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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대부분 비틀스를 꼽는데요,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했고요, 16억장 이상입니다. 대중음악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가장 인기가 좋았습니다. 미국 음악잡지인 빌보드 차트 1위 곡이 21곡으로 이 부분에서도 1등이고요, 차트 1위를 차지한 앨범도 19개나 됩니다. 이들의 히트곡 Yesterday는 리메이크한 가수가 무려 3천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비틀즈에 대해서는 많이 아시니까, 오늘은 좀 다른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존 레논이 죽기 전 마지막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밝혔는데요. 비틀즈 멤버 4명 모두 악보를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들의 노래는 대부분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가 함께 만들었는데요, 한 사람이 멜로디를 흥얼거리면 다른 사람이 고쳐주고,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서, 주로 존이 가사를 만들었는데요, 여기에다 기타 코드를 기록해서 멜로디를 기억했다고 합니다. 네 멤버는 이 종이만 가지고도 노래를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레코딩 할 때는 좀 불편했다는데요, 다른 뮤지션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 그랬답니다. 이때는 멤버들이 노래를 부르고 그걸 제작자인 조지 마틴이 악보로 옮겨 적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폴은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다녔습니다. 기타리스트인 조지 해리슨은 악보를 볼 수 없었던 게 오히려 비틀스 음악에 더 도움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악보를 써서 음악을 만들거나 음악이론에 대해 더 알았다면 존은 “Good Morning Good Morning” 같은 이상한 음조를 쓸 수 없었을 것이며, 폴은 “For No One”에서 보여준 흥미로운 형식을 창조해낼 수 없었다는 거지요. 한 마디로 악보 못 본 게 오히려 혁신에 도움이 됐다는 겁니다. 사실 비틀즈 뿐만 아니라 악보를 못 봤던 스타들이 많습니다. 엘비스 프레슬리, 밥 딜런, 비지스, 지미 헨드릭스, 에릭 크랩튼, 반 헤일런, 밥 말리, 최근에는 테일러 스위프트까지, 하나같이 대중음악사에 획을 그은 사람들입니다.
비틀즈가 악보를 보지 못한 건 음악을 몸으로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1970년 해체하기까지 8년간 그야말로 짧고 굵게 활동했는데요, 데뷔하기 전 몇 년 동안 엄청난 연습기간을 거쳤습니다. 비틀즈는 존 레넌이 결성한 스쿨 밴드에서부터 시작했는데요, 그들이 실력을 키운 건 함부르크의 클럽들과 계약하며 많게는 하루에 12시간씩 무대에서 연주하면서부터였습니다. 무명 밴드가 그렇듯이 이들은 다른 가수의 음악을 수없이 따라 했습니다. 악보를 보지 못하니까 음반을 듣고 자신들의 악기로 똑같은 소리를 내려고 무지 애썼습니다. 무대에서 오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로큰롤, 재즈 가리지 않고 익혔습니다.
당연히 곡을 만들 때도 몸에서 흥얼거리는 소리를 악보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표현하게 됐던 것입니다. 악보를 안보는 다른 가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와 관련된 실험이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조나단 스쿨러 교수의 수단 매체가 사고를 가로막는다는 실험이죠. 그는 참가자들에게 30초 길이의 은행강도 동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상에는 강도의 얼굴이 정확히 잡혔지만 금방 지나갔죠. 이후 20분 동안 다른 활동을 하게 한 후 테스트를 실시했는데요. 비슷한 스타일의 8명의 얼굴이 담긴 슬라이드를 보고 진짜 강도가 누구인지 가려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64%가 강도의 얼굴을 정확하게 기억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그룹의 참가자들에게 5분 동안 강도의 얼굴을 자세히 글로 써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들에게도 똑같이 8 사람의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진짜 강도를 가려내게 했는데요, 겨우 38%만이 진범을 맞췄습니다. 얼굴을 말로 설명하게 했더니 무려 30% 가까이 인지능력이 떨어진 겁니다. 이들의 머릿속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언어라는 수단이 세상을 모두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얼굴을 표현하는 데 쓰는 단어는 몇 개 되지 않지요. 피부색, 머리카락, 눈, 코, 입, 얼굴, 수염 등을 아무리 조합해도 모두 다르게 생긴 70억 인구를 다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현실에는 수천 가지의 빨간색이 있지만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몇 개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문에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 그대로의 느낌이, 몸으로 체득한 느낌이 언어의 틀 내에서 단순화됩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강도의 얼굴을 말로 묘사하는 순간, 그들의 머릿속에서 섬세한 요소들은 사라지고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습만 남게 된 것입니다. 스쿨러는 얼굴에 대한 기억을 말로 표현하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정보에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고, 이를 언어의 그늘이라고 불렀습니다.
악보는 음악을 소화해 낼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일 뿐입니다. 언어도 마찬가지지로, 세상을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지 언어 자체가 세상이 아닙니다. 요즘 기술 발달로 기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경영기법, 빅데이터, 인공지능 기술로 인해 시장과 고객에 대한 폭넓은 인사이트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수단은 현실을 수치화하고 단순화합니다. 복잡한 현실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정리된 수치 속에 현장의 가치 있는 날것의 정보들이 사라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고 싶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국민들에게 의견을 보내달라고 해서, 매일 5천통이 넘는 편지가 백악관에 쏟아졌습니다. 루즈벨트는 보좌관들에게 이를 견해 별로 범주화해서 통계를 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 편지 수십 통을 매일 읽었습니다. 통계 자료에 드러나지 않는 국민들의 감정을, 국민들이 염려하는지, 화내는지, 분노하는지 몸으로 느끼려고 했던 겁니다. 루즈벨트가 획기적인 여러 정책들을 추진할 수 있었던 건 현실에 대한 이런 세밀한 판단이 기초가 됐기 때문입니다. 혹시 조직 내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보고서와 수치들이 오히려 현장에서 멀어지게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의 비틀즈 사례처럼 때로는 수단과 형식에 더해서 현실을 체감하는 게 혁신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