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PEOPLE

코카콜라 CEO 더글러스 대프트

biumgonggan 2021. 8. 11. 13:45

2000년. 밀레니엄의 새해를 맞아 한 기업의 회장이 직원들에게 신년사를 보냈습니다. 우리 삶을 5개의 공을 돌리는 저글링이라고 상상해 보겠습니다. 5개의 공을 일, 가족, 건강, 친구, 그리고 ‘나’라 생각해보죠. 이 중 하나라도 떨어뜨리면 어떻게 될까요? 공은 닳고, 상처 입고, 긁히고, 깨질 테죠. 우리는 공들 처럼 우리 삶도 균형을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으레 형식적으로 보내는 CEO의 인사와는 사뭇 다른 이 신년사에 회사 직원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는데요. 회장의 신년사엔 돈을 벌기 위한 기업의 전략이나 업무를 독려하는 내용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혜안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회장은 말을 이어갔습니다."1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약속 장소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1분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1분 전 기차를 놓친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1초의 소중함을 알고 싶으면 간신히 교통사고를 면한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매 순간순간이 소중함을 깨닫는 한 해 보내길 바랍니다.” 새해 아침, 감동의 신년사를 던진 회장, 누구였을까요? 세계적인 음료업계의 대명사인 코카콜라 CEO 더글러스 대프트입니다.

 

더글라스 대프트는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코카콜라 CEO를 역임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하면 항상 그의 감동적인 신년사가 함께 따라 등장하죠. 하지만 그의 신년사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온화함과는 다르게 그의 경영 철학은 꽤나 현실적이고 공격적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하죠.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을 하나씩 비교해 살펴보면 생각보다 온도차가 크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가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문장을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과거나 미래에 집착해 삶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게 하지 마세요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고 오늘은 선물입니다" PRESENT 즉 영어에서 스펠링이 같은 현재와 선물을 절묘하게 빗댄 위트 있는 말인데요. 하지만 이 속에는 현재가 없다면 미래는 없다는 강력한 철학을 품고 있습니다. 따뜻해 보이는 듯한 이 문장 속에 냉정하지만 날카로운 의미가 다 담겨 있는 것입니다.

 

코카콜라는 1995년부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다이어트 열풍 때문이었는데요. 탄산음료가 비만의 주범이라는 비판 앞에서 매출은 곤두박질치고 있었죠. 위기에 즉 면한 더글라스 대프트는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취임 첫해부터 비대해진 공룡 코카콜라를 수술대에 올려놓고 혁신의 메스를 가합니다. 기업문화부터 인력구조, 광고전략, 제휴관계 등 종래의 모든 관행을 바꾸기 시작하는데요. 미국 중심적인 마인드로 가득한 관료적인 기업문화를 바꾸기 위해서 경영진 90% 교체를 단행하고, 탄산음료에 한정돼 있던 제품을 비탄산 음표로 확장시킵니다. ‘옛날 탄산음료의 영광만으로 코카콜라의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공표한 것이죠. 제품을 생수, 과일 주스 등으로 확장시켜 1년 사이 제품을 1000개에서 1500개로 늘립니다. 사실 그가 취임하기 전까지 코카콜라는" 세계의 모든 지역을 하나의 코카콜라로"라는 글로벌 스탠더드 전략을 구사했는데요. 더글러스는 이 전략을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코카콜라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제 소비자들에게는 글로벌 스탠더드 ‘코카콜라’의 맛은 통하지 않는다 각 나라의 소비자들 입맛에는 공통분모가 작다 현실을 직시하라"는 냉정한 대답을 들려주었죠. 코카콜라 제품이 수출되는 각국의 특성에 맞춘 현지화 경영을 앞장 세웠는데요. 나라, 지역별 맞춤 제품들을 개발하고 현지 정서와 시장 상황에 대응하는 ‘뉴코크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캔 커피, 캔 녹차 등을 선호하는 일본 소비자들의 성향을 맞춰 신상품을 출시한 것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기업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은 잊지 않았습니다. 100여 년을 쌓아온 코카콜라 브랜드를 지키기 위해 3억 달러의 광고비용을 들여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섰는데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취임 2년 후인 2002년부터 가시적인 성과는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경쟁사에게 1위를 내어줬던 코카콜라 주요 제품들이 다시 판매 1위를 차지했고, 판매량도 3%가량 상승했다고 하는데요. 더글라스 대프트가 집중하고 주력한 비 탄산음료의 판매의 증가로 기업 전체 이익이 28%나 성장했습니다. 일에서도 철저하게 균형을 찾고 의미를 찾으려고 했던 최고경영자의 성공이었죠.

 

앞으로도 코카콜라가 나아갈 방향과 비전은 분명 과거와는 다른 진행형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과 관행에 안주하기 쉬운 다국적 거대 기업에 끊임없이 과감한 개혁과 변화를 시도한 더글러스 CEO의 노력, 그리고 단순한 이윤을 넘어 인간의 삶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려 했던 그의 리더십은 세월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을 듯합니다. 다 같이 그의 새해 인사를 다시 한번 되 내어 보면 어떨까요. 우리는 과연 다섯 개의 공을 균형 있게 굴리고 있습니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