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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초 뉴욕에서 마리 엘렌이라는 명문가 딸이 무도회에 입고 갈 드레스를 어머니 친구에게 선보였습니다. 어머니의 친구는 화려한 드레스가 천박하다며 혹평을 퍼부었죠. 마리 엘렌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쳐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유명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순간 빨간 실크 커튼을 보았고, 그걸 뜯어 즉석에서 옷을 만들었죠. 몇 시간 후 마리 엘렌 모녀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드레스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유행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옷이었죠. 더욱 놀라운 일은 무도회에서 일어났습니다. 미국 최고 명문가의 상속녀들이 모두 마리 엘렌의 드레스에 감탄했습니다. 모두 그 옷에 대해 이야기했고 누가 만든 것인지 물었던 겁니다. 그날 마리 엘렌은 무도회의 꽃이 됐습니다. 여기에서 어머니의 친구는 누구일까요? 네, 가브리엘 “코코” 샤넬입니다. 그녀 나이 일흔 살 때 일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샤넬은 복귀를 결심합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사업을 접었고, 독일군 장교와 사귄 일로 15년 가까이 프랑스에 돌아가지 못했지만, 샤넬은 늘 파리 패션계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패션계는 크리스티앙 디오르가 주도하고 있었는데요, 디오르의 디자인은 이전의 실용적인 복장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뉴 룩(New Look)'이라고 불렸습니다. 꽉 조인 허리, 부드러운 어깨선, 바닥에 닿을 정도로 내려오는 롱스커트로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내는 디자인입니다. 평소 샤넬은 뉴 룩이 여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디자인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친구의 집에서 아직까지 시들지 않은 디자인 감각을 확인하자, 이런 뉴 룩에 대한 불만과 질투가 폭발했는지도 모릅니다.
드디어 1954년 2월 5일 파리의 루이 캉봉가 31번지에 있는 살롱에서 샤넬의 패션쇼가 열렸습니다. 기자, 사진작가, 배우, 예술가 등 유명인사들이 모여들었지요. 그런데 뉴 룩과는 정반대인, 단순하고 실용적인 스타일에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하지만 세상 모두가 샤넬을 버린 건 아니었습니다. 심플하면서도 우아한 디자인에 미국과 영국 패션계는 두 팔 벌려 환영했습니다. 해외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곧 프랑스에서도 샤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습니다. 뉴 룩에 열광하던 사람들도 허리에 꼭 끼는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버렸습니다. 샤넬은 불과 1년 만에 뉴 룩을 완전히 몰아낸 것입니다. 심지어 디오르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후, 그의 회사를 떠맡게 된 젊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역시 샤넬을 따라 입기 편한 의상을 선보였습니다.
뉴 룩에 대한 승리는, 샤넬이 1920년대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였던, 폴 푸아레와의 경쟁에서 이긴 것과 비슷합니다. 푸아레는 귀족과 부자들을 위한 화려한 옷을 만들었고, 샤넬은 속옷감으로 쓰이던 저지 같은 소재를 활용해 실용적인 의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샤넬이 만든 편리한 의상이 점점 인기를 얻게 돼 푸아레의 패션을 밀어냈습니다. 샤넬은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입기에는 불편한 뉴 룩의 인기도 오래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습니다. 샤넬은 시대의 흐름을 직감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와 같은 시장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 잠시 다른 에피소드를 살펴보겠습니다. 수십 년 전 영국 탐험가들이 말레이시아 고산지대에서 원시 종족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바퀴조차 없는, 그런 문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이 부족의 추장은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탐험가들과 말이 잘 통했습니다. 그래서 탐험가들은 추장을 싱가포르에 데려가 24시간 내내 같이 다니면서
문명세계를 맛보게 했습니다. 선박이며 자동차, 호텔, 아파트, 텔레비전과 전화기 등 수많은 신호들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미래를 미리 보여준 것이죠. 그런 후 추장을 다시 마을로 데려가 지난 경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물었습니다. 놀랍게도 추장은 경험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한 채 오직 하나만을 언급합니다. 그건 ‘수레’였습니다. 장사꾼이 바나나를 가득 채운 수레를 밀고 가는 걸 보고 그 물건의 유용성을 감지했던 겁니다. 그 외의 다른 도시문명들은 자신과 너무 멀리 동떨어져 있어서,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거죠. 샤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꽉 끼는 옷은 여성의 아름다움을 한껏 돋보이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여성의 실제 삶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별 의미가 없다고 보았던 겁니다.
이런 통찰력은 그녀의 신념으로부터 나왔습니다. 샤넬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곳의 소녀들은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지냈다고 하는데요. 색깔은 무채색이었고 실용적인 옷이었죠. 샤넬이 바느질을 배운 곳도 여깁니다. “옷은 편하고 단순해야 한다”는 생각은 단체복을 입던 어린 시절부터 그녀가 가졌던 철학이자 신념이었습니다. 반면, 디오르는 비료사업으로 성공한 부잣집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가족들은 고급의상실에서 주문한 화려한 드레스를 입었고요,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렸던 디오르는 그런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죠. 그에게 옷에 대한 신념은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미래 시장변화에 대한 수많은 시그널들이 널려있습니다. 요즘은 기술도 좋아져서요,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 미래를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그 시그널들은 무의미한 잡음일 뿐입니다. 통찰력은 시그널을 분석한다고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그것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 해석은 남이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겁니다. 즉, 스스로의 생각, 자기만의 열정, 신념 등에 따라 수많은 시그널 중 하나를 선택하는 거죠. 2차 세계대전 이후 억압돼있던 여성들의 욕구는 폭발했습니다. 여기에서 샤넬은 “활동을 원하는 여성들의 실용적인 욕구”를 보았고, 디오르는 “아름다움을 즐기려는 여성들의 욕구”를 본 것입니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이 가진 신념과 자기만의 스타일에 따라 전혀 다른 것을 실현해냈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을 보고 계십니까? ‘業에 대한 신념’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보아도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