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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일본 시마즈제작소의 말단 연구원인 다나카 고이치가 발표됐습니다. “도대체 다나카가 누구야?” 학계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에서조차 그가 누구인지 몰랐죠. 그는 지방대학인 도호쿠 공과대학을 졸업한 학사 출신의 샐러리맨 엔지니어입니다. 교수도 아니고 박사도 아니었죠. 그는 놀랍게도 “너무 평범해서” 특별한 노벨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무슨 이야기일까요? 다나카는 '연성 레이저 이온화' 기법을 개발해 노벨상을 받았는데요. 어떤 기술인지 전혀 모르시겠죠? 단백질 식별방법 중 하나는 질량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입니다. 질량 측정을 위해 제일 많이 쓰는 방법이 단백질 분자에 레이저를 쏘아서 분자를 이온화시키는 기술인데요, 그런데 문제는 이때 열에 약한 단백질이 파괴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이저의 충격을 약화시키는 완충제가 필요한데, 다나카가 이 완충제 개발을 맡았습니다. 개발을 시작한 지 2년이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용기를 착각해 그만 혼합할 생각이 없었던 코발트와 글리세린을 뒤섞고 말았죠. 버리기엔 아까워 레이저를 비춰봤는데, 평상시와 약간 다른 결과가 나왔습니다. 미세한 차이를 인지한 다나카는 후속 연구를 통해 이 보조제가 단백질을 파괴하지 않는 완충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이후, 생명공학이 단백질 연구로 옮겨가면서 다나카가 발견한 기술은 핵심기술이 되었고, 이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상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죠. 다나카는 자신의 발견에 대해 “운이 좋았고, 우연히 세계에 보탬이 된 것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이건 정말 운뿐이었을까요?
히토츠바시대학의 교수들도 이것이 궁금했나 봅니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에서 나온 학술 논문을 대상으로 방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요. 22개 학문 분야에서 4,410개의 논문을 분석하고, 이를 집필한 저자에게 설문을 보내 그들의 연구환경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분석 결과 연구자의 ‘자율성과 권한’이 보장될수록 우연한 발견이 촉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예를 들면, 프로젝트 관리자가 직접 연구를 담당할 때가 그렇습니다. 물론 이런 우연한 발견을 담은 논문일수록 영향력이 커서, 인용빈도도 높았습니다. 반면, 연구자의 권한이 관리자의 감독 아래 있을 경우, 우연한 발견은 줄어들었지만 양적 생산성은 올라갔습니다. 프로젝트에서 발표하는 논문 개수가 늘어난 것이죠.
아마도 인류 최고의 우연한 발견은 페니실린일 겁니다. 1928년 플레밍 박사는 인플루엔자 연구를 위해 접시에 배양하던 포도상구균이 우연히 곰팡이에 의해 죽은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흥미롭게 여겨 본래 연구를 제쳐두고 곰팡이균을 연구한 끝에 페니실린을 발견했습니다. 만약 플레밍이 대규모 리서치 프로젝트의 한 팀원에 불과했다면 어땠을까요? 페니실린은 발견되기 힘들었을 겁니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매니저가 연구를 이끌었다면 플레밍이 곰팡이균을 발견했더라도 리서치 목표를 중간에 바꾸지는 못했을 겁니다. 우연한 발견은 초기에는 매우 조잡하고 모호한 형태로 다가옵니다. 때문에 오랫동안 관련 주제를 고민했던 연구자의 직관만이 그 미세한 신호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연구자가 해당 과제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면, 미약하고 불완전한 증거로 감만으로 관리자를 설득해서 프로젝트의 방향을 뒤바꿀 순 없는 것이죠. 다나카 고이치도 이런 점에서 행운이었습니다. 워낙 완충제 개발 성과가 나오지 않아 다른 사람은 모두 손을 떼고 성실한 다나카에게 모든 것을 맡겼던 것이죠.
이런 미세한 신호를 발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바로, 현장입니다. 우연한 발견을 한 사람들은 작은 일도 직접 처리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나카는 노벨상 수상 당시에도 대부분의 실험을 직접 수행했고 허드렛일을 도맡았습니다. 동료들은 관리자로 올라갔지만 그는 연구현장에 남기 위해 승진까지 거부했죠. 노벨상을 받은 후 회사에서 임원 자리를 제안했지만 이것도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연구현장에 남아 일할 수 있는 펠로우라는 직책을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는 지위가 높아진 게 연구에 장애가 된다고 말합니다. “연구에 전념하기가 더 어려워졌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역시 내가 직접 실험해서 그 결과를 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어요.”아마도 다나카가 조수를 시켜서 실험했더라면 완충제의 발견은 없었을 겁니다. 조수는 미세한 신호를 읽어내지 못했을 테니까요. 위대한 혁신은 허드렛일과 같은 잘 안 보이는 곳에 파묻혀 있습니다. 혁신은 항상 평균이 아니라 예외에서 생기고, 아이디어는 현장의 작은 일에서 생기는 법이죠. 현장의 데이터가 요약된 평균값에는 이런 가치 있는 예외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현장을 요약한 정보만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지 않습니까? 허드렛일은 아랫사람에게 맡기고요. 현장이 아닌 요약된 보고서만을 보다 보면 자칫 혁신의 징후를 감지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저도 이 강의를 준비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 있습니다. 위대한 발견을 하는 사람들은 지위나 돈보다는 평생 일 자체를 즐겼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에 대한 자율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고요. 현장에서 일하는 걸 즐겼고 직접 ‘raw data’를 보며 갖가지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겁니다. 어쩌면 神은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자율성을 바탕으로 현장에서 일 자체를 즐기며 하루하루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해가는 사람들에게 우연한 발견, 커다란 혁신이라는 선물을 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