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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에서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미국에서는 1941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테드 윌리엄스가 0.406을 기록한 이래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고, 우리나라에선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MBC 청룡의 감독을 겸임했던 백인천 선수가 0.412를 친 이래 사라졌습니다. 70년 가까운 일본 프로야구에선 아직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투수력이 좋아져 타자들의 타력이 상대적으로 나빠졌기 때문 아니야?’라고 생각한 분 많으실 것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아닙니다. 미국과 한국 모두 타자들의 평균 타율은 다소 향상되었습니다. 프로세계에서 투수들만 노력하는 건 아니니까요. 타자들도 신체조건, 타격 기술, 연습방법 등을 부단히 개선하면서 나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는요, 그래프로만 보면 명확한데요. 평균 타율은 높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타율의 표준편차도 작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른쪽 극단값이 나타날 확률이 낮아진 것이죠. 즉 타자들이 옛날에 비해 평균적으로는 약간씩 좋아지고 있지만, 잘 치는 선수와 못 치는 선수의 실력 차이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야구가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즉 공격과 수비, 양쪽 다 발전했다는 것이죠. 타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웬만큼 잘하지 못하면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없으니까 못하는 선수들이 없어졌고요, 반면에 투수력과 수비력이 좋아지고, 포지션별 전문화, 빅데이터 같은 통계 활용으로 타자들에 대한 견제도 극심해졌기 때문에 성적이 아주 높아질 수도 없었던 것이죠. 각자의 위치에 있는 선수들이 최고의 실력을 발휘해서 경쟁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편차가 작아지게 된 겁니다. 프로야구라는 전체 시스템이 안정화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죠. 야구 전문가들이 4할 타자에만 집중하고 있을 때 시스템 전체로 눈을 돌려서, 이 사실을 밝혀낸 사람은 놀랍게도 진화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인데요, 굴드는 오랫동안 하버드대학교와 미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했으며, 생물이 오랜 기간 종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종분화가 이뤄진다는 단속 평형설을 집대성했습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해석을 두고 다른 진화론자들과 평생 논쟁했는데요. 진화론을 매우 냉철하게 해석했습니다. 단세포생물에서 시작해서 인간으로 점점 복잡해지는 방향으로 진화되었다는 종래의 학설을 뒤집었습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지구는 박테리아가 지배하고 있고, 다만 종의 다양성이 늘어나 인간이라는 우연적인 존재가 나왔다고 해석합니다. 생태계의 대표자는 인간이 아니라, 원시 생명체가 살던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박테리아라는 것이죠. 그 근거로 박테리아의 수, 지구 환경에서 박테리아의 유용성, 심지어 박테리아의 무게 등에서 박테리아가 아직도 지구 생태계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다는 거지요. 그는 바닷속과 땅 속에 존재하는 총박테리아의 무게를 추정하면 나무 같은 지구 상의 어떤 생명체보다 무게가 많이 나갈 거라고 추론했습니다. 아까 야구 얘기랑 뭔가 통하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는 어떤 현상을 볼 때 해당 사안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볼 줄 압니다. 모든 전문가들이 4할 타자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을 때 야구라는 시스템 전체를 보았고요. 진화론에서도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 유체 이탈해서 생태계 시스템을 전체에서 바라보았습니다. 외계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거지요.
그는 이런 관점으로 희귀병도 이겨냈는데요, 마흔 살에 난치성 암인 복부 중피종에 걸렸습니다. 진단 후 평균 생존기간이 8개월 이하인 치명적인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중피종 사망자 통계 분포를 검토해보니 오른쪽 꼬리가 긴 그래프를 그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상당수는 수개월 이내 사망하지만 완치되어 재발 없이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죠. 그리고 자신의 젊은 나이, 세계 최고 의료시설에서의 치료, 초기 발견 등으로 미루어 자신이 오른쪽 꼬리에 속한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치료를 견뎌냈고 완치되어 그로부터 20년을 더 살았습니다. 오늘 굴드의 이야기를 해드린 건, 조직 내에서 창조와 혁신을 이끄는 데 있어서도 이런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스타트업은 태생적으로 창조와 혁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과 다른 걸 만들어내야 되니까요.
그런데 기업은 성장해 나가면서 프로세스를 효율화하고 회사를 관리하기 위해 법규를 만듭니다. 지속적으로 제품을 개선하는 방법도 개발해서 활용합니다. 시스템이 생겨나는 것이죠. 래리 그라이너, 피터 드러커, 짐 콜린스와 같은 대가들이 이런 걸 연구를 했습니다. 이분들은, 사용하는 용어는 다를지라도 조언은 명쾌합니다. 성장하다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변화와 혁신을 하라는 이야기죠. 이걸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경영자들은 경영시스템을 안정화하면서 동시에 매일매일 혁신을 외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혁신과 경영시스템은 아까 20세기 초반의 야구와 현대 야구처럼 서로 다른 시스템입니다. 창조와 혁신은 평균은 낮고 실패율은 클지라도 간혹 성공하면 엄청난 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안정화된 경영은 기존 것을 개선하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괜찮고 큰 실패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산업 쇠락 같은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는 몰락할 수도 있습니다. 안정화된 시스템을 갖추면서 혁신을 하는 건 마치 현대 야구 시스템에서 4할 타자를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이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조직을 분리해서 혁신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시스템 속에서 혁신이 불가능하다는 게 아닙니다. 매우 어렵다는 것이죠. 4할 타자에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창조와 혁신이란 것은 제품개발 행위 하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회사의 제도, 일하는 방식, 기업문화, 사람들의 특성, 전략, 경쟁, 소비자에 대한 태도 등 모든 요소들이 서로 관계 맺는 시스템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굴드처럼 창조와 혁신에서도 시스템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