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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국 유소년 축구팀이 동굴에 갇혔다가 전원 구조되어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요. 어린아이들이 극한의 환경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25살 코치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가 한 팀이라는 의식을 심어주었고 살아나갈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이끌었습니다. 물론, 자기가 먹을 음식을 아이들에게 양보한 건 기본이었죠. 이 보도를 지켜보면서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이 버티는 방법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걸 느꼈습니다. 특히, 미래가 불확실한 스타트업들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늘 대여섯 개의 기업에 장기적으로 자문을 하고 있는데요, 그중에는 스타트업도 많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스타트업은 기반을 다질 때까지 버티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돈 벌 때까지 회사를 유지할 자금이 필요하고 사업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요즘 보면요, 정부지원을 포함해서 좋은 기술과 시장성만 있으면 투자하겠다는 곳이 워낙 많아서, 돈이 부족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정말 어려운 건 힘든 시기에 사람을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이더군요. 사람들은 회사의 미래가 조금이라도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면 과감하게 떠나버립니다. 돈 버티기보다 사람 버티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태국 유소년 축구팀처럼 극한 환경에서 생존한 케이스가 여럿 있습니다. 2010년 칠레 구리 광산에 갇혔던 광부들도 69일 만에 모두 살아났죠.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이 으뜸일 겁니다. 그는 1914년 27명의 대원과 함께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남극 탐험에 나섰다가 조난당한 후, 무려 634일 만에 전 대원을 무사히 데리고 돌아왔습니다. 1874년 아일랜드에서 태어난 섀클턴은 영국의 스콧 대령이 이끄는 디스커버리호의 남극 탐험에 참가하기도 했죠. 또 님로드호를 타고 남극대륙을 탐험할 때는 대장으로 탐험대를 이끌었습니다. 1911년 아문센이 남극점을 정복하자 섀클턴은 남극대륙을 횡단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탐험대는 1915년 1월 목적지를 불과 150km 남기고, 배가 빙벽에 갇혀 침몰하게 됐습니다. 이후 그들은 시속 300km의 강풍과 영하 70도의 추위 속에서 1년 반 동안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 오랜 기간을 어떻게 단 한 사람의 희생자도 없이 버틸 수 있었던 걸까요?
섀클턴 스스로 믿었다는 게 핵심입니다. 살아서 돌아갈 거라는 걸 말이죠. 비전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요, 구성원들에게 비전을 심어주려면 리더 스스로가 믿어야 합니다. 리더가 자그마한 의심이라도 가질라 치면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떠나버립니다. 섀클턴은 난파된 선실을 개조해서 ‘리츠’라고 호텔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사냥을 하고 요리를 하고 배를 수리했습니다. 심지어 과학자들에게 연구를 멈추지 말고 계속 진행하라고 했습니다. 배가 침몰했음에도 탐험대원들에게 각자 업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지시한 겁니다. 섀클턴은 사람들이 일을 손에서 놔버리면 절망이 더 깊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체스게임을 하거나 편을 나눠서 축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난파된 배에서 말이죠. 섀클턴은 본인 스스로 구조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그 오랜 기간 대원들도 그를 믿고 따랐습니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같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해내는 경영자들을 보면 말도 안 되는 비전을 스스로 믿어 버립니다. 세상에 없던 제품을 팔아 치우겠다거나 화성에 갈 거라는 식의 황당한 이야기를 스스로 믿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들의 믿음이 강할수록 다른 사람들도 믿게 된다는 거죠. 위대한 세일즈맨은 스스로를 믿는 사람입니다. 물건을 파는 사람보다 나를 파는 사람이, 나를 파는 사람보다 나를 사는 사람이, 더 고수인 겁니다. 내가 믿음이 있어야 주변과 소비자를 설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은 생각을 하면 소비자는 귀신같이 알아채고 그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생각이 전염되기 때문인데요. 생각은 그 사람이 드러내는 오감을 통해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염됩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사람 버티기의 필요조건이라면, 희생과 솔선수범은 충분조건입니다. 배가 침몰한 후 추위를 막아줄 순록으로 만든 가죽 슬리핑백이 모든 대원들에게 다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재고가 18개밖에 없어서 나머지 10명은 모직 슬리핑백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이건 너무너무 춥습니다. 섀클턴은 가죽 슬리핑백을 사용할 사람을 직급 순이 아니라 추첨으로 뽑았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이 추첨에 참여하지 않고 모직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섀클턴은 항상 대원들이 먼저 식사를 하게 하고 자기는 맨 나중에 먹었습니다. 식량이 부족할 때면 자기 몫의 비스킷을 배고픈 대원에게 먹였습니다. 그 대원은 수천 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비스킷이라고 일기에 적었습니다. 그는 가혹한 시련을 겪은 인듀어런스호 대원들에게 유일한 축복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섀클턴의 부하였다는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한 스타트업이 최근에 거액을 투자받았습니다. 사업도 궤도에 올라서고 있는데요, 그곳의 대표가 이런 말을 하더군요. 지금까지 자기를 믿고 함께 해준 사람들이 제일 고맙다고 말입니다. 돈은 어떻게든 만들 수 있었지만, 사람이 떠나는 게 제일 힘들었다는 거죠. 그런데요, 그 회사를 지금까지 버티게 한 게 그 대표의 믿음과 솔선수범이었다는 걸 저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여러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