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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

biumgonggan 2021. 8. 23. 13:52

1965년 어느 가을날 새벽, 칼텍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는 한 교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교수님, 교수님께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기쁜 일입니다.” 그랬더니, 그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나는 자고 있었어요. 아침에 다시 전화하시지요.” 이후에도 전화가 계속 오자,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아침에 <타임>지 기자와 통화를 하게 됐을 때 노벨상이 이렇게 번거로운 건지 몰랐다며, 수상을 거부하면 어떻겠냐고 상의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기자는 그러면 더 큰 소동이 벌어질 거라며 교수를 설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노벨상을 받기로 했습니다. 바로 괴짜 물리학자 파인만의 이야기입니다.

 

1918년 뉴욕시에서 태어난 파인만은 어려서부터 수학, 물리, 화학 등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는데요, 고등학교 때는 스스로 만들어낸 수학 기호를 사용해서 교과서와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풀었습니다. 이후 MIT와 프린스턴에서 공부했고요, 2차 세계대전 중에는 핵무기 개발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해서 물리학계의 세계적인 거장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이후 거의 평생 칼텍에서 연구했고, 양자 전기역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습니다. 파인만은 입자의 활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직관적인 도형으로 표현하는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발명해서 어려운 물리학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업적으로 1999년 파인만은 영국 물리학회지가 뽑은 인류 역사상 최고 물리학자 순위에 아인슈타인, 뉴턴, 갈릴레오와 함께 7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는 항상 익살이 넘쳤고 유머스러웠으며 여러 가지 기이한 일화를 남겨서 대중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의 위트는 항상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그는 노벨상 수상 연설을 이런 말로 시작했죠. 동료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를 인용하는 것을 통해 이미 충분히 보상받았다,라고 말이죠. 이건 진심이었습니다. 그가 노벨상을 받으려 하지 않았던 건 그 상이 그에게 큰 의미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남들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말해도 그는 그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우선 백지에서 생각해서 판단했습니다. 그가 평생 권위주의를 인정하지 않은 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여러 학계의 원로들이 모여 교육문제에 대해서 토론하는 학술회의에 참가했습니다. 여기서도 파인만은 다른 원로 학자들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해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었는데요, 토론회가 끝나고 기록원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직업이 뭡니까? 설마 교수는 아니시겠죠?” 파인만이 교수라고 대답하자, 그는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는 타자를 치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요. 당신이 질문하거나 발언할 때는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당신이 교수가 아니라고 생각했죠.” 파인만은 늘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순하게 설명하지 못하면 진정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사물의 본질적인 측면을 고민해서 핵심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걸 가장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죠. 이런 노력이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만들게 했던 것입니다.

 

파인만은 다른 사람들, 사회적 관념, 부와 권력과 같은 세속적인 질서로부터 자유로웠습니다. 그는 모든 걸 제로 베이스에서 판단했습니다. 그의 이런 기질이 챌린저호 참사 원인을 밝혀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파인만은 1986년 1월 발생한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사고의 조사위원회에 추천되었습니다. 맨하튼 프로젝트 때 피폭된 방사능으로 인해 암투병을 하고 있었지만 수락했습니다. 12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대부분 정부와 나사 측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람들이어서,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밝히기를 꺼렸습니다.

그러나 파인만은 국무장관 출신인 로저스 위원장의 권고를 무시하고 나사의 공장들을 독자적으로 방문해서 조사활동을 벌이고 다녔습니다. 조사위원회에서는 얼굴마담으로 노벨상 수상을 데리고 왔는데 골칫거리가 된 것이죠. 이때 이미 나사와 협력업체의 엔지니어들은 고체 로켓 부스터에 사용되는 O링이 문제라는 심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사의 관료적이고 고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이런 문제를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었죠. 똑똑한 파인만이 이 문제를 그냥 지나칠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O링 문제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추운 날씨 때문에 고무 재질의 O링이 탄성을 잃어서 틈새가 발생해 연료가 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그는 공개 청문회에서 O링을 얼음물에 넣어서 탄성이 떨어짐을 TV 앞에서 증명했습니다. 파인만은 챌린저호 폭발사고가 단순히 O링의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서 나사의 관료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가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보고서에 기술했습니다. 파인만은 어떻게든 나사의 책임을 가볍게 하려는 최종보고서에 자신의 보고서가 왜곡되어 들어가길 바라지 않았고, 결국 파인만의 주장대로 그의 보고서는 마지막에 부록으로 따로 실리게 되었습니다. 파인만처럼 환경에 영향받지 않고 사물과 현상을 제로 베이스에서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엄청납니다. 1980년대 중반 인텔이 메모리칩 분야에서 일본 업체들과의 경쟁으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CEO인 앤디 그로브는 창업자인 고든 무어 회장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나가고 새로운 CEO가 영입된다면 그는 어떤 결정을 할까요?” “당연히 메모리 사업에서 철수하겠지.” 이렇게 해서 인텔은 그동안 사업기반을 일군 뿌리가 된 메모리 사업을 접을 수 있었고, CPU 같은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집중해서 다시 한번 고성장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풀어야 할 문제들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회사가 커질수록, 직위가 높아질수록, 경험이 늘어날수록 우리의 판단에 영향을 주는 요인들이 더 많아집니다. 오늘 파인만의 이야기에서 이런 것들로부터 벗어나는 법을 배워보는 건 어떤가요? 남들한테 영향 받지 않고 제로 베이스에서, 해결하려는 사안의 가장 중요한 본질만 가지고 판단하는 겁니다. 읽어주셔서 갑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