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PEOPLE

시멘트 발명자, 존 스미턴

biumgonggan 2021. 8. 2. 10:46

산업혁명에서 쓰인 ‘혁명'이라는 표현은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느낌을 줍니다. 천천히 단계적으로 변하면 혁명에 어울리지 않죠. 과거 러시아와 동유럽 국가들이 사회주의에서 시장경제로 개혁을 추진할 때 다음과 같은 격언이 회자되었습니다. “골짜기를 두 번에 나눠서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러나 혁명의 과정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1차 산업혁명을 “증기 혁명" 즉 증기기관이 세상을 바꾼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이 도입되기 전에이미 혁명은 시작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은 한 번의 도약이 아니라 두 번의 도약으로 나뉩니다. 그 첫 번째는 영국의 경제학자 앤드루 틸레코트가 표현한 대로 “스미턴 혁명" 즉 오늘 살펴볼 존 스미턴이 이끈 철제 수차의 도입이었습니다. 존 스미턴은 1724년에 법률가 집안에 태어났지만 어렸을 때부터 과학 기술에 관심이 높아 토목건축 기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근대 건축의 핵심 기술인 시멘트의 발명자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목제 등대를 보수하는 과정에서 시멘트를 발명했는데, 여기서 소재의 중요성에 눈뜨게 됩니다.

 

시멘트의 발명도 대단한 업적이지만 산업혁명의 트리거가 된 것은 수차의 개량이었습니다. 수차는 산업혁명 이전부터 중요한 동력원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물레방아도 하나의 수차죠. 수차는 인력과 축력을 제외한 당시의 거의 유일한 에너지원이었습니다. 그러나 효율이 매우 낮고 특히 자연조건의 제약이 많아서 뭔가 새로운 동력원이 필요한 상황이었죠. 이때 “제임스 와트가 나타나 수력의 시대를 마감하고 증기의 시대를 열었다”라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과연 이렇게 명쾌하게 진행되었을까요? 근대적 증기기관은 산업혁명보다 훨씬 전인 1705년에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토머스 뉴커먼이 발명한 이 기계는 석탄을 너무 많이 소모했고, 효율도 낮았습니다. 구기술인 수차와 신기술인 증기기관, 과연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요? 스미턴의 선택은 수차였습니다. 스미턴은 등대의 소재를 바꿨던 것처럼, 수차의 소재를 바꿔보자는 착상을 합니다. 당시 제철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하여 양질의 철을 사용하기 쉬워졌습니다. 철제 수차가 스미턴 혁명의 핵심 기술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데자뷔처럼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거론되는 증기선과 범선의 경쟁 이야기 말입니다. 신기술인 증기선이 나타났을 때 구기술인 범선에 돛을 과도하게 달아 결국 배가 쓰러지고 말았죠. 목제 수차를 쇠로 만드는 것과 범선에 돛을 늘이는 것은 같은 얘기가 아닐까요?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스미턴은 수차를 철제 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철저한 실험을 통해 치밀하게 세부를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수차의 효율은 그가 활동한 30년 동안 5배나 향상되었습니다. 이것은 지지부진하던 증기기관의 개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과였습니다. 수차는 농업과 광업뿐 아니라, 당시의 성장동력이던 면화 산업에 이르기까지 주력 에너지원이 되었습니다.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아크라이트의 수력 방적기가 바로 수차를 이용한 기계 설비입니다. 너무 많이 달린 돛이 부작용을 일으켰듯이 수차도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수차가 힘차게 돌려면 물의 낙차가 중요한데, 낙차는 강의 상류로 갈수록 커집니다. 결국 공장이 산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자동차도 철도도 도로포장도 없었던 당시의 육상 교통으로는 제품의 운송이 불가능했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물 길, 즉 운하였는데, 비탈진 길을 배가 올라가려면 갑문이라는 시설이 필요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가는 것입니다.

 

스미턴은 토목 기사로서 운하 건설에도 큰 활약을 합니다. 현존하는 운하와 갑문의 모습은 당시 영국 엔지니어들의 불굴의 의지와 개척정신을 보여줍니다. 런던과 브리스톨을 잇는 케언힐 운하는 약 3km 거리에 29개의 갑문을 설치한 인간승리의 현장입니다. 배는 스물아홉 계단을 힘겹게 올라 70미터를 상승합니다. 이러한 노고가 있었기에 수차는 산업혁명을 끌고 가는 견인차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스미턴은 왜 증기기관이 개량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제임스 와트가 해결책을 내기까지 거의 1세기가 걸렸습니다. 스미턴은 이 시간을 그냥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구기술인 수차에 신기술인 제철을 결합했습니다. 이것은 혁신에 대한 저항이 아닙니다. 혁신의 길에 징검다리를 놓은 것입니다. 한 번의 큰 점프로는 불가능했을 도약을 두 번의 점프로 나눈 것입니다. 산업혁명은 스미턴과 와트의 이어달리기가 된 것이죠. 신기술과 구기술은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의 추격, 추락, 추월 전략>의 저자, 이근 교수는 지나치게 신산업, 신기술만을 주목하는 경향에서 벗어나 이미 존재하는 기술들의 융합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속성장이 몸에 밴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에 목말라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만 추종하고 기존의 것을 무시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산업혁명의 제1막에서 스미턴의 신구 결합 전략은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스미턴 혁명”의 성취는 이후 증기기관 시대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증기기관이 등장한 뒤 수차와 운하는 빛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지만 그것은 추방이나 몰락이 아니라, 큰 공로를 세운 뒤의 영예로운 은퇴였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신기술이 선보이는 오늘날에도 이 원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선 현재 보유한 기술부터 돌아보십시오. 신기술의 동향과 구기술의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변화의 방향을 감지하는 선구안을 길러 가시기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