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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4일, 마이크로소프트가 차기 CEO로 인도 출신의 나델라를 임명했습니다. 2013년 8월에 CEO였던 스티브 발머가 사임하겠다고 했으니까 후임자 물색에 6개월 가까이 걸린 겁니다. 2000년 빌 게이츠를 대신해서 CEO에 오른 발머를 대체할 사람을 찾는 게 어지간히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이처럼 MS에서 발머의 비중은 절대적이었다고 합니다. 전직 임원은 이런 말을 했죠. “마이크로소프트는 빌 게이츠 없이도 경영될 수 있다. 하지만 스티브 발머의 노력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빌 게이츠가 창조가였다면, 발머는 조력자였습니다. 오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혁신을 완결시키는 조력자 이야기를 해드리겠습니다.

 

조력자의 첫 번째 특징은요, 이들은 투철한 실행 가라는 점입니다. 조력자는 창조가를 완벽하게 보완합니다. 많은 경우 창조 가는 상상력이 풍부한 비 전가인데요, 창조가의 비전을 현실에 맞게 철저히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조력자입니다. 발머가 MS에서 꼭 그랬습니다. 하버드의 기숙사에서 빌 게이츠와 친구가 된 발머는 P&G를 다니다가 1980년 급성장하던 MS에 합류했습니다. 프로그래머가 아닌 최초의 직원이었죠. 그는 처음부터 채용을 비롯해서 광범위한 업무를 맡았습니다. 게이츠의 비전을 현업에서 구체화하는 일이었죠. 게이츠가 소프트웨어로 PC 산업을 지배할 꿈을 가지고 있을 때, 발머는 시애틀 컴퓨터 제조회사의 운영체제를 5만 달러라는 낮은 가격에 구입하자고 경영진을 설득했고 직접 그 계약을 성사시켰습니다.

 

나중에 MS-DOS로 이름을 바꾼 이 시스템은 윈도의 모태가 되었죠. 또 윈도우를 개발할 때 그는 엔지니어가 아니면서도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을 관리했습니다. 개발이 난관에 부딪히면 적합한 기술을 지닌 엔지니어를 기어코 찾아내 스카우트했지요. 이처럼 발머는 MS에서 게이츠의 전략을 실현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었습니다. 천재적이지만 사람들과 소통이 어려운 게이츠에게 발머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평생의 파트너였습니다. 심지어 게이츠의 부탁으로 멜린더 프렌치에게 대신 청혼한 사람도 발머였으니까요.

 

둘째, 위대한 조력자는 사사로운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일 자체에 집중하는 냉철함을 보입니다. 1인자에게 있어 성공은 곧 자신의 명성과 직결됩니다. 기업이 성공할 경우, 그 명성은 대부분 일인자인 리더가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인자는 성공에 눈이 멀어 충동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력자에게 성공이란 의미 있는 일을 하는 행위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명성과 성공을 구분하지요. 이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보스에게 어렵지만 옳은 이야기를 하는 용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MS에 들어온 발머는 성장을 위해 추가 고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시 30명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17명을 더 뽑자고 했지요. 게이츠는 회사가 파산할 거라며 반대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논쟁하다가 게이츠와 같은 집에 살고 있던 발머가 화가 나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결국 발머는 다음날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조력자, 조지 마셜 장군도 그랬습니다. 조지 마셜 장군은 오히려 이런 용기로 기회를 얻었습니다. 마셜은 경쟁자였던 맥아더의 반대로 장군 진급을 못하다가 맥아더가 필리핀으로 옮겨간 후에야 55세에 별을 달았습니다. 육군참모총장 부관으로 백악관에서 열린 회의에 참가했을 때, 루스벨트 대통령은 1만 대의 비행기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든 참석자들이 동의했으나, 마셜만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혼자 반대했습니다. 루스벨트는 화를 내며 방을 나갔고 회의는 흐지부지 끝났지요. 동료들은 마셜도 끝났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루스벨트는 그의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몇 달 후 육군 참모총장이 은퇴할 시기가 다가오자 대통령은 후보 명단에 장성이 된 지 얼마 안 된 마셜의 이름을 올리라고 지시합니다. 결국 1939년 마셜은 다른 선임들을 제치고 육군 참모총장에 파격적으로 임명됐습니다. 얼마 후 태평양 전쟁 당시 마셜은 은퇴한 맥아더 장군을 다시 기용하도록 루스벨트를 설득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수년 동안 자신의 진로를 방해한 맥아더를 천거할 정도로 마셜은 개인적 감정보다는 일 자체에 집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훌륭한 조력자는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1등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에서 2등이 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자신감이 필요한 법이죠. 자신이 만든 최고 작품의 영예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을 조용히 지켜볼 수 있을 만큼 강한 자아와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응용수학 전공으로 하버드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발머는 학창 시절 게이츠보다 수학을 더 잘했지만 이를 드러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마오쩌둥의 혁명을 완성시킨 저우언라이도 그런 사람이었죠. 프랑스에서 유학한 저우언라이는 초기 중국 공산당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소련식의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농민운동을 하고 있던 마오쩌둥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특히 자신에게는 없는 지도자 자질이 마오쩌둥에게 있음을 알고 그를 지지하기로 마음먹었지요. 저우언라이는 1935년 춘이 회의에서 자신이 지도한 전술의 오류를 인정하고 군위원회에서 사퇴하며, 마오쩌둥을 사령관으로 추천했습니다.

 

그는 최고 서열의 자리를 이름 없는 부하에게 과감하게 내주고, 그 사람 밑에서 평생 조력자로 남았던 겁니다. 1949년 공산정권 수립 후에도저우언라이는 27년간 총리로서 국내외 여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는 항상 마오쩌둥을 앞에서 달리도록 했고 자신은 뒤따라갔습니다. 몇몇 당원들은 저우언라이를 마오쩌둥의 가정부라고 불렀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 저술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창의적 기업가가 없으면 기업이 생겨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혼자서 계속 기업을 운영하면 살아남는 기업은 별로 없을 것이다.” 창조 가는 조력자와 함께 있어야 균형감각을 유지해 힘을 발휘합니다. MS에서 발머가 사임한 이유는 혁신이 사라지고 기존 제품에 의존한 전략으로 회사가 정체되고 있다는 비판에 책임을 진 것인데요. 게이츠 없이 발머 혼자로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네요. 조력자 없이 창조가 혼자서는 생존이 힘들고, 창조가 없이 조력자 혼자서는 혁신이 불가능한 법입니다.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여러분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 여러분과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을 조력자로 곁에 두는 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