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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영국 거리. 많은 여성들이 거리를 가득 매웠습니다. 적막 속에 긴장까지 감도는 가운데 한 여성이 목소리를 높여 외칩니다. “우리는 함께 이 싸움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견디고 버텨낸다면 후대는 보다 쉽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이 여성은 경찰에 연행되는데요 “사회혼란을 부추기는 몰지각하고 위험한 여성”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하지만 이 한마디는 여성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게 됩니다. 왜 영국 여성 입에서 ‘싸움’과 ‘고난’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경찰에 연행된 인물은 에멀린 팽크허스트. 영국의 유명 여성참정권 운동가입니다. 사실 그녀의 이름이나 활동보다는 2016년 개봉된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 ‘서프러제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더 알려진 인물인데요. '서프러제트'란 말은 여성의 참정권 쟁취를 위해 전투적으로 운동했던 여성운동가를 뜻하는 단어로 그녀는 이 서프러제트의 상징이자, 표본입니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수십 년간 제자리걸음이었던 여성 참정권 문제를 중요한 사회적 의제로 만들어냈고, 남성과 동일한 한 표를 갖는 우리 시대 ‘여성’의 모습을 최초로 빚어냈다고 평가받는 인물인데요. 그녀의 이야기를 처음 들은 많은 분들이 왜 선진적인 나라, 영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되묻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인류 민주주의 역사를 이끌었던 영국은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유독 여성들에게만은 이런 민주주의의 모범을 보이지 못했습니다. 여성 참정권을 묵살하고 있었죠. 영국의 자치령국가였던 뉴질랜드는 1893년에, 미국도 1920년에 여성의 투표권을 인정했지만 영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국 의원들은 자신이 여성들에게 공감하는 입장이며 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할 뿐, 법안을 발의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진보적인 사상가들이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하고 의회에 상정하기도 했고, 합법적인 시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지극히 남성 중심의 사회였던 영국은 냉소적이기만 했죠 "나와 여러분은 막중한 임무를 갖고 있습니다. 그 임무는 바로 인류의 절반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작은 노력이 그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팽크허스트의 이런 간절한 목소리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현실의 벽을 실감한 팽크허스트는 <여성 참정권 연맹>을 설립하고 보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행동에 나섭니다. 그녀의 이 단호함은 급진적인 여성운동의 신호탄이었습니다. 영국 여성들이 집회를 벌이고 선전활동을 시작합니다. “내가 유리창을 깨면서 싸울 때,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이루어냈습니다” 말 그대로였습니다. 런던 번화가의 건물 유리창을 부수기도 하고, 국왕이 잘 볼 수 있도록 버킹검 궁 난간에 몸을 매달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팽크허스트는 1913년 한 해 동안만 무려 열두 차례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했고, 감옥을 제 집처럼 드나들었습니다. 재판정에 선 팽크허스트는 자신이 왜 이토록 폭력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밝히는데요. "만일 내가 여러분들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고, 법을 만드는 사람을 뽑는 데 참여할 수 있다면, 법을 어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노예로 사느니 반역자가 되는 길을선택한 것입니다." 그녀는 행동의 이유를 정확하게 밝혔는데요 급진적 시위가 옳다고 할 순 없으나 부당한 법률을 고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었음을 설명한 것입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팽크허스트의 가열 찬 여성 참정 운동은 주춤했지만. 전쟁이 끝나고마침내 1928년, 영국의회는 21살 이상의 성인 남녀에게 동등하게 투표권을 인정하는 <인민대 표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녀는 이 법안이 시행되기 불과 한 달을 앞두고 세상을 떠나고 마는데요. 팽크허스트는 영국 여성이 처음으로 투표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그녀가 뿌린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2017 6월 영국의 총선에서는 무려 208명의 여성들이 의회로 진출 했습니다. 89년 만의 일이었죠. 영국 BBC는 100명의 위대한 영국인 가운데 그녀를 27위로 선정했고, 미국의 <타임>지 역시 20세기 가장 중요한 인물 100인에 그녀를 포함시키는 등 팽크허스트는 여성 지위와 평등의 역사이자 증인이 되었습니다. 팽크허스트의 행동을 그저 과격한 페미니스트의 관점에서만 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불평등한 사회를 바꿔 내려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그 누구든 권리를 보장받고자 한다면 누군가에게 기대거나 바라는 것이 아니라 직접 현장에서 몸을 맞대고 싸울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는 자신이 나서 직접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녀의 신념은 그리고 그 노력은 당시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변화를 이뤄냈습니다. 자신이 믿고자 하는 바를 지켜내고 기꺼이 그 고난을 감수했던 에멀린 팽크허스트의 외침이 아직도 절절한 것은 아마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닐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