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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6년 프랑스 인기 작가인 에밀 졸라는 <작품>이란 소설을 출간했습니다. 주인공은 클로드 랑티에라는 청년 화가인데요, 세상이 자신의 예술을 이해해주지 않는 데 비통해하며 목을 매 자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졸라는 이 소설의 초판본을 친구인 폴 세잔에게 보냈습니다. 세잔은 책을 펼쳐보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하는데요. 세잔은 소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정부와 아들이 있었고, 자신이 졸라에게 한 말이 책에 그대로 나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묘사한 실패한 화가의 모델이 바로 세잔 자신이었던 거죠. 이 둘은 대체 어떤 사이일까요? 둘의 우정은 매우 깊었습니다. 1839년생인 세잔과 한 살 어린 졸라는 엑상프로방스에서 중학교를 함께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일찍아가신 졸라는 집이 가난했습니다. 게다가 몸집이 작고 말더듬이어서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습니다. 그때마다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인 세잔이 졸라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어릴 때는 세잔이 문학에, 졸라가 그림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둘이 가까워지면서 서로 영향을 받아 세잔이 그림에, 졸라는 문학에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둘의 관계는 성인이 되자 180도 뒤바뀌었습니다. 졸라는 20대에 이미 인기작가가 됐고, 세잔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세잔을 은행가로 키우려던 아버지는 그림에 빠진 아들을 못마땅히 여겨 생활비를 끊었습니다. 그래서 졸라가 세잔의 생활비를 대주었습니다. 사실 세잔은 미술학교 입시에도 떨어질 만큼 기초적인 그림 실력이 부족했는데요. 실제로 그의 초창기 작품은 기본 구도나 인물의 균형도 안 된 졸작이 대부분입니다. 세잔은 그림을 그리다 답답해지면 절친한 친구인 졸라를 찾아가 하소연을 늘어놓았습니다. 이렇다 보니 졸라는 <작품>이라는 소설을 자연스럽게 구상하게 됐을 겁니다. 물론 졸라는 이 소설이 비록 세잔에게서 모티브를 얻긴 했지만 그저 예술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세잔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50대 중반에야 겨우 빛을 본 세잔은 화가의 길에 대해 매일 의심했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다독여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졸라만은 자신을 인정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겁니다. 분노에 찬 세잔은 졸라에게 절교 편지를 보냈습니다. '친애하는 에밀. 옛 시절의 좋은 기억으로만 자네를 기억하겠네. 과거의 친구로부터...‘
이렇게 30년 우정은 끝이 났습니다. 사실, 세잔이 자신을 20년간 후원해준 졸라와 절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분노보다는 당시 세잔의 '상황'에 있습니다. 절교를 선언한 1886년은 세잔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해입니다. 아버지는 사망 얼마 전에야 비로소 세잔과 며느리, 손자를 가족으로 받아들였고 세잔에게 40만 프랑의 유산을 남겼습니다. 오늘날 우리 돈으로 100억 원에 가까운 액수입니다. 세잔은 이제 돈 걱정하지 않고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죠. 후원자도 필요치 않았습니다. 막대한 유산 상속이라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세잔은 졸라에게 그리 쉽게 결별을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겁니다. 세잔은 그 후에도 10년을 더 그림에 몰두해서야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대중들에게 인정받은 건 죽은 다음이었습니다. 만약 졸라나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다면 세잔은 '현대미술의 아버지'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세잔을 성공으로 이끈 건 '버티기'가 핵심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성공하려면 네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야 합니다.
첫째, 열정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계속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능력입니다. 잘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열정과 재능은 관련이 높습니다. 잘하는 일을 하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면 자꾸 하게 돼서 더 잘하게 됩니다.
셋째, 축적이 필요합니다. 끊임없는 연습에 의해 어느 수준 이상 올라가야 합니다. 경험곡선 아시죠? 처음에는 늘지 않다가 어느 시간이 되면 급격히 능력이 향상됩니다. 모차르트나 피카소 같은 젊은 천재들은 이 경험 곡선이 매우 짧았던 반면, 세잔은 아주 길었습니다. 축적이 성공으로 연결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넷째, ‘상황’입니다. 시대적, 사회적 여건이 그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건 사람이 컨트롤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닙니다.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버티기’입니다. 이 기간까지 버틴 사람은 성공하고 중간에 포기한 사람은 실패자로 기억되는 것입니다.
예술가가 성공하는 이런 메커니즘은 기업의 창조와 혁신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벤처 투자가들을 많이 뵙게 되는데요, 그분들은 사업 아이디어에 투자할 때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본다고 합니다. 첫째는 시장성, 둘째는 팀워크입니다. 사실 미래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장성이란 벤처업계에서 유행하는 트렌드를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 중요하게 보는 게 팀워크인데요, 이 팀워크가 바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입니다. 성공한 벤처기업들은 대개 초기에 아주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합니다. 가능하면 추가 인력을 뽑지 않고, 규모 확장을 미룹니다. 소비시장보다는 B2B 사업을 유지하는 등 최대한 적자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사업을 운영합니다. 대기업을 이기고 세계 1위가 된 벤처기업들이 일본 교토 지방에 모여 있습니다. 교세라, 닌텐도, 일본전산, 무라타제작소, 시마즈제작소, 호리바제작소, 니치콘, 옴론 등. 이들을 교토기업이라고 하는데, 이들의 공통점 역시 모두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영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 무차입 경영을 하고, 손익계산서가 아니라 현금흐름 회계를 기준으로 경영합니다. 파나소닉 같은 대기업과 경쟁을 시작한 교토기업들은 초기에 ‘생존’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기술과 제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기간 버티는 게 비즈니스의 핵심이었던 것입니다.
세잔과 졸라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요. 그들은 그 후로 평생 만나지 않았습니다. 1895년 세잔은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요. 미술 전문가들은 그의 화풍에 열광했습니다. 그러나 세잔은 정작 자신의 전시회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개인전이 끝난 후 미술상이 세잔에게 찾아와 전시회가 성공적이었다고 떠들어댔습니다. 세잔은 시끄럽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한마디 질문만 했다고 합니다. “거기, 졸라도 왔나?” 졸라가 오지 않았다고 하자 세잔은 매우 실망했다고 합니다. 졸라 덕분에 버티기가 가능했던 세잔, 그는 졸라에게 진심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 아닐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