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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한 것은 2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된 20세기 이후였습니다. 패러데이와 맥스웰이 발견한 전자기파의 법칙을 통해 전자 및 통신 산업이 생겨났고, 유기화학의 발달은 나일론 등 합성섬유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E=mc2는 원자폭탄과 원자력 시대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첨단과학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그 누구도 과학의 권위와 위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과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에 비해 과학과 대중의 거리는 얼마나 가까워졌을까요? 저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은 우연히 비행기 옆 좌석 사람과 과학에 대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주제가 심령과학, 외계인, 음모론 등 사이비 과학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미국 대중의 과학적 소양을 끌어올려야 할 필요가 절실하다고 지적합니다.
사실 과학이란 어렵고 골치 아픈 것입니다. 깨알 같은 방정식과 복잡한 실험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겨두고 일반인은 그냥 문명의 혜택을 누리면 안 될까요? 일반인이라면 그래도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정책이나 전략의 의사결정자들, 즉 관료와 경영자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과학자와 중요 의사결정자 간의 소통은 역사의 고비를 좌우하는 드라마가 되기도 합니다. 원자폭탄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아인슈타인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유명하죠. 오늘은 이에 못지않게 극적인 사례 하나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주인공은, 1차 산업혁명의 가장 저명한 인물인 제임스 와트의 후손, 로버트 왓슨-와트입니다. 왓슨-와트는 공과대학에서 무선 전신을 전공한 뒤 영국 정부에 취직하여 전파 관련 연구를 수행해 왔습니다.
독일의 재무장과 함께 전운이 감돌던 1935년, 왓슨-와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당시 영국 공군은 독일에서 “죽음의 광선(Death Ray)”이라고 불리는 전파무기가 개발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한 군부 요인이 왓슨-와트에게, 같은 종류의 무기를 개발할 수 있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전파로 비행기를 파괴한다는 것은 스타워즈의 광선검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얘기입니다만, 왓슨-와트는 “No”라고 답하는 대신, 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안했습니다. 그것은 전파를 반사하는 물체의 성질을 이용하여 적기의 위치와 움직임을 파악하는 장치였습니다. 오직 시각과 청각으로만 감지해야 했던 적기의 내습을, 구름 속이든, 고공이든 야간이든 손바닥처럼 볼 수 있는 “천리안”을 만들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수용되는 데는 상당한 소통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적기 격추에 비해 적기 추적은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전에 영국 공군은 현상금을 제시할 만큼 광선 무기에는 집착하면서도 위치 추적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미온적이었습니다. 일반인과 과학자의 관심의 초점은 이처럼 다릅니다. 사람들을 열광시키는 과학적 명제는 아차 하면 사이비 과학으로 빠져들기 쉬운 것입니다.
왓슨-와트는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전자파가 빠르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는 없지만 비행기 동체에 반사되는 전파를 수신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계산을 수행해야 했는데, 다행히 그의 부하 중에는 아널드 윌킨스라는 유능한 과학자가 있었습니다. 윌킨스가 기술적 가능성을 계산하면 그 결과를 들고 왓슨-와트는 정부와 군의 의사결정자를 상대했습니다. 왓슨-와트는 과학자로서는 언변이 좋았고 정치적 센스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를 상대한 것은 당시 해군장관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처칠에게도 레이더 기술이란 이해하기 어려운 신기술이었습니다. 더구나 당시 영국 군의 과학전문가들은 전파의 신이론을 잘 알지 못해 레이더 기술이 무의미하다고 처칠에게 단언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예산을 약간만 건드려도 개발은 바로 좌초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칠은 연구를 보호하고 기다렸습니다. 윌킨스의 정확한 계산과 왓슨-와트의 소통 노력이 결국 흐름을 바꾸었고 레이더는 실전에 배치되었습니다. 독일 공군의 움직임이 낱낱이 파악되었고 독일군의 영국 본토 폭격, 일명 “바다사자 작전”은 좌절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뜨거워지면 옥석을 가리기가 매우 힘들어집니다. 실제로 왓슨-와트가 레이더를 발명하기 10년 전쯤에 광선 무기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과학자가 나타났습니다. 해리 그린델-매튜는 자신이 발명한 광선으로 오토바이의 엔진을 멈추는 실험을 해 보이기도 했으나 다행히 군은 속지 않았습니다. 희대의 해프닝이 일어날 뻔 했죠. 똑같은 일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피 한 방울로 20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고 주장한 엘리자베스 홈즈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홈즈는 “여성 스티브 잡스”라고 불렸으며, 저명인사들이 그녀의 회사, 테라노스에 투자했습니다. 지금 그녀의 사업은 사기로 최종 판명되었으며 법적 처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테라노스를 찬양했던 포춘지의 베테랑 기자 로저 팔로프는 “기업 비밀”이라는 장막에 속았다고 반성문을 써야 했습니다.
과학은 이제 산업과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4차 산업혁명의 승부처는 “과학”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가상과 현실이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기술의 세부적인 변화는 바로 비즈니스 모델에 영향을 줍니다. ‘전략은 종이 위에 연필로 쓰고, 실행은 전산화하는’ 이분법적 대응으로는 곤란합니다. 블록체인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금융사업에 뛰어들 수 없고, 사물인터넷을 모르면서 O2O사업을 벌일 수 없습니다. 전략도 감성도 인문학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결단을 내리려면 관련 분야부터 과학적 소양을 갖추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과학 기술의 핵심적 고리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참신한 경영전략이나 의미 있는 경제정책을 입안할 수 없습니다. 처칠은 항상 곁에 과학자들을 두고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다행한 일은 과학을 공부하기 위한 교재나 강의 등의 발달로 접근이 쉬워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전략을 모색하고 계신가요? 과학에 대한 관심이 그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