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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넥센 박병호의 9회말 2아웃

biumgonggan 2021. 11. 3. 00:05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에서 가장 유명한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야구를 잘 모르는 분들도 이 말은 아실 텐데요. 바로 요기 베라의 명언,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이죠. 비슷한 말로 "야구는 9회 말 2 아웃부터"라는 말도 있는데요. 이 말이 '현실'로 이뤄진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2013 시즌 준플레이오프 5차전 9회 말, 0 대 3으로 뒤진 넥센 히어로즈의 마지막 공격이었는데요. 9회 말 2 아웃, 주자 1, 2루에서 말도 안 되는 극적인 동점 홈런이 터져 나왔습니다. 많이들 기억하시겠지만 2002년 한국시리즈 6차전 삼성 이승엽 선수의 동점홈런과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도 모두 1 아웃에 나왔고,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KIA 나지완의 끝내기 홈런도 1 아웃에 나왔습니다. 9회말 2 아웃에 나온 '말도 안 되는 동점 홈런'의 주인공은 바로, 유망주였다가 그냥 사라질 뻔했던 넥센의 박병호입니다.

박병호의 성장

박병호는 성남고 재학시절 4 연타석 홈런을 때리며 주목받았습니다. 그때는 고교대회에서 알루미늄 방망이를 쓰던 시절이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4 연타석 홈런은 고교야구 사상 최초였습니다. 박병호는 힘을 인정받았고 LG에 1차 지명을 통해 입단합니다. 하지만 LG에 입단한 뒤 박병호는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합니다. 2005년, 79경기에 나와 겨우 1할 9푼, 홈런 3개, 21타점에 그칩니다. 2006년에도 1할 6푼 2리, 홈런 5개, 13타점에 머물렀죠. 군대를 다녀온 뒤 2009년에는 홈런 9개를 때리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2010년에는 다시 홈런 7개에 그칩니다. 이제나 저제나 포텐셜이 폭발하길 기다렸던 팬들도 하나둘씩 박병호에 대한 기대를 접기 시작했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의 목소리도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2011 시즌 도중 박병호는 LG를 떠나게 됩니다.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건데요. 이 트레이드는 아마 박병호 야구인생에서 최고의 모멘텀으로 기억될,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이 되었습니다. 박병호는 트레이드 이후에만 홈런 12개를 때리면서 가능성을 보이더니, 2012년에는 드디어 잠재력을 폭발시킵니다. 홈런 31개! 박병호는 MVP를 거머쥐었고, 2013년에는 홈런 숫자를 37개까지 늘리면서 2년 연속 MVP를 차지합니다. 명실상부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로 성장한 것이지요. 도대체 LG와 넥센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요. LG와 넥센에서 박병호 선수의 기록을 비교해보면, 과연 이 선수가 똑같은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돕니다. 잠재력은 있다고 평가받았지만 무려 5년 동안이나 그 잠재력을 터트리지 못한 평균 이하의 선수, 넥센과 LG의 어떤 차이가 이 평균이하의 선수를 '2년 연속 MVP'로 바꾸어놓은 걸까요?

박병호의 인생 역전 비결 1

박병호가 자신의 잠재력을 만개시킬 수 있었던 첫 번째 이유는, 작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점입니다. 말씀드렸듯 G시절에도 박병호에 대한 기대는 남달랐습니다. 그 기대를 박병호도 잘 알고 있었죠. 매 경기, 매 타석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박병호의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워낙 힘이 좋은 선수라, 홈런, 장타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는데요. 홈런타자는 원래 스윙을 크게 해야 하기 때문에 삼진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삼진에 대한, 타석에서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나 컸다고 합니다. 한번 삼진을 당하면 그게 머릿속에 남았던 것이죠. 작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어린 시절 유망주로 평가받던 선수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입니다. '머니 볼'이라는 책과 영화를 들어본 적이 있으실 텐데요.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인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 또한 처음 뉴욕 메츠에 입단할 때는 '완벽한 선수'라는 평가를 받던 기대주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선수로서 실패한 것도, 작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작은 실패가 쌓여서 큰 실패가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스스로를 더욱 위축시키는 것이지요. 박병호가 넥센으로 트레이드 된 뒤, 당시 넥센의 사령탑이었던 김시진 감독이 말합니다. "남은 후반기 동안 모든 경기에서 5번 타자로 기용하고 싶다" 박병호가 삼진을 당하면 김시진 감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타석 삼진을 당해도 좋다. 그렇게 100%의 스윙을 하면 된다" 박병호 스스로도 그런 믿음을 통해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합니다. 박병호는 후반기에 홈런 12개를 때렸고, 이듬해인 2012년에는 4번 타자로 고정되면서 31개의 홈런으로 홈런왕에 오릅니다. 믿음과 기회부여, 그리고 인내, 이 세 가지 요소가 작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앴고 '자신감'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박병호의 인생 역전 비결 2

박병호 인생역전의 2번째 비결은 단점을 고치는 대신 장점을 살리는 방식으로의 변화입니다. 박병호는 고교시절부터 4 연타석 홈런을 때릴 정도로 힘이 장사였는데요. LG에 있을 때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생각했습니다. '힘'이라는 확실한 장점이 있으니, 단점인 정확도, 컨택트 능력만 키우면 훌륭한 타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이죠. 그래서 기술훈련에 집중합니다. 성실한 박병호도 이를 위해 무던히 노력합니다. 경기 전 누구보다 먼저 나와 기술훈련을 했습니다. 시즌이 끝나면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로 이어지는 모든 훈련을 묵묵히 소화해냈죠.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겨납니다. 정작, 박병호 최고의 장점이 사라져버린 겁니다. 부족한 정확도에 치중한 훈련을 지나치게 많이 하다 보니 오히려 장점인 힘이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박병호는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뒤 2012 시즌을 앞두고 마무리 훈련을 빠집니다. 마침 발 쪽에 부상이 있기도 했습니다. 역발상입니다. 장점인 힘을 살리는 쪽으로 간 것이지요. 기술훈련을 줄이고 오히려 파워 트레이닝을 통해 '순발력'을 키웁니다. 장점인 힘을 살리니, 굳이 정확히 맞지 않아도 탁월한 힘으로 공을 담장 밖으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자신감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박병호는 여러분이 지켜보신 것처럼, 리그 최고의 타자로 변신할 수 있었죠.

박병호의 인생 역전 비결 3

3번째 비결은 주변의 평가를 끊임없이 자기 독려의 원동력으로 삼는 박병호 선수의 열정입니다. 2011시즌 트레이드된 뒤 홈런 12개를 때리며 가능성을 보였을 때, 박병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전히 시즌의 절반만 잘한 반쪽 선수라고 하더라" 이듬해 31홈런으로 MVP가 됐을 때에도, 스스로를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상을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선수"라고 하며,"이제 겨우 1년 반짝했을 뿐"이라는 세상의 평가를 가슴속에 새겼습니다. 2년 연속 MVP를 수상한 뒤에도 "주변에서 3년 정도는 꾸준히 해야 좋은 선수라고 하더라"라며 자신을 다잡았죠. 프로야구 사상 2년 연속 MVP를 수상한 선수는 딱 3명이었습니다. 선동열, 장종훈, 이승엽. 그리고 4번째 박병호가 이름을 올린 거죠. 이승엽과 비교해달라는 질문에 박병호는 "선배에 비하면 아직 초등학생"이라고 답했습니다. 성공한 CEO도 같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잠재력 넘치는 가운데 시작합니다만,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길은 박병호의 '성공의 길'과 같습니다. 작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면서 큰 성공을 향한 길을 묵묵히 가야 합니다. 작은 실패에 얽매인다면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없겠죠. 단점을 고치기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길이 중요합니다. 단점에 얽매인다면 장점마저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한 번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다음 걸음, 그 다음 목표에 대한 꾸준한 노력이 이어져야 하죠. 뚜벅뚜벅. 꿋꿋한 한 걸음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