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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겨울비가 내리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 유태인 위령탑 앞. 헌화를 마친 한 남성이 돌연 무릎을 꿇습니다. 유태인 희생자들을 위한 간절한 기도 뒤 일어선 남자는 당시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였습니다. 서양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완전한 복종을 뜻하기도 하는데요. 한나라의 총리가 그것도 비 내리는 땅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습니다. 반응은 생각보다 냉소적이었고, 서독 내 여론은 들끓었습니다. 국민 절반이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할 정도였죠. 그러나 빌리 브란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말로는 더 이상 표현 할 수 없었기에, 무릎을 꿇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행도이었습니다” 진심을 다해 독일의 과거사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한 빌리 브란트. 전 세계 언론은 그의 행동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무릎을 꿇은 것은 한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빌리브란트의 이 행동은 절대 있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냉전체제 간의 역사적인 화해를 가능하게 했고, 유럽에 평화와 통합을 가져옵니다. 빌리 브란트, 그는 어떤 리더였을까요?

 

1969년 서독 총리의 자리에 오른 빌리브란트는 독일 전후 역사에서 위대한 총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는 평화와 통합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뒤따르죠. 하지만 사실 정치적 이력으로만 보면 그리 순탄치 않습니다. 1950년대 시민적 도덕과 품위를 중시한 서독의 분위기에서 그는 보수우파들의 조롱과 인신공격을 받는 정치인이었습니다. 한때 사회민주당보다 더욱 급진적이었던 독일사회주의노동당에 가입했던 전력과, 나치 시절 노르웨이로 망명한 전력을 두고 끊임없이 정적들로부터 조국에 대한 자긍심이 없는 인물이라는 비난에도 시달려야 했죠. 하지만 쏟아지는 화살에도 그는 변함없이 현실적이고도 실용적인 접근법을 추구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죠. 총리 취임식 연설에서도 그의 가치관은 잘 드러납니다.

 

"독일에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두 국가는 외국이 아니고 단지 특별한 관계에 있을 뿐입니다” 무슨 뜻이었을까요? 사실 분단 이후 서독 정부는 할슈타인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이 원칙은 '동독은 물론 동독과 수교를 맺고 있는 나라와는 교류하지 않는다'는 냉전적 정책이었는데요 그러나 브란트 총리는 이 원칙을 폐기하고 동독과 교류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는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게 낫다"라고 단호히 의지를 표명하고 분단으로 인한 국민들의 고통과 희생을 덜어주는 일이 의미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정치가 아닌 하나라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죠.

 

브란트 총리가 지녔던 최대의 덕목은 바로 끝없는 소통, 설득과 합의를 통해 결국에는 행동으로 실행하는 리더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법치라는 대원칙 아래 주요 쟁점이 생길 경우 당원과 동료들과 끈질긴 토론을 벌인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지나치게 우유부단하고 커브 길만 나타나면 차를 조심스럽게 모는 노인'이라며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브란트 총리는 '책상 치고 호통 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저는 가능한 한 합의를 통해 업무를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미 사전에 결정된 내 의견을 확인하기 위해서 단지 동의를 구하는 식의 토론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하며 위압과 권위를 버리고 소통과 조정의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그가 총리를 지냈던 1970년대는 유럽 전역을 휩쓸었던 68 혁명의 주역들이자, 자유로운 토론문화를 신봉하는 젊은이들이 사민당에 대거 입당하면서 어느 때보다 토론문화가 왕성하던 시기였던 만큼 그의 리더십은 높이 평가받았죠. 결국 1972년 서독과 동독은 기본조약을 맺고 양국 간 화해와 협력의 제도적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양국 주민들이 서로 방문하고 경제 문화 분야의 교류의 폭을 넓혀가기 시작합니다 이어 체코 헝가리 불가리아 등과 잇달아 수교하고, 경제적으로도 공산권의 수출길을 열어 독일 경제 산업을 부흥시키는데요. 사민당이었던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은 이후 1982년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 때도 이어졌습니다 결국 1989년 통일이라는 결실을 맺었고 지금의 강대국, 독일을 있게 했습니다. 지금 현 시점에서 빌리 브란트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지구 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 거기에 주변 나라 간 이해와 갈등이 더해져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인데요. 작은 성취를 소중히 여기는 현실 감각, 대의 앞에서 실용과 실리를 중시하고 행동으로 옮겼던 빌리 브란트의 리더십을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