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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범죄와의 전쟁, 필리핀 두테르테

biumgonggan 2021. 8. 3. 11:15

2016년 6월 30일 “범죄자 10만 명 처형”이란 무시무시한 공약을 통해 필리핀 새 지도자가 뽑혔습니다. 바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입니다. 그가 취임 후 두 달간 범죄자 8000명을 체포하고 2000명을 사살하는 등 초강경 범죄소탕 정책을 펼치자 일부 마약상들이 이슬람 국가 IS에 그의 암살을 의뢰하고 급기야 2016년 9월 2일 그를 노린 폭탄 테러까지 발생했는데요. 인권 경시, 법치 실종 등 그의 통치 스타일에 대한 비판이 많지만 고질적 양극화와 부패에 시달린 국민들은 그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필리핀의 트럼프로 불리는 논란의 정치인, 두테르테가 누구인지, 그가 필리핀에 희망을 가져올지 알아보겠습니다.

 

두테르테는 1945년 필리핀 중부 레이테 섬에서 변호사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5살 때 남부 민다나오 섬 최대 도시 다바오로 이주한 그는 퇴학을 두 번 당할 정도로 문제아였죠. 하지만 대학 입학 후 열심히 공부한 덕에 1972년 법조인이 됐습니다. 강력범죄 소탕 검사로 이름을 날렸고 그 덕에 1988년 다바오 시장에 뽑혔는데요.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민다나오는 아시아 대표 분쟁지역입니다. 필리핀 국교는 가톨릭이지만 민다나오는 인구의 20%인 400만 명이 무슬림이어서 1970년 대 초부터 40년간 내전이 벌어졌고 12만 명이 숨졌죠. 사실상 중앙정부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이라 그가 시장으로 취임했을 때만 해도 다바오 치안은 극도로 불안했는데요. 그는 자경단을 조직해 범죄자 수천 명을 소탕하고 다바오를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만들었습니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7차례 시장을 역임했고 ‘징벌자(The Punisher)’란 별명을 얻었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도 소녀 성폭행범 3명을 재판 없이 직접 총살했다고 밝혀 논란을 낳았습니다.

 

2015년 11월 두테르테는 대선출마를 선언했는데요. 당시 그의 당선을 예측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가 속한 민주필리핀당이 군소 야당인 데다 범죄자란 이유로 재판 없이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그가 법과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국가의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비판이 많았죠. 입에 담기도 힘든 각종 막말도 문제였는데요. 그는 2015년 1월 필리핀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교통정체를 유발했다며 교황을 ‘매춘부의 아들’로 불렀고 1989년 다바오 교도소 폭동 당시 재소자들의 집단 성폭행을 당해 숨진 호주 여성 선교사에게 “얼굴이 정말 예뻤다”는 어이없는 말을 하기도 했죠. 이런 막말에도 그의 지지율은 가파르게 치솟았는데요. 결국 마누엘 로하스 전 내무장관, 제조마르 비나이 부통령 등 쟁쟁한 중앙정부 실력자를 물리치고 2위와 무려 600만 표 차이로 당당히 1위를 차지하죠. 초법적 살인 행위를 저지른 인물이 투표란 민주적 절차에 의해 최고 권력자가 된 겁니다.

 

두테르테의 깜짝 당선 배경에는 필리핀의 극심한 양극화와 유례없는 족벌정치가 있는데요. 과거 필리핀을 통치했던 스페인과 미국은 몇몇 자산가들에게만 투표권을 부여하며 양극화를 조장했고요. 1946년 독립 후 이 봉건 유산을 청산하지 못하면서 현재 화교 재벌 코후앙코를 비롯해 40개 유력 가문이 필리핀 GDP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부와 권력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물론 동네 이장까지 세습이 만 연화됐는데요. 두테르테의 전임자인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의 아들, 이번 대선에서 2위를 한 로하스 전 내무장관은 마누엘 로하스 전 대통령의 손자, 필리핀을 21년간 철권통치한 독재자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부인, 딸, 아들도 모두 정치인입니다. 이제 코후앙코는 단순히 한 가문의 이름이 아닌 필리핀 족벌정치를 상징하죠. 반면 인구 25%는 아직도 하루 수입 2달러 미만의 절대 빈곤에 시달립니다.

 

이 와중에 극심한 치안 불안으로 가난보다 생존을 먼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몰리자 필리핀 국민들이 ‘강력한 법 집행자’ 이미지를 지닌 두테르테를 선택한 겁니다. 취임 직후 경찰 3000명을 증원하고 민간인 자경단에게 범죄자 즉결 처형을 허가한 그의 초강경 정책은 일단 효과를 보였는데요. 2016년 7월 한 달간 살인과 강간 같은 강력범죄가 전년 동월 대비 31% 급감했고 겁을 먹고 자수한 마약범만 55만 명이 넘습니다. 이제 그는 범죄가 아니라 부패와의 전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요. 2016년 8월 10일 기업인들의 정경유착, 탈세 등을 근절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달 22일에는 부패 공무원 전원을 해임하겠다고 했죠. 이에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이 91%에 달할 정도로 국민들의 신임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초법적 통치 행위에 대한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는데요. 유엔이 범죄 척결 과정에서의 인권 유린을 문제 삼자 그는 유엔을 탈퇴하겠다고 또 막말을 했고요. 기존 족벌정치를 타파하겠다는 그가 정작 자신의 딸에게 다바오 시장 자리를 물려주는 등 구태를 답습한 것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2016년은 필리핀 국민들이 독재자 마르코스를 축출한 지 꼭 3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지만 국민 1억 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은 민주화 역사를 자랑하기보다 오히려 먹고살 만했던 마르코스 시대를 그리워하죠. 과연 두테르테가 족벌정치 폐해를 청산하고 낙후된 필리핀 경제사회구조를 대대적으로 개혁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지켜봐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