜런의 노래를 불렀죠. 아이콘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노벨상 해프닝보다 더 큰 사고를 쳤습니다. 당시 포크 뮤지션들이 1년에 한 번씩 뉴포트에 모여서 포크 축제를 벌였는데요. 1965년 밥 딜런은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고 나가서 사랑 노래를 불렀습니다. 팬들은 충격을 받았죠. 포크를 조용한 통기타로 하는 이유는, 가사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삿말을 듣고 즐기려는 건데요, 이때 일렉트릭 기타는 철없는 애들이 좋아하는 록음악의 방식이었습니다. 즉, 일렉트릭은 인기, 상업성, 돈이었죠. 팬들은 다 집어던지고 야유와 아우성을 쳐서 세 곡만 부르고 황급히 들어갔습니다. 동료 포크가수는 전기선을 끊어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래도 딜런은 이후 공연에서 일렉트릭 기타로 노래를 불렀고 팬들은 욕을 해댔습니다. 그런데 딜런이 팬들을 배신한 건 이때만이 아니었습니다. 록음악으로 사랑 노래를 하자 기존 팬들은 떨어져 나갔지만 새로운 팬들이 딜런의 노래에 열광했습니다. 아주 젊은 팬들이었죠. 그러자 이번에는 컨트리 음악으로 변신했습니다. 방탄소년단이 트로트 음반을 낸 거와 같은 셈이죠. 컨트리 가수와 합동 공연도 하고 창법까지 달라져서 시골 노인들까지 딜런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엔 찬송가로 바꿉니다. 기독교로 개종하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서 찬송가 음반을 냈습니다. 심지어 빌보드 1위 곡도 만들어냅니다. 이처럼 복음성가 가수로 이름을 날리고 사람들이 환호하자 다시 도회적인 분위기의 록음악으로 변신했습니다. 정말 청개구리인데요, 사람들이 환호하면 그걸 아주 못 견뎌합니다. 노벨상도 그래서 머뭇거린 겁니다. 밥 딜런은 대중음악을 하면서 대중들이 열광하면 왜 자꾸 도망가는 걸까요? 그는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합니다. 어려서 피아노를 배울 때도 동생만 배우고 밥 딜런은 “내 맘대로 치게 내버려 두세요” 라며 레슨을 거부했지만, 독학으로 연주를 터득했습니다. 포크 음악에 심취해서 데이브 반 롱크와 같은 선배 가수에게서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반 롱크는 “직접 가르쳐주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지만, 나중에 보면 어느새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밥 딜런은 자유 감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팬들의 사랑도 지나치면 압박이 되니까요. 팬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창조력은 서서히 줄어들게 됩니다. 그는 평생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어 했습니다. 밥 딜런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는 이렇게 항변합니다. “시대의 대변자니, 무슨 양심이니 하는 말로 나를 가두려고 했어요. 나랑은 관계없는 일인데 말이죠. 좋아서 해온 일인데, 그런 꼬리표가 붙었더군요.”
노벨상에 대한 태도 역시 이와 관련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시상식 후 6개월 이내에 강연을 해야 합니다. 밥 딜런은 마감 직전에 수락 강연을 녹음본으로 제출했는데요, 심지어 내용도 틀렸습니다. 인생의 책으로 꼽은 모비딕 중 일부를 인용한 것이 원작에는 없고 문학작품 요약 웹사이트에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노벨상을 동네에서 주는 성가신 걸로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대한 겁니다. 노벨상뿐만 아니라 딜런은 어떤 상을 받아도 시큰둥하며, 그 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걸로 유명합니다. 돈이나 상 같은 외적 보상 때문에 일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심리학자들은 내적 동기는 창조력을 향상하지만 외적 동기는 약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요. 외적 동기가 ‘내가 좋아서 하는’ 자유 감을 떨어뜨리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김건모가 구설에 오른 후 바들바들 떨면서 노래 부르던 게 기억납니다. 김건모는 자유롭게 불러야 멋진 노래가 나오는데, 판정단에게 잘 보이려고 하니, 결국 떨어졌습니다. 여러분 조직에서도 이런 일은 많이 일어납니다. 회의에서, 보고에서 구성원들이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나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면 오히려 실패합니다. 심박수가 올라가면 준비한 건 잘할 수 있지만, 즉석에서 아이디어가 생겨나는 일은 없습니다. 물론 규율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구성원들이 자유 감을 느낄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 불확실한 환경에서 무엇보다 중요해질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