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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로 보는 야구 득점 확률

biumgonggan 2021. 8. 12. 10:21

많은 야구팬들이 말합니다. "저 선수는 영양가가 참 없어"라거나 "저 선수는 정말 결정적일 때 잘 쳐. 심장이 강해"라고 말이죠. 과연 사실일까요. 클러치 능력이라고 부르는, 위기의 순간에 유난히 잘하는 선수들이 정말 있을까요. 하지만 많은 통계수치들은 '클러치 히터는 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잘하는 선수들이 클러치 상황에서도 잘할 뿐이라는 거죠. 다만, 기록과 기억이 다를 뿐입니다. 스타는 기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추억되기 때문이죠.

 

이렇게 우리는 이미지와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경기, 흥미 있는 장면에서의 결과가 그 선수의 이미지를 결정지어 버리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숫자를 뜯어보고 통계를 분석해보면 그 이미지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번트입니다. 경기 후반 1점이 필요한 상황, 무사 1루에서 번트를 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느껴지는데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야구를 분석하는 자료 중에는 아웃카운트와 주자 상황에 따른 '기대 득점'과 '득점 확률'이라는 수치가 있습니다. 기대 득점이란 그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점수가 났느냐를 따지는 기댓값이고, 득점 확률이란 상황에 따라 1점이라도 났는지 여부를 확률적으로 분석한 것입니다. 많은 감독들은 1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무사 1루를 맞게 될 경우 번트를 시도합니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버리는 대신 안전하게 1루 주자를 2루에 갖다 놓으려는 시도인데요. 이 결정은 과연 올바른 결정일까요? 무사 1루에서 기대할 수 있는 0.868점의 기대 득점은 아웃카운트를 하나 버린 1사 2루가 됐을 때 오히려 0.708점으로 떨어집니다. 번트는 통계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득점의 크기를 줄이는 '역효과'를 낳는다는 걸 알 수 있지요.

 

그럼 득점확률은 어떨까요? 무사에 주자가 없는 상황, 이닝을 시작할 때의 득점 확률은 0.275, 27.5%입니다. 선두타자가 살아나가면, 무사 1루에서의 득점 확률은 0.429로 높아지죠. 그런데, 번트를 시도하면 성공한다 하더라도 1사 2루가 되는 것이니까, 1사 2루일 때 득점 확률은 프로야구 지난 30년 동안 0.414, 41.4%로 떨어진다는 걸 통계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번트를 대는 순간 오히려 득점 확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 것이지요. 통계적으로는 무사 1루가 1사 2루보다 기대득점과 득점 확률이 모두 높습니다. 무사 1루보다 1사 2루의 득점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건, 안타 2개가 아니라 안타 1개만으로 점수가 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착시현상'입니다. 실제로는 번트를 대면 손해인 거죠. 그렇다면 한국야구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발야구, 도루는 어떨까요. 도루는 아웃카운트를 버리지 않고 2루에 갈 수 있는 작전입니다. 득점 확률과 기대 득점을 훨씬 높일 수 있죠. 앞서 살펴봤듯 무사 1루에서 득점 확률은 0.429입니다. 도루를 성공하면 무사 2루가 되면서 득점 확률이 0.638로 치솟습니다. 하지만 도루에 실패할 경우가 문제입니다. 실패하면 1사에 주자가 없는 상태가 되고 득점 확률은 0.162로 뚝 떨어집니다. 야구 통계학자들이 이 차이를 메울 수 있는 도루 성공률을 측정해봤더니요. 적어도 67~70% 이상의 성공률은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루는 소용이 없는, 오히려 해를 끼치는 작전이 되는 거죠.

 

과학사를 보면 측정의 정밀도가 올라감에 따라 세계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항법사들은 바닷물의 온도변화를 주목하고 기록해서 몇 세기 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쳤던 조류 패턴을 이용하게 됐고요. 아주 작은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의 발명은 기체의 성질을 분석하고 구분할 수 있게 해 줬습니다. 야구도 마찬가지입니다. 각종 기록을 정밀하게 분절하고 나눠서 기록하고 통계를 내면 야구를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게 되죠. 머니볼로 유명해진 '출루율'에 대한 관심도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기업의 운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막연한 이미지, 이럴 땐 이렇게 해라, 저럴 땐 저렇게 해라 같은 관습적인 결정들, 한 번쯤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분석하고 수치화해서 통계를 만들고 비교해보면 어떤 결정이 더 나은 결정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지금껏 무심히 흘려왔던 숫자들,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시는 건 어떨까요. 오랫동안 고민해온 문제의 해답이 어쩌면 그 안에 들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