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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 끝난 지 15년이 지난 1960년 5월 11일 나치 전범이자 유대인 학살의 실무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이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재판에서 드러난 아이히만의 모습에 유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는 사이코패스 같은 악독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 아닌, 지극히도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집에서는 좋은 아빠, 자상한 남편이었습니다. 재판장의 많은 사람들은 참 의아해했습니다. 이 재판을 멀리 미국에서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 또 있었는데요, 바로 예일대학 심리학과 조교수였던 스탠리 밀그램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연히 유대인 학살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누구보다 절실히 알고 있었겠지요. 아이히만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밀그램 역시 인간의 악한 본성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 유명한 권위에 대한 복종 실험을 수행한 것입니다. 1961년 7월 밀그램은 코네티컷주 뉴헤이븐 시민들을 대상으로 기억과 학습에 관한 연구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했습니다. 실험은 이랬습니다. 두 사람이 제비뽑기를 해서 교사와 학생으로 역할을 나눕니다. 교사가 여러 단어를 불러주면 학생이 따라 읽는 것인데요, 단어수가 늘어나면서 틀리게 됩니다. 그러면 교사는 전기의자에 묶여있는 학생에게 스위치를 켜 전기충격을 가합니다. 계속 틀리면 전압의 강도는 15 볼트부터 450 볼트까지 높일 수 있습니다. 단계를 높일지 말지 고민하는 피실험자에게 실험의 모든 책임은 우리가 지겠다는 말과 함께 전압을 올릴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즉 권위자의 요구에 얼마만큼 무비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었던 것이죠. 놀랍게도요, 450볼트까지 전기충격을 가한 사람이 무려 65%나 됐습니다. 전기충격을 받는 학생이 내는 신음소리와 괴성을 들으면서도 말입니다. 물론 학생 역할을 하는 사람은 배우였습니다. 전기충격을 받는 연기를 한 거였지요. 많은 사람들이 실험을 계속 진행하라는 요구를 거부하지 못한 채 치명적이라고 써진 450 볼트까지 스위치를 올렸습니다. 뉴헤이븐의 선량한 사람들이 아이히만과 다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실험은 심리학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인간은 상황에 따라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밝혀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인지 이 실험은 비윤리적이라고 비판받았습니다. 미국 심리학회는 이 실험을 1년간 조사했고요, 밀그램은 심리학회 회원 자격을 1년간 박탈당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로 옮긴 후 재임용되지 못한 것도 이런 시선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나치의 학살을 악마적 범죄가 아니라 인간의 범죄로 합리화하는 연구를 했다는 이유였지요. 당대에는 파문을 일으킨 실험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독창적인 실험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의 실험은 현재 많은 심리학 실험에 큰 영향을 끼쳤죠. 그는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현실의 이면, 상식의 저편에 숨어있는 진실을 밝혀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먼저 그의 능력은 호기심에 의해 발현되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것도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봤습니다. 하버드에서 조교수로 있을 때, 동료 학자들이 쓴, 좁은 세상 문제를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책을 읽었습니다. 사실 이 주제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누굴 만날 때 세상 참 좁다 라며 한 마디 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밀그램은 궁금해졌습니다. 실제로 좁은지, 좁다면 얼마나 좁은지 구체적으로 낱낱이 알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또한번 사람들을 놀라게 할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보스턴과 교류가 적은 네브래스카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택해서 친구들을 통해서 보스턴에서 일하는 주식 중개인에게 소포를 전달하게 했습니다. 결과는 평균적으로 5.5명을 거쳐서, 그러니까 6.5단계 만에 타깃에게 도착했습니다. 실험 전에 동료 교수들은 100단계라고 추측했는데 말입니다. 좁은 세상을 증명한 것이죠. 이후 이 실험을 여러 곳에서 재현했는데요, 최근에는 페이스북에서 회원 두 명이 몇 단계 친구 만에 연결되는지 테스트했습니다. 2008년에는 평균 5.28단계이던 것이 2011년에는 4.74단계로 줄어들었습니다. 전세계 어떤 사람도 3.74명만 거치면 연결될 수 있다는 얘기죠. 이처럼 숨겨진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호기심과 함께 매우 끈질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코넬 등 명문대학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뉴욕시립대로 옮겼는데요, 이유가 아주 단순했습니다. 도시에서 도시인들의 심리를 연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골보다 도시에서 사람들이 더 빠르게 걷는다는 사실을 측정했습니다. 또 세 명이 하늘을 쳐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따라 한다는 사실도 밝혀냈지요. 또 지하철로 출퇴근하면서 맨날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사를 했습니다. 한 전철역에서 승객 사진을 찍은 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설문을 받았는데요, 사람들은 사진에 있는 인물 중 평균 4명을 알고 있었지만, 인사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사람이 2.5명이었습니다. 밀그램은 이렇게 얼굴은 알지만 말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친한 낯선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도시의 바쁜 생활과 과다 정보가 친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한 사람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도시인들의 심리와 행동양식에 집착해서 수많은 연구를 남겨 도시의 여러 사회심리 현상을 밝혀냈습니다. 밀그램은 익숙한 것을 낯설게 만드는 데 탁월했습니다. 남들이 그저 지나쳤던 것을 호기심을 가지고 끈질기게 연구해서 숨어있는 진실을 밝혀냈지요.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습니다.
대부분의 혁신은 이미 존재하던 것을 새롭게 보이도록 만든 겁니다. 그런 점에서 밀그램을 떠올려보는 건 어떨까요? 그는 호기심을 가지고 주변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각이 생겨날 때까지 계속 바라봤습니다. 한 독서가들이 말하기를 3권의 책을 읽기보다 책 한 권을 3번 읽으라고 합니다. 3권을 읽을 때는 정보를 습득하기에 바빠서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하지만, 한 권을 3번씩이나 반복해 읽을 때는 내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이것저것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것, 이면의 진리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죠. 창의력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그건 결국 호기심과 지속적인 관심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