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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제108회 US 오픈 골프대회는 보기 드문 명승부였습니다. 4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경기를 끝낸 선두 미디에이트(Rocco Mediate)를 타이거 우즈가 한 타 차이로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즈의 티샷은 벙커에 빠졌고, 그다음에 친 벙커샷은 잡초가 무성한 러프로 들어갔죠. 홀까지 90미터가 넘게 남은 상황, 두 타 만에 홀 컵에 집어넣어야 선두와 동률이 됩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죠. 러프에서 우즈가 친 공은 홀에서 4.5미터 거리의 그린 위에 떨어졌고, 마지막 퍼팅한 공은 홀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파 5 홀에서 두 타가 벙커와 러프에 빠졌는데, 버디를 기록한 겁니다. 승부는 다음날 18개 홀을 전부 도는 연장전으로 미뤄졌습니다. 연장전에서도 두 선수는 엎치락뒤치락했고 결국 서든데스 승부 끝에 우즈가 우승컵을 차지합니다. ESPN은 이 시합을 2000년 이후 메이저대회를 통틀어 최고의 명승부로 꼽았습니다. 더욱이 우즈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습니다. 두 달 전 무릎 수술을 해서 연습을 통 못했고, 심지어 발에는 잔금이 가 있었죠. 대회 내내 우즈는 절뚝거리며 걸어 다녔습니다. 동료 선수는 이렇게 말했죠. “우즈는 한 발로 우리 모두를 물리쳤다.” 이처럼 우즈는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가졌고, 위기의 순간에 플레이가 더 살아나는 선수입니다.
1975년생인 우즈는 골프 신동으로 어릴 때부터 TV와 잡지에 출연했습니다. 주니어대회를 석권하며 프로에 데뷔한 우즈는 곧바로 정상에 올랐죠. 우즈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의 경기가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극적인 시합을 많이 펼치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에서 반드시 승리를 따내고야 맙니다. PGA 투어 연장전에서만 통산 15승 1패를 달성했으니까요. 심지어 한 교수(노스웨스턴대학의 제니퍼 브라운, Jennifer Brown)는 우즈가 다른 선수들의 사기를 꺾는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우즈가 참가한 경기에서 상대 선수들의 성적이 하락한 것을 밝혀낸 것이죠. 우즈가 참가한 경기와 빠진 경기를 비교해봤더니 ‘우즈 역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더란 겁니다. 재미있는 건 우즈와 우승을 다투는 상위 랭커들의 성적이 더 뚜렷하게 하락했다는 점인데요. 하위 선수들은 우즈의 참가와 무관하게 비슷한 성적을 냈지만, 상위 선수들은 우즈가 참가한 대회에서 평균적으로 1타를 더 많이 쳤습니다. 이 선수들도 필 미켈슨이나 어니 엘스처럼 대단한 선수들인데요, 이들을 질리게 할 만큼 우즈와 기량 차이가 그렇게 크게 나는 걸까요?
한 연구자(American Enterprise Institute의 찰스 머레이, Charles Murray)가 이에 대한 답을 내놨습니다. 1970년대 이후 PGA 투어에서 1승 이상을 거두고 은퇴한 톱 골퍼들의 기량과 성적에 대해 조사했는데요. 이들이 참가한 시합에서 기량에 관한 통계를 뽑아냈습니다. 드라이브 거리, 벙커나 러프에 빠뜨리지 않고 페어웨이에 공을 올려놓는 비율, 그린에 공을 올릴 확률,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 등을 조사했습니다. 이 데이터의 분포도를 그려보니까, 그림에서 보시는 것처럼, 정규분포를 보였습니다. 평균에 몰려있고 극단 값을 보이는 선수는 적다는 말이죠. 즉 톱 골퍼들의 재능은 대부분 특정 수준에 몰려있고 몇몇 선수가 조금 모자라거나 조금 뛰어나단 뜻입니다. 이런 실력대로 성적을 냈다면 우승 횟수도 정규분포처럼 어떤 평균값에 몰려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우승 횟수는 놀라운 모습을 보였는데요, 극단적인 쌍곡선 모양을 그렸습니다. 1승에 머문 선수가 26%로 가장 많고, 12%가 2승, 16%가 3승, 그러니까 절반이 넘는 선수들이 3승 이하에 그쳤습니다. 그런데요, 50승 이상 극단적으로 많은 우승을 거둔 선수들이 세 명이나 있었습니다. 맨 오른쪽이 72회를 우승한 잭 니클라우스(Jack Nicklaus), 그다음이 62회의 아놀드 파머(Arnold Palmer), 세 번째가 51회 우승의 빌리 캐스퍼(Billy Casper). 기량에서 약간 뛰어난 사람들이 수십 배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작은 차이가 엄청난 격차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사실 수많은 승부는 2008년 US 오픈처럼 아주 경미한 차이로 결정됩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하나의 차이가 100의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날개 없는 선풍기로 유명한 다이슨, 모두 잘 알고 계시죠? 3년 동안 5천 번이 넘는 시제품을 만든 후에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를 개발한 이야기는 많이 알려졌는데요, 그 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다이슨은 먼지봉투를 없애기 위해 사이클론 방식의 기술을 고안했습니다. 강력한 흡입력으로 먼지를 빨아들여 회전시킨 후, 먼지를 크기에 따라 분류하는 방식이죠. 그런데 다이슨이 ‘먼지봉투 없는 청소기’만을 개발하려고 했다면 개발기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을 겁니다. 기술을 완성한 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으니까요. 보통의 기업이라면 기능이 완성됐으니 제품을 그대로 내놨을 겁니다. 다이슨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하나 더 나갔습니다. 기술을 완성한 이후에도 더 편리하고 빼어난 디자인을 위해 다양한 시제품을 만들었습니다. 디자인에 따라 모터 모양을 일일이 바꿔야 했으니 상당히 많은 시간이 들어가게 된 겁니다. 이 청소기는 일본의 상류층 고객에게 판매가 시작돼 성공하게 됩니다. 만약 다이슨이 사이클론 기술을 완성한 후 투박한 모양으로 제품을 내놨다면 어땠을까요? 일본 소비자들에게 명품 이미지로 다가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기업이 위대한 제품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끝에 가서 타협하기 때문입니다. 피곤하고 지쳐서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제품을 내놓으면 그냥 괜찮은 제품이 됩니다. 대단한 제품은 엄청난 게 아닙니다. 마지막에 하나 더 나아간 제품이 위대한 제품이 되는 것입니다. 우즈는 재능도 재능이지만 연습벌레로 유명합니다. 어릴 때부터 체력훈련, 스윙, 퍼팅, 연습라운딩, 숏게임, 과학적인 식사 등 체계적인 훈련을 매일 14시간씩 소화했다고 합니다. 그는 연습할 때도 철저히 계획했다고 하는데요, 공 몇 천 개를 친다는 것처럼 양적인 목표가 아니라 도달해야 할 수준을 두고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건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고야 말았다고 합니다. 이번 분기, 이번 달 목표를 달성하셨습니까? 그러면 5%만 더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제품이 계획한 대로 나왔습니까? 그러면 하나만 더 나아가면 어떨까요. 마지막의 작은 차이가 위대함을 만들 테니까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