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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스켐베클러(Bo Schembechler), 이름 들어보셨나요?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인들에게는 전설적인 풋볼 감독으로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2006년 11월 17일, 그가 심부전증으로 7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ESPN은 1시간도 되지 않아 특집 방송을 내보냈고, 뉴욕타임스는 그의 죽음을 1면 톱기사로 보도했습니다. 그가 감독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미시간 대학교에서 열린 추도회에는 수만 명의 조문객이 다녀갔습니다. 1969년 미시간 대학교의 미식축구팀 ‘미시간 울버 린스’ 감독으로 부임해서 1989년 시즌을 마치고 은퇴할 때까지, 21년간 스켐베클러는 194승을 거두었고, 정규리그 승률이 84%를 넘었으며, 정규리그 우승을 13회나 차지했습니다. 그는 미시간 대학교를 최고의 축구 명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가 유명한 건 독특한 철학 때문인데요, 그는 유독이 팀을 중시했습니다. 1983년 11월 19일 미시간 대학의 라이벌이자 미식축구 명문인 오하이오 주립대와의 경기에 앞서 그는 그 유명한 '팀' 연설을 합니다. “우리는 이번 시즌에도 우승을 원한다. 그리고 팀으로 우승할 것이다. 최고의 공격수, 최고의 쿼터백, 최고의 수비수가 쏟아져 나오지만 가장 최고는 '팀'이다. 아무리 뛰어난 선수도 팀보다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감독도 팀보다 중요하지 않다. 팀, 팀, 팀만이 전부다.”
스켐베클러는 팀워크를 중시한 나머지 오히려 스타플레이어를 노골적으로 차별했습니다. 훗날 NFL에서 13년간 맹활약하며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댄 디어도프가 그중 하나였죠. 디어도프는 이미 3학년 때 최고의 기량을 보여 인기스타가 됐는데요, 방학 때 그는 온갖 잡지에 등장했고 신문과 인터뷰를 했으며 심지어 코미디 프로그램인 ‘밥 호프쇼’에도 나와서 입담을 선보였습니다. 개학이 되자 스켐베클러는 디어도프를 사무실로 불러서, “무리해서라도 자네를 다른 선수들보다 함부로 대할 생각이다”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러고는 혹독한 훈련만 시키고 기량이 절정에 오른 디어도프를 한동안 경기에 출전시키지 않았습니다. 디어도프가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건 그 상황을 묵묵히 참고 견뎠기 때문인데요. 물론 미시간 울버 린스는 더 큰 것, 바로 팀웍을 더 굳게 다지게 되었죠.
물론 이런 행동을 모두가 다 옳다고 보는 건 아닙니다. 스타플레이어의 역할에 대해서 경영학자들의 견해는 둘로 나뉩니다. 우선 스타플레이어를 키우면 경쟁이 활성화되어 성과가 좋아진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누구나 스타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하게 된다는 논리인데요, 성과주의 시스템이 바로 이런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다른 견해는 스타플레이어가 협력을 가로막아 오히려 성과를 떨어뜨리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사실 상황에 따라 두 이론이 다 맞습니다. 개인 능력에 대한 의존도가 큰 곳에서는 스타플레이어가 큰 역할을 하고, 반대로, 업무가 복잡하게 연결돼 있어 협력이 많이 필요한 곳은 스타플레이어가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미식축구는 후자인 것 같습니다. 두 명의 경영학자(Kassis & Dole, 2008)가 美 프로풋볼리그(NFL) 팀들의 연봉과 성적에 대해 연구했는데요. 재미있게도 한 팀 내에서 선수들의 연봉 차이가 많이 날수록, 그러니까 스타플레이어에게 많은 연봉을 주는 팀일수록 우승 확률이 낮아졌습니다. 우리 편 공격을 위해 모든 선수들이 몸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미식축구는 그 특성상 협력과 팀워크가 매우 강하게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미식축구의 이런 특징 때문일까요. 美 프로풋볼리그는 독특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1962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총수익 공유제인데요, NFL 사무국은 TV 중계권료 전액과 티켓 수입의 40%를 전부 거둬들인 후 32개 구단에 똑같이 배분합니다. 또 1994년부터는 강력한 연봉상한제를 실시하고 있어 스타플레이어들에게 돈 보따리를 안겨줄 수 없게 했습니다. 이런 매우 반자본주의적인 제도 덕분에 작은 도시에 있는 팀들도 당장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을 갖추게 되었죠. 이렇게 되면 자연히 모든 프로팀들의 팀워크가 탄탄해져서 매 경기 손에 땀을 쥐는 승부가 펼쳐지게 되고, 이는 리그 전체의 부흥으로 연결됩니다. 그 결과 32개 구단 모두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스포츠 구단 50’의 명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美 프로풋볼리그 전체 팀워크의 승리인 셈이죠.
이제 스켐베클러 감독의 기행이 이해가 됩니다. 그는 신입생을 스카우트할 때 능력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중시했는데요. 이를 확인하기 위해 번거롭더라도 꼭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미시간 대학교로 오겠다는 고교 최고의 선수가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걸 보고 뽑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 선수는 오하이오 주립대에 가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지만 스켐베클러 감독은 그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스켐베클러 감독은 미식축구를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있으면 입단 테스트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 미식축구를 하지 않았어도 말입니다. 미시간 울버린스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낼 각오가 돼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입단 자격이 충족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는 결국 기량보다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성품을 보았던 것입니다.
팀웍이 있고 협력이 잘되는 조직은 'I' 마인드가 아니라 'We' 마인드가 구축돼있습니다. 이런 조직에서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개인의 이해관계보다 팀의 목표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게 쉽게 만들어지지는 않습니다. 리더가 사람들에게 믿음을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함없는 일관성을 보여야 하는데요. 스켐베클러가 은퇴한 후, 기자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미시간 대학교 감독으로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 것이냐는 거였죠.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하이오 주립대와의 경기에 대비해 일주일간 만반의 준비를 하는 데 쓸 겁니다. 경기필름을 분석하고 작전을 짠 후 그걸 수행하기 위해 경기 전날까지 혹독한 훈련을 할 겁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경기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습니다.”그런데 이건 21년 내내 그가 한,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리더로서 보여준 일관된 모습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