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PEOPLE

현대미술계 혁신, 데미언 허스트

biumgonggan 2021. 11. 3. 00:30

1990년 영국 런던 남쪽 변두리, 문 닫은 과자공장 창고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여기에 광고재벌이자 예술품 슈퍼 콜렉터인 찰스 사치가 들렀는데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그는 한 작품 앞에 멈춰 서서, 놀라움에 입을 벌린 채 마비돼 버렸습니다. 바로 골드스미스 대학을 갓 졸업한 데미언 허스트의 ‘천년’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혐오스러운 것이었는데요, 유리상자 안에 구더기, 파리, 소머리를 배치했습니다. 구더기에서 부화한 파리가 썩은 소머리를 파먹고 날아다니다가 천정에 붙은 전기채에 감전돼 타 죽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여정을 매우 적나라하지만 불쾌하게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허스트의 천재성을 알아본 사치는 그의 작품 활동에 모든 비용을 대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자 이듬해, 허스트는 호주에서 거대한 타이거상어를잡아와서 대형 유리관 안에 포름알데히드를 넣고 고정시켰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긴 제목을 붙였는데요, 방부액에 들어있는 공포스런 상어는 영원할 것 같지만, 서서히 주름지고 시들어가고 있음을 표현한 것이었죠. 즉 우리의 삶이 영원할 것 같지만 이 순간에도 서서히 죽어가고 있음을 알려주려고 했던 겁니다. 이 작품은 전시되자 마자 세상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아직까지 미술에서 아무도 이런 시도를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현대미술계에서일약 스타가 됐습니다. 그의 나이 26세였는데요, 공교롭게도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해서유명세를 얻은 것도 같은 나이입니다. 허스트는 이 작품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엄청난 비난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영국음식 피시 앤 칩스에 빗대 “감자칩도 없이 달랑 물고기 한 마리가 5만 파운드라니” 라며 비꼬거나, 지금까지 예술은 문명사회를 대표해왔는데, 허스트의 혐오스러운 작품은 우리를 야만인으로 되돌리려는 시도라는 등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실 이런 강한 호불호는 당연한 게요, 허스트는 기존 예술의 카테고리에 갇혀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는데요, 당시 이 대학의 학풍은 매우 독특했습니다. 학생들에게 그림이나 조각을 가르친 게 아니라 주로 토론을 시켰습니다. 학생들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현대미술가 마이클 크레이크-마틴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그는 뭐든 예술이 될 수 있고, 어디든지 전시공간이 될 수 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허스트 역시 예술이란 어떤 것이다라는 고정관념을 떨쳐버리고 항상 이런 건 왜 예술이 될 수 없지? 를 고민했습니다. 기존 문제를 푸는 것보다 새로운 문제를 찾아내려고 했던 겁니다. 그는 데뷔할 때부터 예술계에서 하지 않던 일을 도발적으로 시도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빈 창고를 빌리고 학생들을 모아서 프리즈전이라는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공모전이나 화랑을 통하지 않고, 그냥 우리끼리 하면 안 될까?라는 생각으로 저지른 것이었죠. 그리고 미술계의 주요 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내고 수백 통의 전화를 했습니다. 전시회는 대성공이었고, 이후 여기 참가했던 작가들은 yBa(young British artists) 즉, 젊은 영국 작가들이라고 불렸습니다. 사치도 여기에서 허스트의 존재를 알게 됐던 것입니다.또 통념에서 벗어난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오랫동안 그는 두 가지 회화를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빠르게 회전하는 둥근 캔버스에 물감을 뿌려 제작하는 스핀 페인팅과 원색의 땡땡이 그림인 스폿 페인팅이 그것이죠.

 

그런데 한 전시회 기자회견에서 출품한 그림 중에 직접 그린 건 하나도 없다고 떠들어댔습니다. 자기는 조수들에게 지시만 했다는 겁니다. 반드시 예술가가 그림을 그려야 하나? 예술가의 생각만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었죠. 지금까지 제작한 1,400여 점의 스폿 페인팅 중 자기가 그린 것은 25개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뻔뻔스럽게 스폿 페인팅을 가장 잘 그리는 조수의 이름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오지랖도 넓은데요. 2004년 사치는 상어 작품을 미국의 헤지펀드 투자가에게 125억 원에 팔았는데요. 허스트는 상어가 부식됐다는 얘기를 듣고 새로운 주인에게 상어를 교체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결국 비슷한 크기의 상어를 잡아 바꿔 넣었습니다. 곧바로 이러면 진품이 아니지 않느냐라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러자 허스트는 예술작품이란 보기 좋으면 된다며, 보기 좋게 만들었는데 왜 야단이냐고 되받아쳤습니다. 그런가 하면 2008년에는 미술계의 관행을 깨고 갤러리를 거치지 않고 작품을 경매에 내놨는데요, 금융위기 여파 속에서도 단일 작가 사상 최고액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현대미술계의 가장 논쟁적이며 문제적인 작가, 데미언 허스트. 그는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기존 관습을 거부하는 작품을 들고 나왔습니다. ‘왜 이건 예술이 될 수 없지?’ ‘전시회는 꼭 화랑을 거쳐야 할까?’ ‘반드시 아티스트가 직접 그려야 할까?’ 이러한 새로운 질문들을 통한 혁신으로 영국 미술에 세계가 주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듯 혁신의 출발은 새로운 질문을 던져 문제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스마트폰 없어도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문제를 인식하지도 못했으니까요. 지금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너무 힘드시잖습니까?허스트는 예술이란 평범한 것을 다른 관점으로 놓아서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대해 의심하는 게 필요하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건 원래 그래,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에 대해 한번쯤은 문제가 아닐까 질문해 보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