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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2013년 넥센 돌풍의 비결

biumgonggan 2021. 8. 7. 18:30

오늘은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이야기입니다. 넥센 팬들에게 2013년은 꽤 가슴 떨리는 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이후 한 번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했고 2011년에는 꼴찌로 떨어졌던 넥센이, 2013년 전반기 들어 1위에 오르내리는 돌풍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넥센의 이 같은 변화는 주목할 만한데요, 과연 그동안 넥센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넥센이 질 때 크게 지고, 이길 때 크게 이기는 경기, 즉 효율적인 야구를 했다는 것입니다. 실제 넥센은 2013 시즌 경기 후반 역전승이 많고, 1점 차 승리에 굉장히 강합니다. 부족한 리소스를 가지고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비결, 선택과 집중에 있어서 집중에 모든 것을 쏟아붓는 ‘집중력’의 강화가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휴식’입니다.

 

최근 수년간 한국 프로야구의 트렌드는 ‘강한 훈련’이었습니다. 2007년 SK가 ‘강한 훈련’의 대명사인 김성근 감독 체제로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 모든 팀은 ‘훈련량’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순위가 떨어지는 팀일수록 시즌이 끝나자마자 훈련량을 늘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넥센 돌풍의 비결은 적은 훈련량에 있습니다. 넥센은 프로야구 9개 구단 중 가장 훈련을 덜 하는 팀입니다. 스프링캠프뿐만 아니라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도 넥센은 훈련량을 크게 줄였습니다. 2013 시즌은 9개 구단 체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돌아가며 4일 휴식기간이 생기는데 다른 팀이 3일 훈련하는 것과 달리 넥센은 이틀만 훈련합니다. 그 이틀 중 하루도 훈련량을 크게 줄인 채 수비 포메이션 정도만 점검하는 수준이어서 사실상 제대로 된 훈련을 하루에 그칩니다. 평소에도 야간 경기 뒤 낮 경기가 이어지는 날이면 아예 경기 전 훈련을 생략합니다. 넥센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훈련량을 줄인 것일까요?

 

체력은 어차피 쓰면 없어집니다. 오히려 얼마나 빨리 회복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강한 훈련을 통해서 일종의 ‘내성’을 키우는 방법도 있지만 차라리 푹 쉼으로써 체력을 회복하는 쪽이 낫다는 게 넥센이 선택한 방향이었습니다. 체력의 양이라는 게 정해져 있다면 훈련으로 다 소진시키는 대신 실전에서 집중적으로 쏟아붓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죠.

 

최근 스포츠 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휴식입니다. 어떻게 쉬는 것이 경기력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중이지요. 실제로 강한 훈련을 통한 내성 강화는 시즌을 치르면 치를수록 체력이 차츰 떨어지는 곡선을 그리지만 휴식을 통한 회복은 시즌 내내 체력을 유지하는 그래프를 그립니다. 참고로, SK가 강한 훈련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선수의 수, 즉 리소스의 양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강한 훈련으로 기술을 끌어올린 뒤 여러 명의 선수를 골고루 써 가면서 시즌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넥센은 최근 수년간 주축 선수들을 현금 트레이드로 팔아버리면서 A급 선수들의 수가 부족합니다. 넥센의 선택은 적은 수의 A급 선수들로 시즌을 치르려면 이들의 체력이 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계산에서 나왔습니다. 넥센 돌풍의 또 다른 비결은 해결책을 향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맥킨지 출신의 바바라 민토는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4단계로 정의합니다. 상황(situation)-전개(Complication)-질문(Question)-해답(Answer)의 과정이 바로 그것이지요. 상황을 먼저 인식하고 그 상황의 세부사항을 따진 뒤 적절한 질문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식입니다. SCQA는 기업의 문제 해결을 위한 방식이기도 하지만, 야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넥센은 시범경기 동안 홈경기 타격 훈련 때 배팅 케이지 두 개를 설치합니다. 한쪽은 배팅볼 투수가 던지고 다른 한쪽은 피칭 머신이 던지는 것까지는 여느 팀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피칭 머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이 조금 이상합니다. 스트라이크가 되는 게 아니라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는 커브를 던지게 합니다. 따라서 선수들은 정상적인 스윙이 아니라 엉덩이를 빼면서 팔을 쭉 뻗어 맞히는 스윙을 연습하게 됩니다. 이를 SCQA로 따져볼 수 있습니다. 넥센이 지난 시즌 4강에 실패한 것은 시즌 중후반 타선의 집중력 부족 때문이었습니다. 홈런으로 한 두점은 뽑았지만 한 이닝 대량득점, 빅이닝이 부족했습니다. 이게 바로 ‘상황분석’이지요. 빅이닝을 만들기 위해서는 안타가 안 나오더라도 계속해서 주자가 진루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볼카운트가 몰리더라도 어떻게든 공을 페어지역으로 바운드시켜야 한다. 이렇게 전개가 됩니다. 그럼 어떻게 나쁜 공을 칠 것인가. 여기서 문제의식을 갖고 해결책을 찾습니다. 그러면 나쁜 공을 때리는 훈련도 하는 게 답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염경엽 넥센 신임 감독은 “실제 경기에서, 반드시 기회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상대 투수가 좋은 공을 줄 리 만무하다. 최대한 나쁜 공을 주려고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나쁜 공을 때리는 훈련을 지난해 가을 마무리 캠프에서부터 시범경기까지 이어왔고 시즌 중에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실제 넥센의 경기를 보면 결정적인 순간 볼을 때려서 안타르 만들어내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넥센의 고질적 문제는 이것 말고도 또 있습니다. 투수들의 볼넷이 너무 많았습니다. 2010 시즌 614개, 2011 시즌 601개, 2012 시즌 535개로 3년째 부동의 1위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투수들에게 볼넷 좀 줄이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아무런 효과도 없습니다. 어차피 투수를 싹 바꿀 게 아니라면 실천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염경엽 감독은 세 가지를 주문했습니다. 첫째, 투수들은 3구 이내에 승부할 것. 맞아도 책임 묻지 않는다. 둘째, 날카로운 유인구가 아니라 스트라이크를 던질 수 있는 변화구를 만들 것. 왜냐하면 볼카운트가 투수에게 불리할 때 타자들은 직구를 노리니까. 셋째, 포수는 초구에는 절대로, 2구째도 웬만하면 자리를 옮기지 말 것. 스트라이크존 구석 보고 던져도 빠지는데, 차라리 가운데 보고 던지는 게 낫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나쁜 결과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좋은 리더가 아니라 나쁜 리더들도 다 할 수 있습니다. 물건이 안 팔리는 것에 대해 “열심히 해서 물건을 더 팔라”고 하는 것은 초등학생들도 할 수 있는 말이지요.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상황을 파악하고 심화시켜서 문제점을 발견해 해결 가능한 방향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넥센 염경엽 감독의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기업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죠.

 

정리하면, 넥센에서 배울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열심히 일할 당신, 실전 활약을 위해 일단 쉬어라. 둘째, 해결책을 향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찾는 것입니다. 자녀의 성적이 떨어졌을 때, “공부 좀 열심히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위반하는, 가장 나쁜 예입니다. 지친 것 같으니 좀 쉬어라, 그리고 성적이 떨어진 이유에 대한 상황 분석, 문제점을 도출해서 해결책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 정답에 가깝겠지요. 오늘, 지친 몸으로 야근하는 대신, 저녁에 시원하게 맥주 한잔과 함께 야구 보면서 쉬시는 건 어떨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