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0승 9패, 평균자책 3.92 , 12승 11패, 평균자책 3.79, 11승 9패, 평균자책 3.92! 이 기록들은 2013 시즌 메이저리그 개막 전에 미국의 여러 분석 사이트에서 발표한 류현진 선수의 예상 성적표입니다. 10승을 아주 조금 넘는 승수와 3점대 후반의 평균자책, 하지만 류현진 선수는 이 모든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어버렸습니다. 류현진은 어떻게 그 야구 잘한다는 선수들이 다 모여 있는 메이저리그에서 이렇게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걸까요?
성공 비결 첫 번째는 목표에 대한 장기적 준비에 있습니다. 류현진은 2006년 한국 프로야구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나타났습니다. 고교 졸업 첫해 프로무대에서 다승과 탈삼진, 평균자책 모두 1위를 차지했는데요. 신인왕과 MVP를 모두 다 류현진 선수가 따냈습니다. 한국야구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죠. 여담입니다만, 당시 롯데 이대호 선수도 타율, 홈런, 타점 모두 1위를 차지해 타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는데요. 투수 트리플 크라운보다는 타자 트리플 크라운이 훨씬 더 어려운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고졸 신인의 임팩트가 컸기 때문에 MVP는 류현진에게 돌아갔습니다. 이대호 선수의 실망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가는 상황입니다. 어쨌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류현진은 데뷔 2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에 대한 꿈을 꾸게 됩니다. 2007년 겨울, 대만에서 열렸던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박찬호 선수와 함께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구체적인 꿈을 그려갔다고 합니다. 실제로 2008년을 앞두고 류현진 선수 아버지와 함께 샌프란시스코 스카우트를 제가 직접 만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샌프란시스코 스카우트는 연봉 300만 달러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류현진은 이때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갑니다. 2009년 WBC는 류현진 스스로가 생각한 본격적인 시험무대였습니다. 이때 류현진은 대회에서 평균 92마일, 시속 148km의 직구를 던졌는데요. 국내에서는 한 번도 던지지 않았던 구속입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슬라이더를 던지기 시작하는데요. 구종을 늘려야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일종의 포석이었습니다.
두 번째 성공 비결은 괴물 류현진의 ‘진화’ 능력입니다. 류현진 선수가 한국 프로야구를 지배할 수 있었던 구종은 바로 체인지업이었는데요. 직구와 똑같은 폼으로 던지지만, 직구처럼 날아오다 뚝 떨어지기 때문에 타자들이 대처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죠. 메이저리그에서도 초반엔 제법 유용했습니다. 체인지업에 헛스윙을 하는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많았고요. 하지만 이내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류현진의 체인지업을 때려내기 시작합니다. 체인지업이라는 공은 말 그대로 공 끝이 무시무시하게 변한다기보다는, 직구와의 속도 차이를 통해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는 공인데요.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스윙 속도가 빠르고 스윙을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보니까, 타이밍을 뺏긴 상태에서도 공을 때려내는 일이 잦아진 겁니다.
그러자 류현진은 체인지업에 변화를 줍니다. 괴물의 적응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는데요. 체인지업은 대개 80~82마일짜리 공이었는데, 어느 순간 류현진은 75마일짜리 더 느린 체인지업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궤적의 변화까지 줬습니다. 그냥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른 타자의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면서 떨어지는 궤적이 된 건데요. 느려도 맞는 공을 더 느리게 던져서 타이밍을 뺏기로 한 거죠. 샌프란시스코와의 시즌 네 번째 맞대결에서 보여준 ‘변신’은 진화하는 괴물을 넘어서 ‘카멜레온’에 가까운 피칭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와의 앞선 세 번의 대결에서 승리를 따내지 못하자 류현진은 투구폼에 변화를 줍니다. 공을 던질 때 포수 쪽을 향해 내뻗는 다리인 오른발의 높이를 바꿨습니다. 높게 들어 올리던 오른발을 짧게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변화를 줬고요. 발을 내딛는 거리인 스트라이드 폭도 줄였습니다. 상체가 조금 더 들린 상태에서 공을 던지자 자연스럽게 릴리스 포인트가 더 높아졌고요. 반 박자 빠른 타이밍에 더 높은 곳에서 공이 나오니까 샌프란시스코 타자들이 당황스러워 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사실 투구폼의 변화는 굉장히 위험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자칫 그동안의 투구 밸런스를 모두 무너뜨릴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이후 두 번의 등판에서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걱정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추신수 선수와의 맞대결로 화제를 모은 지난 7월 28일 경기에서 류현진은 보란 듯이 원래의 힘 있는 모습으로 돌아왔는데요. 이것이 바로 세 번째 비결입니다. 위험할 수도 있는 투구폼 변화를 과감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배짱’이죠. 다저스와의 협상 때에도 류현진의 배짱은 빛났습니다. 협상 마감 직전까지 버티고 또 버텼는데요. 마이너리그에 가지 않겠다는 조항을 신인 투수에게 추가하는 것은 사실상 메이저리그 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인데 류현진은 과감한 배짱으로 관철시킵니다. 협상의 대가라는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죠.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도 류현진은 다른 투수들이 다 하는 불펜 피칭을 하지 않습니다. 난 원래 그렇게 던졌다는 게 이유였고, 이 또한 배짱으로 밀어붙였죠. 류현진은 어떻게 이런 배짱을 부릴 수 있었을까요? 쟁쟁한 선수들과 감독들이 즐비한 꿈의 무대, 위축될 법도 한데 말이죠. 그 이유는 아마, 그 ‘배짱’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류현진 선수가 보여준 배짱에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강한 자신감이 배어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차근차근 목표 달성을 위해 남모를 준비를 해왔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야구에 대한 욕심을 키우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면서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스스로와 스스로의 공에 대한 류현진의 ‘자신감’은 충분히 ‘근거 있는 자신감’처럼 보입니다.
A를 하지 못한다면 B는 해도 소용없다는 게 배짱이라는 것 아닐까요? 류현진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을 하지 못한다면 중간에 마이너리그 행 조건이라든가 불펜 피칭 등은 별 의미가 없다는 거겠죠. 류현진의 목표가 단순히 메이저리그에서 공 한 개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 기업의 목표가 단순히 물건 한 개를 파는 것이 아니라 해당 시장에서의 성공이라면, 우리 기업과 제품에 대한 자신감의 근거부터 분명히 해두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