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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42>
2013년, 할리우드에서 <42>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습니다. 42는 주인공의 등번호였는데요. 그 주인공은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이었습니다. 42번은 특정 구단의 영구결번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전체의 영구결번입니다. 마지막으로 42번을 달았던 선수인 뉴욕 양키즈의 마무리, 마리아노 리베라가 은퇴함으로써 이제 42번을 달고 뛰는 선수는 아무도 없게 됐죠. 영화 초반부에 재키 로빈슨이 말합니다."당신이 내게 유니폼을 주었고, 등번호를 주었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내 열정을 줄 차례다" 누구에게 한 말이었을까요? 재키 로빈슨을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선수로 만들어 낸 오늘의 주인공, '메이저리그의 혁명가' 브랜치 리키입니다. 당시 브루클린 다저스의 단장이었던 브랜치 리키는 야구계의 인종차별을 허문 '야구계의 링컨'으로 불리는데요. 그런데 리키에게 또 하나의 별칭이 있습니다. 바로 '야구의 레오나르도 다빈치'입니다. 끊임없이 야구계를 '혁신'시켰기 때문인데요.오늘은 브랜치 리키의 끝없는 도전정신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야구선수 브랜치 리키의 팜 시스템
1881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태어난 브랜치 리키는 야구선수로서는 별 볼 일 없었습니다. 포수로서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 뉴욕 양키즈를 거쳤고 통산 120경기 2할 3푼 9리 3 홈런 39타점을 남겼습니다. 1경기에서 도루를 무려 13개나 허용하는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죠. 3년 만에 은퇴한 리키는 다시 대학에 돌아가 법학 학위를 땄습니다. 1913년에는 자신이 뛰었던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즈의 감독이 됐죠. 하지만 감독을 맡으면서도 정작 경기 운영에는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조금 더 큰 그림을 그린 것이죠. 리키는 한 경기, 한 경기보다 시즌 전체, 나아가서는 구단의 미래에 대한 '시스템'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지금은 '시즌개막 전 합숙훈련'을 가리키는'스프링캠프'가 익숙합니다만, 이 스프링캠프의 현대적인 버전을 탄생시킨 것이 바로 리키였습니다. 시즌 전에 잠깐 만나서 합동훈련을 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팀 전체적인 전략을 맞춰보는 훈련을 리키가 만들어냈죠. 타격훈련을 하는 배팅케이지나, 투수 없이 타격 훈련을 할 수 있는 피칭머신 모두 리키가 고안해낸 작품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리키가 탄생시킨 것이 있는데요. 바로, 메이저리그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가장 혁신적인 시스템 '팜 시스템'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 구단이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마이너리그로부터 선수를 사 와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선수들은 돈 많은 구단이 모두 휩쓸어가는 부작용이 생겼죠. 리키는 '안정적인 선수 공급원'을 고민했습니다.'선수를 매번 뺏기면 안 되니아예 마이너리그 구단 자체를 사 버리자!'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린 리키는 마이너리그 구단을 여러 개 사 모았고, 메이저리거로 성장할만한 선수를 계약한 뒤 마이너리그 구단에 내려보내 훈련시켰습니다. 이게 바로 선수를 육성한다는 뜻의 '팜 시스템'의 시작입니다. '팜 시스템'은 오늘날 메이저리그를 '꿈의 무대'로 만든, 그야말로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지금은 모든 구단이 이런 식으로 미래의 메이저리거를 양성하고 있죠. 안정적인 공급원 확보라는 브랜치 리키의 혁명적인 사고가 현실화된 결과물입니다. 리키가 팜 시스템을 최초로 구축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리키가 본격적으로 단장 업무에 집중한 1925년 이후 1년 만에 첫 리그우승을 차지했고, 1934년까지 4번 더 리그우승을 차지합니다. 그 중 2번은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어졌죠.
다저 베이스볼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숙제가 생겨납니다. 마이너리그를 통해 수백 명의 선수를 보유하게 됐습니다. 그중에서 메이저리그에서 필요한 선수를 골라내야 하겠죠. 수백 명의 선수를 일일이 살펴볼 수 있을까요. 한두번 스쳐본다고 해서 그 선수의 가능성을 알 수 있을까요. 단순히 타율이 높은 선수가 최고의 선수일까요. 여기서 브랜치 리키는 또 한 번의 '최초'를 시작합니다. 선수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야 했던 리키는 카디널스에서 다저스로 옮긴 뒤인 1947년, 통계 전문가인 앨런 로스를 고용합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야구 통계는 '타율'에만 집중하던 시절이었는데요. 하지만 로스는 장타율과 출루율에 주목했고, 이를 더한 OPS를 개발합니다.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는 타격의 정확성과 파워를 겸비한 타자라는 뜻으로, 요즘도 타자를 평가할 때 손꼽히는(최고로 쳐주는) 통계입니다. 그런 OPS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첫 번째 인물이 바로 리키였던 거죠.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루율'에 집중했던 머니볼의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보다 리키는 이미 반세기나 앞서있었습니다. 다저스로 옮긴 뒤에는 리키의 '시스템'이 더욱 정교해집니다. 앞선 구단들보다 다저스는 자금이 더 풍부했기 때문인데요. 리키는 자신의 숙원이었던 '따뜻한 스프링캠프'도 현실화합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 열리는 스프링캠프를 일찌감치 '따뜻한 곳에서'하면 훨씬 효과적일 거라는 판단이었죠. 리키는 플로리다 베로비치에 있던 군사기지 부지를 사들였고, 이곳에 다저스 전용 스프링캠프지를 차렸습니다. 이곳의 이름을 '다저타운'이라고 지었죠. 이곳에서 다저스 특유의 전략과 전술,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이름하여 '다저 베이스볼'이라는 것이죠. 다저스가 오늘날까지 명문구단으로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근간이 여기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야구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브랜치 리키가 왜 '야구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불리는지, 이제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실 것 같습니다. 리키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혁신들을 혼자의 힘으로 현실화시켰고, 그의 끝없는 도전은 단지 자신의 구단뿐 아니라야구산업 전체를 혁명적으로 발전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스프링캠프, 안정적인 선수공급을 위한 팜 시스템, 선수 평가를 위한 새로운 통계 자료. 리키는 거대한 야구산업의 초기 시스템을 모두 설계한 셈이지요. 최초의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을 영입한 것 역시 리키가 꿈꾼 거대한 설계도의 일부였을지 모릅니다. 브랜치 리키는 1955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했고, 1965년 6월, 83세의 나이로 대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다 쓰러졌습니다. 리키의 좌우명은 단순합니다. 남과 다른 생각을 할 것, 그리고 도전을 멈추지 말 것. 선수생활은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리키는 사후 2년 뒤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됩니다. 누군가 리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야구에 미치지만 않았더라면 작가나 대통령 같은 더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라고 말이죠. 리키가 남긴 명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운은 계획에서 비롯된다!'는 말입니다. 행운은 어디선가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다시, 영화 <42>로 돌아가 볼까요. "당신이 내게 유니폼을 주었고, 등번호를 주었다. 이제 내가 당신에게 내 열정을 줄 차례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에게 '열정'을 선물 받은 브랜치 리키, 여러분은 지금 누군가로부터 열정을 끌어내기 위해 어떤 다른 생각을, 어떤 도전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