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마이 게임 이즈 오버”6번의 지구 우승과 4번의 월드시리즈 진출 그리고 1970년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최고 전성기를 이끈 명장, 얼 위버 감독은 퇴장을 당하고 나면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더그아웃을 떠났다고 합니다. 클럽하우스로 걸어 들어가는 감독님의 뒷모습을 보며 볼티모어 선수들은 전의를 불태웠다고 하죠. 야구를 보다 보면 감독들이 경기 중에 거칠게 항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감독들이 퇴장을 무릅쓰고 항의를 하는 이유는 바로 팀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섭니다. 많은 경우 감독의 퇴장은 팀의 전의를 부채질하는 의도된 행동들이죠. 오늘은 퇴장과 몸싸움의 리더십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2007년 6월 1일, 뉴욕 양키즈의 조 토레 감독은 펜웨이파크에서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와 경기를 하던 도중, 5회 바비 어브레이유의 도루가 아웃으로 판정되자 더그아웃을 박차고 나섭니다. 불같이 화를 내다 3루심 제리 크로포드로부터 퇴장 명령을 받죠. 경기 결과부터 말씀드리면, 양키스는 그날 9 대 5로 이겼는데요. 토레 감독의 퇴장 역시 다분히 의도적이었습니다. 감독의 퇴장은 팀 전체의 분위기를 바꾸는 효과를 가지기 마련이죠. 양키스는 보스턴과의 3연전을 2승 1패로 마감했고,이후 13경기에서 9연승을 기록합니다. 양키스는 결국 5월의 극심한 부진을 극복하고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죠.
그리고 다음날인 6월 2일에는 시카고 컵스 루 피넬라 감독의 화가 폭발했습니다. 가뜩이나 다혈질로 유명했던 피넬라 감독은 애틀랜타전에서 앙헬 파간이 3루 도루를 시도하다 아웃되자 잽싸게 그라운드로 뛰쳐나갑니다. 3루심 마크 웨그너와 코까지 맞대며 화를 내더니 모자를 집어던지고, 발로 운동장 흙을 차서 퍼 올렸습니다. 웨그너 심판은 기다렸다는 듯 퇴장을 선언했죠. 피넬라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사실, 파간은 아웃이 맞다. 하지만 팀에 뭔가 필요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외야수 알폰소 소리아노 역시 피넬라 감독의 퇴장에 대해 "역시 훌륭한 감독님이다"라고 했죠. 그도 그럴 것이, 컵스는 바로 전날, 에이스 투수 카를로스 잠브라노와 마이클 바렛 포수가 더그아웃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황당한 내분을 겪었습니다. 컵스는 이날 애틀랜타에 3대 5로 지며 6연패에 빠지고 말았는데요. 22승 31패로 5할 승률에 9경기나 모자란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경기에서 피넬라 감독이 퇴장을 당한 후부터 '피넬라 퇴장 매직'이 발휘됩니다. 이후 13경기에서 9승 4패를 기록한 컵스는 피넬라 감독의 퇴장 당시 지구 1위 밀워키에 7경기 반이나 뒤져있었지만, 결국 85승 77패로 지구 우승을 따냅니다. 뉴욕 양키즈와 시카고 컵스가 써 내려간 반전 드라마, 조금 의외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감독 퇴장의 힘은 이렇게나 막강합니다. 왜일까요? 비단 야구감독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직의 리더가 화를 내고 퇴장당하는 모습은 팀을 하나로 뭉치게 합니다. 내부의 문제를 외부 자극을 통해 해결하는 거죠. 아시겠지만, 회의 중 직원들에게 화를 내고 회의실을 떠나는 것과는 다릅니다. 외부를 향해 화를 퍼 부음으로써 내부 구성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겁니다.'아, 보스가 우리를 위해 이렇게나 처절하게 싸우고 있구나!' 하는 메시지 말입니다.
2013 시즌 중반, 류현진 선수가 뛰고 있는 LA 다저스 역시 2007 시즌 양키즈와 컵스의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엄청난 대반전의 도화선이 감독 1인의 원맨쇼가 아닌 팀원 모두가 참여한 '집단 난투극'이었다는 점입니다 2013 시즌을 앞두고 다저스는 류현진 영입을 비롯해 2000억 원이나 되는 엄청난 돈을 뿌렸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월드시리즈 우승이었죠. 하지만 시즌 초반 다저스의 모습은 실망 그 자체였습니다. 속된 말로 돈값을 전혀 하지 못했죠. 지구 1위는커녕 꼴찌를 면하기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언론들은 앞 다퉈 돈 매팅리 감독의 경질설을 내보냈고, 이미 구단 내부적으로 경질을 결정했다는 소식까지 흘러나왔죠.
하지만 엉망진창이었던 이 팀이 거짓말처럼 달라졌습니다. 다저스는 6월 23일부터 한달 동안 22승 5패를 기록하며 거침없이 지구 선두로 뛰어올랐습니다. 물론 6월 초반 타선에 합류한 쿠바 괴물 야시엘 푸이그 효과도 무시할 수 없지만, 더 큰 사건은 6월 12일 일어났습니다. 다저스는 이날 애리조나와 홈경기를 치렀는데요. 빈볼시비 끝에 문제의 대형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집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대충 시늉만 하는 몸싸움이 많지만, 이날은 진짜로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선수들만 흥분한 게 아니었죠. 7회 말 애리조나의 투수 케네디가 타석에 들어선 다저스 선발 그레인키에게 기다렸다는 듯 148km의 강속구를 던져 상반신을 맞추자, 매팅리 감독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싸움의 한 복판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한때 홈런타자의 대명사였던 맥과이어 타격 코치는 그 큰 덩치로 애리조나 코치 두 명을 질질 끌고 가며 난투극에 가세했죠. 이날의 화끈한 몸싸움으로 다저스는 비록 여러 명의 선수 그리고 매팅리 감독과 맥과이어 코치까지 출전 금지와 벌금 등 징계를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감독과 코치까지 합세한 벤치 클리어링은 팀 다저스를 아주 끈끈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몸싸움의 힘 역시 감독의 퇴장만큼이나 강력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외부효과로 내부를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감독의 퇴장과 몸싸움은 아주 유사합니다. 수많은 경기를 치르다보면 때로는 내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려운 고비가 나타나기 마련인데요. 조직의 리더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때로는 외부의 적을 이용해 내부를 단결시키는 지혜가 필요한 법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감독의 항의나 싸움이 선수들에게 '패배에 대한 면책용'으로 비춰지면 끝입니다. 감독의 항의나 퇴장이 '경기에서 패배한 이유가 심판 때문'이라고 잘못 해석되면, 팀원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팀원과 리더의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리더의 행동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내부 결속을 위해 외부의 적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 서게 되신다면, 지금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선수들을, 내 조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싸움이 맞는지 말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