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PEOPLE

레스터 시티 돌풍의 비결

biumgonggan 2021. 8. 15. 10:33

2015년 11월 28일 레스터 시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14라운드 홈경기를 치렀는데요. 전반 23분 레스터 시티의 미드필더는 골키퍼에게 받은 공을 재빠르게 몰고 가 단 한 번의 긴 공간 패스로 제이미 바디에게 차 주었고, 바디는 그걸 강슛으로 만들었습니다. 불과 몇 초 동안 이어진 공격이었죠. 바디는 11경기 연속 골을 성공시켜서 프리미어리그 신기록을 만들어냈습니다. 맨유의 예전 공격수 판 니스텔로이가 가지고 있던 기록을 깬 것이었죠. 판 니스텔로이도 경기를 본 모양입니다. 그는 트위터에다, “잘했어, 바디. 이제 네가 넘버원이야. 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라고 올렸습니다. 이처럼 2015-16 시즌 레스터 시티의 돌풍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레스터 시티는 바로 이전 시즌 프리미어리그에 승격되어 가까스로 강등을 넘겨 살아남았습니다. 2부 리그가 더 친숙한 그런 팀입니다. 실제로 연고지인 레스터는 영국 중부의 인구 30만 명을 조금 넘는 아담한 시입니다. 130년 가까운 영국 축구 역사상 3번 이상 우승한 팀은 블랙번을 제외하면 모두 대도시에 위치한 팀이었습니다.

 

빅 마켓이라야 돈도 잘 들어오고, 선수 수급도 좋으니까 당연합니다. 그러니까 레스터 시티는 작은 구멍가게라 할 수 있습니다. 언더독이죠. 당연히 돈도 별로 없습니다. 좋은 선수를 보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레스터 시티가, 어떻게 돈 많은 부잣집 구단을 이겨내며 상위권 성적을 거두었을까요? 당연히 두 배 이상 열심히 뛰었습니다. 가진 게 없으니 일단 더 노력해야겠죠.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선수들을 막아내기 위해서 1:1 정면대결을 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두세 명이 틀어막았죠. 매 경기 상대 팀보다 더 많이 뛰었습니다. 20라운드를 치른 상황에서 게임당 태클이 1위라는 건 레스터 시티 선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뛰었는지 말해줍니다.

 

여기에다 지난 2014-15 시즌보다 조직력이 좋아졌습니다. 수비축구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라니에리 감독이 부임해서 체계적인 수비 조직력을 가르쳤습니다. 선수들은 공을 중심으로 25미터의 사각형을 그리면서 함께 움직이게 됐습니다. 씨줄과 날줄처럼 운동장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가 상대의 패스가 느슨해지면 재빠르게 낚아채 역습을 했습니다. 게임당 가로채기가 부동의 1위라는 통계가 이를 증명합니다. 즉 레스터 시티의 선수들은 ‘더 많이, 더 빨리’ 열심히 뛰었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흔히 돌풍을 일으키는 팀들이 대부분 열심히는 뜁니다. 탄탄한 수비력과 조직력으로 상위 팀들한테 지지 않아서 돌풍을 일으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이길 경기를 이기지 못해서 순위는 점점 하락하게 됩니다. 이점에서 레스터 시티는 확실히 다릅니다. 바로 라니에리 감독이 묘안을 짜냈기 때문입니다. 레스터 시티는 주로 공수가 바뀌는 어수선한 시점을 택해 집중적으로 공격을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디의 골이 대표적인 예인데요. 양 팀 조직이 갖춰지지 않은 순간에 공을 돌리지 않고 몇 초 만에 빠르게 공격을 끝내는 것입니다. 리그를 대표하는 강팀들의 공격 전술은 대부분 이와는 다릅니다.

 

공수가 바뀌는 순간에는 일부러 패스를 통해 경기 템포를 조절합니다. 이것이 유명한 티키타카 전술인데요, 바르셀로나와 뮌헨이 대표적인 팀입니다. 이 전술이 먹히는 이유는, 강팀들은 기술이 가장 뛰어난 선수들을 데리고 경기를 하기 때문이죠. 서로 약점이 노출되는 순간에는 싸움을 피하고, 실력으로 정면대결을 하자는 것입니다. 헌데 레스터 시티의 라니에리 감독은 서로 취약할 때 오히려 싸우자는 것이죠. 정면대결로는 부잣집을 이길 수 없으니까, 둘 다 약해졌을 때 힘을 집중해 상대의 허를 찌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두 경쟁을 하고 있지만 패스 성공률이 69.8%로 리그에서 꼴찌입니다. 짧은 패스가 적고 역습 시도가 많다는 것이죠. 레스터 시티의 골은 대부분 이렇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를 위해 라니에리 감독은 선수 개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해야 했습니다. 그만큼 자원이 적으니까요. 가령 2014-15 시즌 5골밖에 기록하지 못했던 바디가 리그 선두를 달릴 정도로 골이 폭발한 이유는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포지션을 바꿔줬기 때문입니다. 기존에는 왼쪽 윙으로 돌파해서 공격을 했지만, 지금은 최전방 공격수로 마무리만 담당합니다. 리그에서 가장 빠른 바디는 공간을 만들기보다 침투하는 데 뛰어나고 골 결정력도 높기 때문입니다.

 

라니에리 감독이 들어오면서 기존 코치진을 그대로 승계한 것도 선수들의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기회를 만드는 데는 발기술이 뛰어난 마레즈를 활용하였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역습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각국 리그에 숨겨져 있던 발 빠르고 젊은 선수들을 스카우트했습니다. 그 결과 리그에서 가장 빠른 팀을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기술보다는 속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적은 비용이 들어갔습니다.예전에 평소 존경하던 노학자를 찾아뵌 적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옛날에는 책도 많이 봤는데, 이젠 눈이 침침해져서 책 읽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야. 그런데 그게 말이야. 이젠 생각을 더 많이 하라는 뜻인 거 같아.” 그렇습니다. 무언가 부족하면 다른 걸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족함의 가치’고 부족함의 이점입니다. 경쟁은 심해지는데 부잣집보다 부족하다고 느끼십니까, 그건 달리 보면 창조적인 묘안을 짜내야 할 절호의 기회란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사용할지 고민해봐야 할 것입니다. 레스터 시티처럼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