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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모스크바의 한 공연장. 유명한 발레리나 한 명이 무대에 섰습니다. 우아한 발레복의 아름다운 무용수 모습을 기대했던 관객들의 생각은 한순간에 깨어졌습니다. 헐렁헐렁한 흰색 원피스를 걸친 맨발의 여성이 서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웅성거리는 관객들을 향해 나직하지만 당당하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왜 내 치마와 토슈즈만 보고 있나요 세상이 나를 길들이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이어진 발레리나의 춤은 결코 우아하지도 황홀하지도 않은 몸이 느끼고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추는 '자유로운 춤'이었습니다. 바로 현대 무용의 시작을 알리는 위대한 순간이었죠. 이 춤을 춘 주인공이 누구였을까요 '현대 무용의 어머니' 이사도라 덩컨이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온 그녀에게 쏟아진 관심은 말 그대로 뜨거웠습니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 앞에서 그녀는 아주 단호했죠. "왜 토슈즈를 꼭 신어야만 합니까그 속에서 기형적으로 뒤틀린 근육과 골격이 춤추고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보세요 나는 이제부터 자유를 위해 춤을 추겠습니다” 발레의 상징 '튀튀'와 '토슈즈'를 신지 않은 발레리나의 첫 등장. 200년 동안 지켜오던 규칙은 한순간에 깨어져 버렸죠. 그날로부터 이사도라는 무대가 따로 없어도 어디서나 춤을 췄고 그녀가 춤을 추는 그곳은 곧 환희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그의 춤에 열광했습니다. “barefoot dance" 그녀의 춤을상징하는이 말, '맨발의 춤'은 단순히 현대 무용의 시작과 춤의 형식을 파괴했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사회의 편견과 협소함, 허위의 제도에 저항하기 위해서도 춤을 춘다" 폐쇠적이고 보수적인 사회에 대한 일종의 해방 선언이기도 했죠. 사실 이사도라가 보여준 자율을 향한 춤은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닙니다. 1877년 파산한 은행가 딸로 태어난 그녀는 아주 궁핍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정규 교육은 고작 10살까지 받은 게 전부였죠.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었지만 그녀에게 발레 학교는 사치였습니다. 그저 먹고 살기 위해 뉴욕과 시카고를 전전하며 춤을 추었죠. 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담했습니다. 교육을 받지 않은 댄서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그녀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그녀는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과거를이렇게 회고했는데요 "나는 빈손이었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았다. 내게는 황금 덩어리 같은 재능이 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환경이 나를 규정할 순 없다" 그녀는 수시로 바닷가와 들판 강과 숲을 찾아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 자연을 춤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녀 앞에 놓인 많은 어려움을 자유를 갈망하는 몸짓으로 승화해 표현한 것이었죠. 결국 그녀는 22살에 영국행 가축 수송선에 몸을 싣고 유럽으로 떠납니다. 당시 19세기말 유럽에서는 문화 예술 전반에서 구체제를 벗어나려는 새로운 실험들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이사도라의 선택은 적중했습니다.
거침없이 춤을 추는 그녀에게 유럽인들이 열광한 것이죠. 파리에서 시작된 이사도라 열풍은 유럽 전역, 그리고 러시아까지 널리 퍼졌습니다. 그녀는 무용을 소수 전문가의 영역에서 대중의 영역으로 바꿔놓았다는 극찬을 받았는데요. 이후 ‘사람을 춤추게 하는 것은 영혼과 정신이지 기교가 아니다’는 던커니즘(Duncanism)이 전 세계에 유행합니다. 이사도라 덩컨이 새롭게 열어젖힌 자유와 해방의 몸짓은 이후 마사 그레이엄이나 마스 커냉햄, 피나 바우쉬 같은 걸출한 현대무용가로 이어지면서 무용의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사도라 덩컨의 파격적인 춤만으로 그녀를 평가하기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이사도라는 춤을 추는 동안 철학과 문학예술을 탐구했고, 또 그 풍성한 자양분을 춤에 녹여냈다고 하는데요. 시인 위트먼을 비롯해 니체, 베토벤, 세익스피어, 플라톤에 이르기까지 탐구했습니다 “베토벤으로부터는 힘찬 춤의 리듬을, 니체로부터는 춤의 정신을, 휘트먼으로부터는 '춤과 삶을 배웠습니다 제게 춤이란 정신의 신성한 표현입니다’라고 말하며 평생을 춤을 위해 공부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그녀를 왜 현대 무용의 어머니로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인데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1927년 그녀는 쉰 살의 젊은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납니다. 목에 감고 있던 머플러가 자동차 바퀴에 감겨버린 안타까운 사고 때문이었는데요. 그녀와 꼭 닮은,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은 불꽃같은 생의 마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00년이 흘렀지만 현재 무대에 오르는 현대 무용 중에서 이사도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작품은 단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만약 이사도라가 자신의 상황을 수긍하고 세상과 타협하려 했다면 아마도 지금의 훌륭한 현대 무용들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한 여인의 당찬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는지 그 힘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데요. 여러분 이사도라 덩컨이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묻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이 너무 당연히 신고 있는 토슈즈는 없으십니까 절대 세상이 당신을 길들이게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