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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제임스 와트와 매튜 볼턴

biumgonggan 2021. 8. 2. 14:24

진정한 우정의 사례로 관포지교가 많이 이야기됩니다. 관중은 포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하죠.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나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다.” 산업혁명 시대에도 이런 교우가 있었습니다. 2011년부터 영국 화폐의 최고 고액권 50파운드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는 제임스 와트와 매튜 볼턴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와트를 발명가, 볼턴을 사업가로 구분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와트도 사업가 기질이 있었고 볼턴도 자신만의 발명품이 많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증기기관에서만큼은 각자의 역할을 차별화했습니다. 와트는 기계 개량에 몰두하고 볼턴은 사업과 마케팅에 주력했습니다. 이런 역할 분담이 이들을 환상의 커플로 만들었습니다.

 

1차 산업혁명은 “증기 혁명"이라고 불립니다. 증기기관이 산업의 핵심 동력이 된다는 것이죠. 물은 끓어서 증기가 되는 순간 부피가 수천 배 증가합니다. 이것이 엄청난 에너지를 분출시키는 건데요. 하지만 이 분출이 1회성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물을 끓이려면 용기를 데워야 하고 이를 다시 물로 만들려면 식혀야 합니다. 데웠다가 식혔다가를 반복하면서 에너지가 낭비되는 것입니다. 와트는 단순한 아이디어로 특허를 얻는 데 성공합니다. 물을 끓이는 공간과 냉각하는 공간을 분리하는 것, 바로 보일러와 컨덴서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산업혁명사의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중 하나입니다. 열 손실을 회피함으로써 엄청난 에너지 절약할 수 있게 되었죠.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이것을 현실적으로 구현하기에는, 당시의 기술이나 인프라의 한계로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했습니다. 와트는 컨덴서의 아이디어로 1769년에 특허를 받았지만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습니다.

 

매튜 볼턴이 와트의 사업에 참여한 것은 1774년으로, 특허 만료까지 10년이 남아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볼턴은 증기기관의 가능성을 한눈에 알아보았지만 특허 만료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연구를 아무리 빨리 완성한다고 해도 몇 년은 더 걸릴 텐데 혁신의 수확을 거두기에 는 시간이 너무 없었죠. 볼턴은 와트에게 동업을 제안하면서 바로 특허 연장을 위한 행동을 개시합니다. 내성적인 기술자 와트로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볼턴의 수완이 발휘되어야 할 때였습니다.

 

볼턴은 와트를 만나기 전부터 유능한 사업가이자 마케팅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버밍엄의 소호 지역에 공장을 지으면서 오늘날의 쇼룸과 비슷한 시설을 만들어 방문객을 유치했습니다. 당시 권위 있는 영어 사전을 편찬한 저명한 문인 사무엘 존슨과 같은 명사들도 초청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기업브랜드 전략의 원조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입니다. 볼턴은 이러한 수완을 발휘해 대 의회 로비를 시작합니다. 마침 그 시기에 영국 정부는 식민지였던 미국과의 갈등으로 인해 대미 교역을 제한하는 경제 제재를 단행했습니다. 본국에 자꾸 반기를 드는 미국을 길들이기 위한 조치였는데 이것은 식민지와 교역하던 영국 상인에게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피해를 입은 상인들이 연대하여 제재를 완화해달라는 의회 청원을 제출합니다. 바로 여기서 볼턴은 기회를 포착합니다.

 

볼턴은 예상외로 식민지 제재를 지속해 달라는 반대 청원을 했습니다. 동료 상인의 지탄을 받을 것이 뻔했으나 그는 노리는 바가 있었죠. 당시 영국의 왕 조지 3세는 미국의 불손에 크게 역정이 나 있었고 정부는 왕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반대편에서는 상인들과 의회가 자유무역과 상업의 이익을 주장하며 정부를 압박했습니다. 딜레마에 빠진 수상 프레드릭 노스경의 처지를 짐작한 볼턴은 바로 이때 정부 지지를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볼턴은 증기기관 특허의 연장을 의회에 신청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특허 만료는 1800년까지 연장되었습니다. 15년이 더 늘어났죠.

 

어려운 시기에 눈에 띄는 행동으로 수상의 눈도장을 받은 것이 좋은 영향을 미쳤을 것임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볼턴은 교활할 정도로 정확하게 판세를 읽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동료 상인마저 배신하는 권모술수, 마키아벨리즘처럼 보이는데요. 그러나 볼턴을 위해 변명하자면 이렇게 해서 번 기간에 와트는 증기기관의 성능을 크게 끌어올렸습니다. 특허 연장이 실패했다면 증기기관의 발전이 한 세대 이상 지체되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죠. 그 근거 중의 하나가 1781년에 새롭게 특허를 획득한 와트의 “회전식 증기기관"입니다. 이 혁신으로 상하 운동밖에 할 수 없던 증기기관이 회전운동을 할 수 있게 되고, 탄광 갱도에서 물을 빼는 역할만 하던 증기기관이 모든 산업의 범용 엔진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수차에 의존하던 많은 기계들이 강의 상류 지역을 벗어나 도시와 시장 가까이 올 수 있게 되었고, 증기기관차, 증기선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도 이로써 가능해졌습니다.

 

특허 연장을 위한 볼턴의 책략이 오늘날 비난받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연구개발에만 몰두하고 대외 활동에 서툴렀던 와트를 대신하여 의회를 상대한 볼턴은 지금 와트와 함께 나란히 파운드 지폐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은 기술이지만, 기술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제도적 맥락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기업가는 때로는 제도적 환경에 순응하지만 때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비시장 전략이라고 하는데요.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가는 비시장 전략은4차 산업혁명기에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SNS, 빅데이터의 개인정보 보호,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이슈, 인공지능과 관련된 고용 문제 등등, 제도적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제도적 선택이 기술 혁신 못지않게 산업과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것입니다. 적합한 제도적 환경을 만들어가려는 노력은 기업의 뜻만으로 또는 정부의 뜻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기업, 정부, 그리고 사회 간의 진솔하고 심도 있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기업은 혁신을 통해 경제 사회에 줄 수 있는 가능한 성과와 비전을 명확히 알림으로써 사회적 동의와 지지 기반을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