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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놀라운 예외의 효과

biumgonggan 2021. 9. 16. 17:06

1990년 평생 NGO 섹터에서 일했던 제리 스터닌은 아동 구호 기구인 세이브 더 칠드런 지부장 자격으로 베트남에 파견되었습니다. 베트남 아이들의 영양실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지요. 베트남 정부가 요청한 일이었지만 고위 공무원들은 국제기구 사람들에게 상당히 비협조적이었습니다. 그들은 6개월 사이에 뭔가 보여주지 않으면 이 프로젝트가 지속되기 어려울 거라는 말을 할 정도였죠. 스터닌은 여러 단체에서 분석한 아동 영양문제 관련 보고서를 읽어보았는데요. 대부분 베트남의 빈곤, 열악한 위생상태, 물 공급 부족, 영양실조에 대한 무지 등을 주요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빈곤을 퇴치하고, 위생설비를 구축하고, 상수도를 깔고, 주민들을 교육시키려면 6년으로도 부족한데, 6개월이라니…’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 할지 정말 난감했습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서 일단 시골 마을을 돌며 어머니들에게 아이들의 몸무게와 키를 조사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데이터를 보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느 곳이나 예외가 있었던 것이죠. 영양상태를 조사하던 어머니들에게 물었습니다. “혹시 가난한 집에서도 뚱뚱한 애가 있었나요?” 어머니들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스터닌은 극빈층이지만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운 집을 찾아갔습니다. 몇 곳을 관찰한 결과 그들은 보통 가정과 다른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베트남 가정은 하루 두 끼를 먹였지만, 우량아를 키운 집은 같은 양을 네 끼에 나눠서 먹이고 있었죠. 또 보통 가정에서는 아이들이 먹기 좋은 쌀밥과 부드러운 반찬을 먹었는데, 예외적인 가정은 어른들이 먹는 새우와 게를 밥에 섞어주었고 식용으로 쓰지 않던 고구마 잎을 먹이고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스터닌은 시범 삼아 10개 가정씩 묶어서 이런 식으로 식습관을 바꾸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6개월 만에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65%나 좋아졌습니다. 아이들이 달라지자 새로운 식습관은 어머니들의 입 소문을 통해서 베트남 곳곳으로 전파되었고, 영양실조 문제는 대폭 개선되었습니다.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아이들의 위는 한꺼번에 많은 음식을 소화시킬 수 없는데요. 같은 양을 네 끼 식사로 나눠먹는 것이 보다 많은 영양을 섭취하는데 유리했습니다. 또한 새우, 게, 고구마 잎은 부족한 단백질과 비타민을 공급할 수 있는 최고의 대안이었죠. 제리 스터닌은 베트남에서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조직 내에 숨어있는 긍정적인 예외를 찾아내서 배우자고 하는 긍정적 이탈 운동을 펼쳤습니다. 이후 영양문제뿐 아니라 교육, 공공보건, 범죄 등 적용 범위도 넓어졌고, 나중에는 비즈니스 영역까지 확대되어, 2008년에는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아이디어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혁신은 예외에서 시작됩니다. 저명한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과학은 꾸준한 성과 위에서 천천히 발전하는 게 아니라, 기존 개념을 부정하는 예외가 출현하면서 혁명적 전환을 거치며 발전한다고 했습니다. 기존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예외적인 주장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이들이 기존 이론과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죠. 생명체들이 이렇게 복잡하게 진화한 것도 돌연변이라는 예외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 아칸소 주에서 이익을 조금 남기고 최대한 많이 판매하는, 당시에는 상당히 예외적인 방식을 내세운 할인 판매점이 등장해서 전 세계 유통 시스템을 바꿔 놓았는데요. 이것이 지금의 월마트입니다.

 

희망적인 것은 우리 인간이 예외적인 것에 민감하다는 사실입니다. 비즈니스 현장에서 예외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건, 그걸 너무 분석하려고 하기 때문일 겁니다. 예외는 누구나 발견할 수 있지만, 한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일이고, 그걸 새롭게 해석하고 배우려면 적잖은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기 때문에 고려의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입니다. 제리 스터닌은 예외를 분석하지 않고 그냥 따라 했습니다. 따라 하다 보면 이유는 나중에 깨닫게 됐습니다. 스터닌은 1962년 대학 졸업 후 미국 정부의 평화봉사단에서 일을 시작한 이래 평생 NGO에서 활동했습니다. 필리핀, 네팔 등 아시아 지역에 주로 파견되어 구호활동을 했습니다. NGO 일이라는 것이 자원도 없이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죠.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전쟁이나 기아 같은 커다란 문제를 다뤄야만 하는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는 일단 작은 일부터 시작해보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디에서도 특이한 사례, 즉 긍정적 예외는 발견되었으며, 거기서 많은 걸 혁신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놀라운 예외의 효과가 평균이라는 폭군 속에 숨어 있습니다. 의외로 우리는 이미 답을 가지고 있거든요.” 이세돌이 알파고를 이긴 방법도 알파고도 모르는 예외적인 수를 뒀기 때문입니다. 컴퓨터는 절대로 예외적인 수를 시도하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예외적인 일을 하는 게 바로 인간의 창조적인 능력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경쟁이 강화되면서 기업의 전략이나 행동은 점점 패턴화 될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주변에 있는 예외에 눈 떠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