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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3일 전설의 복서 무하마드 알리가 파킨슨병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리는 뛰어난 언변과 쇼맨십,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운동 등으로 유명해서 타임지가 뽑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에서 최고 영향력 있는 스포츠맨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최강의 복서 중 하나이자 권투를 혁신한 선수였습니다. 1942년 1월 미국 켄터키주 루이빌,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에서 태어난 알리는, 본명은 캐시어스 클레이였는데요, 12살 때 복싱을 시작해서,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 해 프로로 전향해서 착실히 전적을 쌓은 후, 드디어 1964년 2월 세계챔피언인 소니 리스턴에게 도전했습니다. 리스턴은 이전 두 경기를 모두 1회 KO로 무자비하게 이겼기에, 도박사들은 리스턴의 손쉬운 승리를 점쳤습니다.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자 알리는 빠른 스텝으로 춤추듯 리스턴의 주먹을 요리조리 피했고, 시종일관 잽과 연타를 날렸죠. 강펀치가 없었기에 다운되지는 않았지만 리스턴은 충격이 심했던 모양입니다. 7회 시작종이 울렸는데도 링에 오르지 않고 경기를 포기했던 겁니다. 알리라는 스타가 탄생한 순간이었죠.
경기 전 인터뷰에서 떠벌렸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겠다”라는 말을 실천한 것입니다. 나비처럼 주먹을 피해 다니다가 기회가 오면 벌처럼 공격하는 전략은 향후 알리의 전매특허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에 무하마드 알리로 이름을 바꾸고 9차 방어전까지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나 흑인 인권운동단체에 가담했던 알리는 베트남 전쟁 징병을 거부해서 챔피언 자리를 박탈당하고 정부와의 법정투쟁을 이어갑니다. 이로 인해 25세 전성기에 3년 5개월간 경기를 치르지 못했습니다. 전성기를 벗어나 복귀한 알리는 조 프레이저, 조지 포먼 등 시대를 초월한 핵주먹들과 대결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경기는 1974년 10월 30일 세계챔피언 조지 포먼과 자이르에서 벌인 시합이었죠. 당시 25살 전성기의 포먼은 40전 전승에 무려 37승을 KO로 이긴 역대 최강의 돌주먹이었습니다.
알리는 32살의 노장이었으므로, 대부분 포먼의 KO승을 예상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예상대로 알리는 수세에 몰렸습니다. 전성기 시절의 스텝은 무뎌졌고 포먼의 주먹을 로프에 기대서 막아내기에 급급했죠. 그런데 이런 수비가 알리의 전략이었습니다. 알리는 포먼의 펀치를 대부분 글러브로 막아냈고 몸에 맞은 펀치는 로프에 기대 충격을 흘려보냈습니다. 회가 지날수록 포먼의 펀치가 느려졌고, 결국 8회 종료 20초 전 알리의 펀치가 포먼에게 적중했습니다. 기회를 잡은 알리는 그동안 아껴두었던 힘을 모두 퍼부어 포먼을 KO 시켰습니다. 이 경기는 복싱 역사상 가장 짜릿한 역전승으로 회자되며, 실버스타 스탤론을 인기스타로 만든 영화 <록키>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알리는 정면대결로는 포먼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전성기 때도 주먹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죠. 또 스피드가 줄어들어서 포먼의 펀치를 모두 다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두들겨 맞는 맷집 훈련을 했고, 로프에 기대서 충격을 흡수하는 rope-a-dope 기술을 고안했습니다. 이처럼 알리가 권투시합의 전략을 혁신한 이후, 현대 선수들은 아웃복싱과 인파이팅을 모두 섞는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알리는 힘든 상대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정면대결을 피해 나비처럼 수비를 하다가도 기회가 생기면 벌처럼 과감하게 공격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명한 심리학자 토리 히긴스에 따르면 수비와 공격을 결합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심리상태, 감각, 판단능력, 가치관까지 모두 반대로 작용하기 때문인데요. 수비적 태도를 가지면 위험신호에 민감하게 되고 코티졸 같은 호르몬이 나와 불안하게 되기 때문에, 매사에 신중하고 보수적으로 변해서 행동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다 보면 비판이 많아지고 비관주의에 빠지게 되죠. 반면 적극적 태도로 임하면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게 되고,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같은 호르몬이 쾌감을 일으켜서 일을 빨리 추진하게 만들지만, 시야를 좁히기 때문에 위험을 감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면 작은 실수에 무너지기도 한다는 거죠.
기업도 마찬가지인데요. 하버드대 교수들이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기업들의 전략을 연구했습니다. 수비적인 태도로 접근한 기업은 비용절감에만 집중한 채 매사에 소극적으로 변해서, 조직 내 비관주의가 만연하고 구성원들이 생존에 매몰됩니다. 반면, 공격적인 태도의 기업은 근시안적이고 민첩한 대응력이 떨어져서 위기에도 낙관주의에 빠져 심각성을 오랫동안 인지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효과적으로 경기침체를 극복한 기업은 수비와 공격을 결합한 기업들이었는데요. 가령 유통업체 타깃은 2000년 침체기에 공급 단계를 축소시키고 인기 없는 브랜드를 통합하면서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경기침체로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자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여 매장 숫자를 늘렸습니다. 수비와 공격을 결합한 결과 침체기가 끝나자 매출이 40%, 이익이 50% 증가하는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포먼에게 챔피언 벨트를 빼앗은 후 10번 방어전에 성공한 알리는, 1978년 2월 레온 스핑크스에게 아쉽게 판정패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 9월 스핑크스에게 도전하여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으로 타이틀을 되찾았습니다. 이로써 헤비급 최초로 세계챔피언 타이틀을 3회 차지한 선수가 되었죠. 이처럼 알리는 자신을 이긴 조 프레이저, 켄 노튼, 레온 스핑크스와의 복수전에서 모두 승리했습니다. 그만큼 상대를 분석해서 철저히 방어하면서도 창조적인 공격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수비를 하면서도 일거에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둬야 합니다. 10%를 목표로 줄일 때 15%로 더 줄이고 초과분 5%는 공격용으로 남겨둬야 할 것입니다. 알리가 포먼에게 계속 맞으면서도 역전을 위한 힘을 비축했듯이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