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2013년 10월 4일 하노이의 한 병원에서 베트남의 독립 영웅인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이 102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다음날부터 장군의 빈소에 추모 인파가 몰려들었는데요, 며칠 동안 수 킬로미터의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지압 장군은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인 호찌민과 함께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인물인데요. 사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창의적 전략을 펼치는 창조가 이기도 했습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1911년에 태어난 지압은 원래 군인이 아니라 고등학교 역사교사였습니다. 독립운동을 하다가 프랑스의 탄압을 피해 중국으로 도피했고, 호찌민을 만나 베트남 독립동맹을 결성합니다. 1944년 지압은 베트남 북부지방에 사는 소수민족들을 설득해 월맹군을 창설하고, 사령관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사령관이었으니까 평생 승진을 못해봤죠 지압의 월맹군은 세력을 점점 키웠고 결국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와 맞붙게 됩니다.
여기서 지압 장군은 1만 5천 명의 프랑스군의 예상을 깨고 6만 명에 달하는 병력을 땅굴 속에 숨겼다가 가공할 화력으로 일거에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지압은 이날을 위해 병력과 화력을 철저히 숨겼습니다. 이 전투의 패배로 프랑스가 물러나고 남베트남에 미국이 들어왔습니다. 사실상 이때부터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죠. 지압 장군은 군사력이 월등한 미군을 직접 싸워서 물리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전쟁할 의지를 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게릴라 전쟁을 그래서 벌였는데요, 병사들의 두려움을 자극해 전투 의지를 약화시키는 게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68년 수많은 병사들을 희생시킨 구정 공세를 감행해서 베트남 전쟁의 참혹함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를 계기로 미국 내 반전 여론을 일깨워 결국 미군을 물러나게 만들었죠. 미국 내 여론을 자극해 정치가들의 전쟁 의지를 끊었던이 전략은 대전략으로 불립니다.미국, 중국, 프랑스 같은 초강대국을 이길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지압은 “적이 원하는 시간에 싸우지 않았고, 적이 원하는 장소에서 싸우지 않았으며, 적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싸웠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3불 전략인데, 손자병법 시계(始計) 편에 나와 있는 ‘공기 무비하고 출기불의 하라 적이 준비하지 못한 곳을 공격하고, 적이 생각지도 못했을 때 출격하라.라는 가르침을 실천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적과 다른 창의적인 방법으로 싸운다는 차별화 전략입니다. 그런데 차별화 전략이나 창의적 방식이 성공하기 위해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이 주목한 것이 있습니다.
1967년 북베트남 정부는 미군과의 전쟁통에 희한한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우연히 하노이 근처 홍하 델타 지역에서 청동기시대 유물이 발견됐는데요, 북베트남 정부는 대대적인 발굴작업을 벌였습니다. 물론 지압 장군도 이 작업을 적극 찬성했고요. 이때는 북베트남에 날마다 엄청난 폭격이 가해지던 시기여서, 주로 밤중에 작업을 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물이 기원전 2000년 초기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유적 발굴로 베트남 이청 동기 문화 이래 4000년 동안 독립적인 역사를 발전시켜온 유구한 민족이라는 게 밝혀졌습니다. 북베트남 정부는 국민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트남은 수천 년 역사에서 수없이 강대국의 침략을 받아왔지만 그때마다 자력으로 외세의 침략을 물리쳤다, 지금 미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고 있지만 결국에는 물리칠 것이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싶었던 것이죠. 이렇게 지압 장군은 병사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 일이면 무엇이건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지압 장군에게는 수천 톤의 폭탄이나 수백만 발의 탄환보다 병사들의 믿음이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차별화 전략이 성공하려면 승리에 대한 확신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지 알아보죠. 한 정치학자가 1800년부터 1998년까지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 벌어진 197개의 전쟁을 분석했더니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강대국의 승률은 71%, 약소국은 29%였습니다. 그런데 약소국이 강대국과 전면전을 하지 않고 게릴라 전쟁 같은 차별화 전략을 택했을 때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약소국이 강대국과 정면으로 맞붙었을 때는 24%밖에 이기지 못했는데, 강대국과 다른 방식을 썼을 때는 64%로 승률이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강대국이 일방적으로 이길 것 같지만 창의적인 방식으로 싸운다면 베트남 전쟁처럼 약소국이 승리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얘기죠.
여기서 아주 중요한 숫자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바로 197개의 전쟁 중에서 약소국이 남다른 방식으로 싸운 게 몇 개일까요? 놀랍게도 22개에 불과합니다. 이상하지요? 남다른 방식, 차별화 전략으로 싸우면, 베트남 전쟁처럼, 이길 확률이 매우 높은데 왜 이런 식으로 싸우지 않았을까요? 그건 차별화, 창조, 혁신이 매우 힘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별화는 머릿속에서 한두 시간 고민해서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실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진화되는 게 차별화와 혁신입니다. 따라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므로 더 불확실하고 힘듭니다. 특히 열세에 몰릴수록 싸움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기고 결국 정면대결을 고수하게 되어 패하게 됩니다. 승리에 대한 확신이 차별화와 창조적인 전략을 실행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 되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길 수 있다,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어렵고 힘든 길을 의심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미군을 상대로 승리하게 한 게릴라 전술은 20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진화된 전략이라고 합니다. 그 긴 시간동안 창조가 보 응우옌 지압 장군이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기에 창의적인 전술은 끝까지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약육강식 전쟁터와 같은 지금의 비즈니스 환경에서도 마찬가지로 약소기업들이 상황을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은 판을 바꿔버리는 혁신적이고 차별화된 제품과 서비스로 승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느끼시는 것처럼 창조와 혁신은 결코 만만치는 않죠. 힘들 때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을 다시 한번 다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