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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로빈워렌, 헬리코박터균 발견

biumgonggan 2021. 8. 23. 10:44

1979년 6월 오스트레일리아의 로열 퍼스 병원에 근무하던 병리학자인 로빈 워렌이 현미경에서 환자의 위에서 나온 박테리아를 발견했습니다. 그때까지 위는 산성이고 무균이라서 세균이 살 수 없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워렌은 고성능 전자현미경으로 1천 배 확대한 사진을 동료들에게 보여줬지만, 그들은 음식물에서 나온 잡균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물론 워렌도 이 박테리아가 뭔지 알지 못했지만, 위에서 자란 게 틀림없다고 생각하니, 강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놀랍게도 그 이후에는 그 박테리아가 계속 보였습니다. 위 조직검사 세 번 중 한번 꼴로 박테리아가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위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쳤습니다. 이 박테리아가 위장병 환자에게서 발견되는 것을 보고 위장병과의 관계를 의심했고요, 그럴수록 동료들은 워렌의 주장을 아무도 믿지 않았죠. 그러다가 신입이었던 배리 마셜이 유일하게 워렌의 말을 믿고 연구에 동참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워렌과 마셜의 연구결과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한 사람의 용기 있는 결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수년간의 연구를 세계적 학술지인 랜싯(Lancet)에 보냈지만 심사위원 전원이 게재를 반대했습니다. 위에서는 박테리아가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연구 자체가 잘못된 것이란 얘기였습니다. 이때 인권, 핵군축, 무상의료 등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편집장 이안 먼로가 독자적으로 심사위원들의 반대를 무마시켰습니다. “가설이 맞는다면 이 연구는 매우 중대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라는 자신의 주석까지 붙여서 논문을 발표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 발견으로 두 사람은 노벨상까지 받았죠. 그런데 말입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워렌이 처음 본 것은 아니었습니다. 1967년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한 교수가 전자현미경으로 이 세균의 사진을 완벽하게 촬영했습니다. 이 사진을 학술지에 실어서 수만 명이 보았지만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19년 일본, 1892년 이탈리아, 심지어 1875년 독일에서도 위 속에 있는 나사 모양의 균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헬리코박터는 100년 넘게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1999년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이를 입증했습니다. 6명의 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쪽은 검은색 셔츠를 입히고 다른 쪽은 흰색 옷을 입힌 후, 두 팀을 섞어서 서로 농구공을 패스하게 했습니다. 이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준 후 흰색 팀이 주고받은 패스의 수를 세도록 했습니다. 영상을 다 보여주고 나서 참가자들에게 “혹시 고릴라를 보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참가자 절반 이상이 고릴라를 보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다시 돌려봤더니 중간에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학생들 사이로 들어와서 가슴을 두드리며 킹콩 흉내를 내고 지나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영상을 다시 본 사람들은 고릴라가 저렇게 활보하는 걸 못 봤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입니다. 고릴라가 카메라 바로 앞까지 걸어와서 가슴을 두드리는 것을 어떻게 보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 이는 인간의 뇌가 기대한 것에 대해서만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무주의 맹시라고 부릅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패스 횟수를 세는 데 너무 집중한 나머지, 바로 눈앞에 있는 고릴라에게는 눈이 먼 것입니다. 무주의 맹시란 다른 말로 하면 전문가가 가지는 함정입니다. 전문가일수록 틀에 박힌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것이죠. 경험과 전문지식이 많을수록 세상을 보는 틀이 더 명확해지기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헬리코박터균은 버젓이 사진 속에 나와 있었지만 위 속에는 세균이 살 수 없다는 의학지식 때문에 볼 수 없었던 것이죠. 물론 우리는 경험과 지식의 도움을 받아 살아갑니다. 경험과 지식은 직관을 만들어 빠른 의사결정을 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패턴이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진리, 소비자의 충족되지 않은 니즈 등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하게도 만듭니다. 요컨대 경험과 지식은 창조와 혁신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비워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컨설팅회사의 대표는 정기적으로 자신들이 쌓은 노하우와 정보를 공개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그래야 옛날 것을 가져다 쓰지 않고 자꾸만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이었는데요. 테슬라가 전기자동차 특허 기술을 공개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업계의 파이를 키우려는 의도가 첫 번째였겠지만, 혁신을 위한 동기부여 효과도 노렸습니다. 테슬라의 CEO인 머스크는, 만약 기업이 특허에만 의존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빠르게 혁신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하며 특허를 공개했습니다.

 

둘째, 겸손해야 합니다. 세인트루이스 아동병원의 제임스 키팅(Keating) 박사는 다른 병원에서 원인을 찾지 못한 환자를 진단하는 의사로 유명했습니다. 다른 의사들은 찾아내지 못하는 희귀병이나 특이한 원인을 찾아낼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실력이 뒷받침돼야 하는 건 기본입니다. 그리고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확실하지 않다’는 생각이 있어야 배우려는 자세를 계속 유지할 수 있습니다.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새로운 걸 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경험과 지식을 비우고 겸손해지는 것, 즉 초심자로 돌아가라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성공해왔던 경험은 매우 중요한 자산입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부채가 되기도 합니다. 리더는 자신의 경험으로 성공해왔기 때문에 그 성공법칙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경험과 지식은 사업의 게임 룰이 바뀌는 곳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 익숙한 것을 떨쳐버릴 수 있을 때, 새로운 것이 눈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