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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벗어나 귀촌을 하면 시간관념이 변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시계를 보지 않게 되고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또는 시장기로 자연스럽게 시간을 압니다. 이웃과의 약속도 오전에 또는 오후에 보자는 식으로 느슨해집니다. 선사시대 조상들의 본능이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수백만 년 동안의 관행이었고 몇 시 몇 분까지 시간을 맞추는 관행은 빨라야 2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체계적 분업을 처음으로 시도한 근대 초기의 공장에서는 전 직원의 행동을 동기화시키는 것이 큰 일이었습니다. 당시 근로자에게는 출근 시간을 정하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초기 유럽의 공장에서는 “성 월요일"이라는 관행이 있었다고 합니다. 요즘은 ‘불금’이라고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일요일 저녁이 흥청망청 노는 시간이었습니다. 술에 취해 잠든 후 숙취를 핑계로 월요일 출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월요일은 개점휴업 상태가 되었고 이를 근로자들은 “성 월요일”이라고 불렀습니다. TGIF가 아니고 TGIM이었던 셈이죠. 자연 현상과 생체 리듬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던 라이프스타일이 왜 분단위 초단위로 시간을 맞추는 오늘날의 방식으로 바뀌었을까요? 동기화가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향상하기 때문입니다. 근대적 생산이란 구성원들이 호흡과 리듬을 맞춰야 합니다. 그것은 정교한 군무와도 같습니다. 시간의 리듬에 따라 정확하게 제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시스템은 혼란에 빠집니다. 새로운 시간 패러다임이 절실해 졌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간 준수의 규칙을 산업 현장에 적용한 극적인 사례가 19세기 초 뉴욕에서 등장했습니다. 시간관념을 강화시킨 계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철도의 시간표가 나오기도 훨씬 전이었습니다. 당시 미국과 영국 간에는 해상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는데, 뉴욕은 주변의 여러 도시들, 특히 펜실베이니아와 거점 항구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항구끼리는 물론 해운 회사들 간에도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당시 증기선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범선, 즉 돛단배가 유일한 운송수단이었죠. 대서양이 태평양보다 작은 바다이기는 해도 뉴욕에서 리버풀까지는 5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였습니다.
당시 뉴욕을 거점으로 한 해운사 중 블랙볼 라인이라는 회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의 파트너였던 벤자민 마샬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매월 1일 아침에 출발하는, 영어로 packet이라고 하는 “정기선”을 운항하자는 것이었는데요. 이것은 매우 대담하고 무모해 보이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지금은 정기 운항이라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들리지만, 19세기 초에는 그런 방식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배들은 승객과 화물이 일정수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채워지면 운행을 했지요. 때문에 날짜를 못 박는 것은 파도나 기후의 불확실성은 물론, 여객과 화물의 불확실성을 떠안는 일이었습니다. 만약 출발일에 승객이나 화물이 거의 없다면, 그래도 빈 배를 출항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죠.
벤자민 마샬이 어떤 경로로 정기선의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는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민자로서 미국의 면화와 영국의 면직물을 교역하는 무역상 경험을 오래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면화 농장주와 면직물 공장주의 마음을 헤아렸을 것입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자신의 산출을 언제 출하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필요한 원자재를 언제 확보할 수 있는지 미리 안다면, 계획을 짤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날짜가 동요한다면, 마치 흔들리는 무대 위에서 정확한 동작을 할 수 없듯이 계획도 합리화도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승객과 화물이 없을 위험은 어쩌면 정기선이 없기 때문에 더 증폭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배가 언제 출항할지 모르니까, 고객도 자신의 계획을 특정 일자에 맞출 수 없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날짜가 미리 정해진다면, 그들은 이 날짜를 타깃으로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날짜에 빈 배로 출항할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두 사람이 만날 때 둘 다 움직이면 영원히 빙빙 돌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이 정해진 장소에서 멈춰 있다면 만남의 가능성은 크게 높아집니다. 벤자민 마샬은 바로 자신이 특정 지점에 멈춰 있겠다고 선포한 것입니다.
물론 정기 운항의 아이디어는 누구나 바로 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관행과 사고방식이 갖는 타성은 의외로 집요했습니다. 빈 배로 출항할 수도 있다는 염려가 경쟁자들을 주저하게 했고 그동안 블랙볼 라인은 확고한 선발자 이익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블랙볼 라인만의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뉴욕은 펜실베이니아 등 다른 항구를 확실하게 제치고 대서양 무역의 거점 항구가 되었습니다. 더 큰 변화는 미국의 남부와 북부 간에 일어났습니다. 면화농장이 집중된 남부는 북부의 항구를 거치지 않고 직항 항로를 개척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유통의 혁신을 달성한 뉴욕항이 멀찌감치 앞서 감에 따라, 남부는 유통을 포기하고 생산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것이 상업, 제조업 중심의 북부와 농업 중심의 남부라는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후일 남북전쟁의 승패까지 결정하는 먼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최근 혼돈의 환경에서 경쟁할 때는 기존 규칙을 준수하는 것보다 규칙을 파괴하고 더 나아가 새로운 규칙을 창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벤자민 마샬의 정기선은 오늘날의 눈으로 보아도 탁월한 전략입니다. 그의 혁신은 증기선과 같은 기술적 혁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매월 1일 출발”이라는 규칙의 창조는 위대한 과학자나 발명가의 업적에 못지않은 대담하고 창의적인 것이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놀라운 기술적 혁신의 연속이지만, 이러한 기술이 적용되고 운용되는 과정에서 무수한 규칙들이 생성 소멸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를 꿰뚫을 수 있는 새로운 규칙의 가능성이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규칙의 변화를 통해 게임 체인저가 되는 전략을 깊게 고민해 볼 때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