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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Bitter Sweet Symphony라는 곡을 들어보셨나요? 브릿팝, 그러니까 영국의 모던록 밴드 더 버브가 1997년 발표한 곡인데요.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오케스트라 현악기의 반복되는 연주에 맞춰서 한 번만 들어도 귀에 달라붙는 멜로디가 일품인 노래입니다. 우리나라 CF에도 여러 번 나왔던 곡으로, 멜로디를 들으면 “아 이 노래!” 하실 겁니다. 무명을 전전하던 버브는 이 노래 하나로 그야말로 대박이 났습니다. 이듬해 브릿 어워즈에서 최우수 앨범상, 그룹상, 프로듀서상 등 3개 부문을 수상했습니다. 이때 경합했던 밴드가 라디오헤드, 오아시스 등이었습니다. 당대 최고 인기 그룹들을 물리치고 성공을 거둔 겁니다. 그런데 이처럼 미래가 창창했던 버브. 이들은 곧바로 해체하게 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이 노래의 핵심은 반복되는 현악기 연주인데요, 이건 버브가 만들어낸 게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롤링스톤즈의 The Last Time이라는 곡이 있는데요, 이 곡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한 연주곡이 있습니다. 이 편곡한 곡을 샘플링한 거죠. 물론 버브는 이 연주곡을 낸 데카 레코드와 사전에 계약을 맺었습니다. 6마디를 가져다 쓰고 그에 대한 로열티도 지불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요, 버브의 노래가 크게 히트하자,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롤링스톤즈의 전 매니저였던 앨런 클라인이라는 사람이 원곡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버브가 너무 많이 가져다 썼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물론 버브의 노래에 처음부터 끝까지 샘플링이 반복되어서 쓰이긴 하지만, 롤링스톤즈의 곡과는 완전히 다른데 말입니다.
법정 소송이 지긋지긋하게 이어졌고, 버브는 음악활동에 몰두하기 위해 저작권을 포기합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연주곡을 만든 사람이 또 소송을 제기합니다. 음반 판매에 따른 수익금을 내놓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버브는 이 노래로 한 푼도 벌어들일 수 없게 됩니다. 게다가 반항적이었던 버브는 글로벌 기업들이 이 노래를 광고에 쓰겠다고 했을 때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저작권이 넘어가자 앨런 클라인이 이런 노다지 기회를 차 버릴 리가 없지요. 나이키의 유명 광고를 비롯해서 자동차 CF, 심지어 스포츠 경기장에서 쓰는 음악에까지 온갖 군데에서 울려 퍼지게 만들었습니다. 노래는 세계적으로 메가 히트했는데, 밴드의 멤버들은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한창 창작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에 이 사람 저 사람들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소비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더 힘이 빠지게 된 건 이 노래가 41회 그래미상에 록음악 후보로 올랐는데, 저작권이 넘어가서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의 노래로 발표되었던 겁니다. 결국 버브의 리더이자 작곡자인 리처드 애쉬크로프트는 밴드를 해체하고 활동을 중단해 버립니다. 연거푸 부정적인 사건에 휘말리더니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사라진 거죠. 연승하는 스포츠 팀이 확률적으로 희박한 연승을 이어나가는 것은 팀 내에 퍼져 있는 긍정적인 에너지, 즉 신바람의 기운 때문입니다.
예술가들에게 창작물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시기가 바로 이런 때입니다. 버브가 안타까운 건 신바람 기운을 타려던 순간에 여러 소송에 휘말려 에너지를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바람 같이 활기차고 긍정적인 정서는 창의성을 향상합니다. 생전에 평생 이 분야를 연구했던 코넬 대학의 앨리스 아이센 교수는 수많은 실험을 통해 이를 밝혀냈습니다. 코미디 영화를 보여주거나 사탕을 나눠준 그룹이 창의성을 요구하는 문제를 훨씬 더 잘 풀어낸다는 실험을 여러 차례 시현했습니다. 심지어 사탕 한 봉지를 받아서 기분이 좋아진 의사들이 어려운 환자를 더 정확히 진단하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좋은 기분이 전문가들의 문제 해결 능력까지 올려주는 것이지요. 아이센을 비롯한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긍정적인 정서는 아주 자그마한 것이라도 사고의 유연성을 높여주고, 집중력과 기억력을 증가시켜서 인지능력을 뚜렷하게 향상한다고 했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면 판단력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활성화되는데, 아마도 뇌의 도파민 레벨이 일시적으로 높아져서 뇌의 다양한 영역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반면에 짜증, 분노, 스트레스 등 부정적인 정서는 본능적인 감정을 일으키는 편도체를 자극해서 전두엽의 기능을 약화시킨다는 거죠. 버브처럼 오랫동안 지속되면 전두엽이 손상되기도 한다는 겁니다. 버브는 외부적인 요인이 겹치고 겹쳐서 도저히 신바람이 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소송에 휘말리자 밴드 내에서도 멤버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네가 잘못했네’, ‘이렇게 처리해야 하네’ 등등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갈라서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외부의 시련에도 불구하고 멤버들끼리 뭉쳐서 긍정적인 힘을 발산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굳이 위인들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외부의 시련은 내부를 뭉치게 하니까 말입니다. 2008년 버브는 재결합 후 새 앨범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고, 이듬해 다시 해체하고 사라졌습니다. 전성기를 이어가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지요.
비슷한 시기에 인기를 얻었던 라디오헤드와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라디오헤드는 내놓는 앨범마다 음악적 변화를 시도해서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창의성이 폭발하던 시기에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멤버 교체 없이 그 힘을 유지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명이라는 걸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 곳곳에서 발견되죠. 지난 한일 월드컵 때는 그런 기운으로 불가능하다던 4강까지 올라갔습니다. 요즘 어려운 곳이 많지요. 이럴 때일수록 여러분의 조직에서 신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그러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