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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작은 세상부터 장악하라

biumgonggan 2021. 8. 23. 14:32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큰 연못에서 큰 물고기들과 경쟁하지 말고, 작은 연못의 큰 물고기가 되라고 조언합니다. 거기서 힘을 기르라는 것이지요. 작은 연못의 왕이 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한 혁신기업들 참 많죠. 애플은 오랫동안 마니아들을 열광시켰고, 페이스북은 하버드의 학생들을 장악했고요, 우버와 에어비앤비도 초기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성공경험을 다른 지역으로 확장시켰습니다. 기업뿐만 아니라 대중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오늘은 작은 연못에서 시작해서 메탈로 세계를 주름잡은 뮤지션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메탈리카, 이름 들어보셨습니까? 2017년 1월에 고척돔에서 최초로 열리는 공연을 메탈리카가 하기로 했습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독 인기 있는 밴드지요. 1996년부터 세 차례의 공연을 했고요, 한 번에 수만 명의 관중이 입장해서 누적 관객수가 10만 명을 훨씬 넘습니다. 지난 2006년 공연에서는 수만 명이 메탈리카의 노래를 따라 불러서 멤버들을 감격시켰는데요, 그랬기 때문인지 이번 아시아 투어에서도 한국을 제일 먼저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메탈리카의 음악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주류의 음악이 아니거든요. 이들의 음악은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로 스래쉬 메탈이라고 하는데요, 세게 때리다(thrash)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거센 기타의 반복적인 코드 진행, 드럼의 빠른 연주, 꽥꽥거리는 금속성의 보컬 등 그야말로 시끄럽고 공격적인 음악입니다. 80년대 초반 MTV를 통해 경쾌한 음악을 선보였던 LA 메탈이 미국 하드록 시장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반면, 유럽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던 빠르고 강력한 헤비메탈에 빠져든 팬들도 있었는데요, 이들은 숫자가 작아서 언더그라운드에서 팬들끼리 서로 테이프를 교환해 녹음하고, 해외 잡지를 돌려보며 음악을 즐겼습니다. 이런 음악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미국에서 더 빠르고 과격한 음악을 하기 시작한 것이 스래쉬 메탈이었습니다. 이중에 메탈리카도 있었죠. 덴마크에서 미국으로 테니스 유학을 왔던 라스 울리히(Lars Ulich)는 치라는 테니스는 안치고 영국 헤비메탈에 빠져들어서, 모터헤드란 그룹의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드러머 라스가 모터헤드 같은 밴드를 만들자고 멤버들을 모집하자, 역시 강력한 음악에 매료됐던 제임스 헤트필드(James Hetfield)가 참가해서 1981년 결성한 밴드가 바로 메탈리카입니다.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음악을 하기 위해, 본거지를 LA에서 그나마 스래쉬 메탈 팬들이 있었던 샌프란시스코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공연을 하며 실력을 쌓아 나갔습니다. 비록 팬들이 많지 않았지만 그들은 스래쉬 메탈 시장을 장악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다른 밴드들은 스피드와 강력함에 올인한 나머지 모두 엇비슷한 스타일의 음악을 했습니다. 그러나 메탈리카는 멜로디 라인을 만들거나 곡의 구성을 오케스트라식으로 짜임새 있게 하는 등 작곡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테니스 선수인 동시에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은 라스와 오페라 가수를 어머니로 둔 제임스가 주축이 되고, 모든 멤버들이 모여서 곡을 만들었습니다. 멤버 각자 평소에 만들어놓은 신나는 기타 리프나 귀에 달라붙는 멜로디를 가지고 오면, 녹음실에 수첩을 들고 모여 앉아, 제임스가 우선 가사를 붙이고 나머지 멤버들이 끙끙대면서 곡과 가사를 고쳐나갔습니다. 각자 자신의 파트에 공을 들이고 공동으로 만들다 보니 스케일이 큰 임팩트 있는 음악들이 나올 수 있었는데요. 이 밴드는 스래쉬 메탈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강력한 팀워크로 똘똘 뭉쳤습니다. 그 일화가 있죠.

 

2003년 로버트 트루히요(Robert Trujillo)가 베이시스트로 영입되었을 때, 그 역시 실력을 인정받은 뮤지션이었지만 당시 메탈리카의 명성에 비해서는 무명에 가까웠습니다. 메탈리카의 변호사가 당분간은 기존 3명의 멤버들이 수익의 3분의 1 남짓 받고 본인은 5% 정도를 받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 수입도 트루히요에게는 엄청난 것이어서 만족스럽다고 했는데요, 옆에 앉아있던 라스가 한마디 합니다. “그건 우리 밴드의 정신에 맞지 않아. 지금부터 정확히 4분의 1로 해야지.” 그러자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OK를 했습니다. 비록 라스와 제임스가 음악적으로는 항상 많은 기여를 했지만 팀워크를 위해 언제나 똑같이 분배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메탈리카의 음악은 다른 스래쉬 메탈 밴드의 음악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금새 독창적인 밴드로 자리매김했고, 스래쉬 메탈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배하게 됐습니다. 스래쉬 메탈 팬을 사로잡은 후, 메탈리카는 다른 영역으로 확장해 나갑니다. 1985년 영국에서 열린 몬스터스 오브 록 페스티벌은 스콜피온스, 오지오스본, 반 헤일런, 본 조비 등 유럽과 미국을 주름잡았던 쟁쟁한 밴드들이 참가했습니다. 여기에서 말석을 차지한 메탈리카는 그때까지 한 번도 서본 적 없는 5만 5,000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중 앞에서 외쳤습니다. “눈 화장에 쫄쫄이 입고 나와서 ‘Oh baby’하고 지껄이는 친구들은 메탈 밴드가 아니야. 쫄쫄이 바지 따윈 잊어버리고 우리랑 같이 헤드뱅잉을 해 보자고!” 굵직한 밴드 앞에서 전혀 기죽지 않은 공연으로 메탈리카는 일반 메탈 팬들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게 됩니다.

 

‘비록 락이라는 큰 영역에서는 마이너라 할 수 있지만 스래쉬 메탈 분야에서는 자신이 일인자’라고 자신했기 때문이죠. 이후 내놓은 음반부터 연달아 히트를 치고, 1991년 발매한 5집은 미국에서만 1,600만 장 이상 팔리는 대히트를 치며 대중음악 시장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팔아 치운 음반은 1억 1천만 장을 넘어 대부분의 LA 메탈 밴드의 기록을 추월했습니다. 에어비앤비 등을 키워낸 와이 콤비네이터의 대표 샘 알트만이 성공한 스타트업의 비결을 말해달라는 질문에 대해 이런 말을 한 적 있습니다. “두 종류 접근이 있습니다. 많은 사용자가 조금씩 좋아하는 것을 만들거나 소수의 사용자가 열렬히 사랑하는 무언가를 만드는 일입니다. 소수의 사용자가 사랑하는 것을 만드세요. 소수의 사용자가 사랑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사랑하도록 확장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사랑하게 만드는 것보다 훨씬 쉽습니다.” 혹시 창조적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하십니까? 남들이 주목하지 못했던 부분을 관찰해서 선점하는 것은 어떨까요? 처음부터 무모한 곳에 들어가기보다 작은 연못을 장악해 나간다면 더 큰 곳을 지배할 수 있는 혁신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