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982년 9월 프랑스 오트 쿠튀르 패션을 선두 하는 고급스러움과 우아함의 대명사‘ 샤넬’에서 다소 의아한 발표를 내놓습니다. 바로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영입이었죠. 그는 1960년부터 프랑스 ‘클로에’나 이탈리아의 ‘펜디’와 같은 유명업체의 기성복 디자인으로 성공을 거둔 디자이너였습니다. 패션계에선 기성복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아온 라거펠트가 샤넬의 오트 쿠튀르 패션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는데요 하지만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무표정과 함께 말합니다. “위대한 창조에 이론 따위는 없습니다. 패션은 파괴를 위해 존재합니다 지켜보세요”
여론은 샤넬은 이제 망할 것이라며 비웃었는데요. 그런데 정확하게 4개월 후 그 비웃음은 찬사로 바뀝니다. 1983년 1월 샤넬의 오뜨 꾸뜨르 컬렉션에서 등장한 칼 라거펠트의 디자인은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젊은 샤넬의 탄생이었죠. 샤넬의 시그니처 슈트와 가방 등의 디자인은 살리되, 재정비된 의상들이었죠.
대담과 완벽, 독특과 정열이라는 콘셉트를 내걸고 샤넬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의 트렌드를 조화시킨 옷들이 공개됐는데요, 바로 그날“죽은 코코 샤넬을 무덤에서 일으켰다”는 극찬과 함께 디자이너 칼 라거펠드 시대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라거펠트는 샤넬의 고상함을 유지하면서도 젊은 층들이 찾는 최고급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명성을 찾고자 했는데요. 샤넬의 정통성을 이야기하며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옷만 있을 뿐입니다 법칙이나 규칙을 만들지 마세요”라고 다소 거만하게 들리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습니다. 말의 속뜻엔 무엇이 담겨 있었을까요? 과거에 아무리 코코 샤넬이 위대한 옷을 만들었지만, 결국 세상의 변화나 대중의 욕구를 넘어설 수는 없다는 표현일 것입니다. 고정 불변의 것은 없으며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해야 한다는 것임을 관통하고 있었죠.
그래서일까요 그가 선보인 패션은 역사와 현대, 고급과 대중, 대중문화와 하위문화, 근엄과 경쾌, 절제와 자유 등 모든 요소를 어떤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자유롭게 넘나들었습니다. “나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그가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이 말은 그의 인생관 직업관 그리고 성공의 비결이 담겨 있습니다. 빠른 변화를 민감하게 반응하고 조금만 진부해져도 혹평이 쏟아져 나오는 패션계에서 그의 활약은 조금 과장을 덧붙이자면 신화적입니다. 그는 어떤 특정한 철학을 담고 비슷한 디자인을 쏟아내기보다는 브랜드의 정체성은 살리되 기존의 것을 해체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하는데요. 그 결과물은 매년 선보이는 패션쇼에서 한눈에 볼 수 있죠. ‘한편의 오페라’라고 불리는 칼 라거펠트가 패션쇼는 매년 새로움과 기발함을 거듭하고 있는데요. 그가 디자인하고 만들어내는 의상, 악세사리, 구두 하나하나는 그해의 유행을 선도하며 현대 패션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클래식한 샤넬 정장에 스니커즈를 디자인해 신기는가 하면, 펜디 모피에는 구멍을 뚫거나 조각을 내 기존의 모피 디자인에 대한 인식을 깨트려, 대중화 키기도 했죠. 우리가 많이 봐온 펜디의 시그니쳐 로고, 더블 에프를 직접 디자인한 것도 바로 칼 라거펠트입니다. 그의 창의성은 패션에 국한되지 않는데요.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딴 브랜드 칼 라거펠트를 론칭한 후 밀라노의 라 스칼라, 비엔나 궁정 극장, 몬테-카를로 발레단 등을 위한 무대 디자인과 출판업과 서점 운영, 코카콜라와 몽블랑 만년필 등과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을 통한 생필품 디자인에도 참여했는데요. 이런 다방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그를 최정상의 디자이너로 만든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되는 부분입니다.
올해 나이 83세. 그는 여전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로 활동 중입니다. 30년이 넘는 긴 시간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그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은 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변화를 지지한다. 내가 하는 작업은 나의 관점에서 세상의 변화를 창조하는 것이다” 80이 넘은 노인에게서 어떻게 이런 기운과 힘이 뿜어져 나오는지, 다시 한번 감탄을 자아내는데요.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변화를 지지하시나요? 혹시 지금 환경이 너무 안락해서, 혹은 변화가 가져올 불편함과 실패가 두려워 변화를 거부하시지는 않으신지요? 그렇다면 영원한 변화인, 영원한 진행형, 영원한 현역 라거펠트의 이 말을 큰 소리로 되뇌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위대한 창조에 이론은 없다 지금의 내가 세상의 변화를 창조하리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