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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

biumgonggan 2021. 8. 1. 23:19

“쿠데타 실패는 신의 선물이다. 사형제를 부활시키고 반대파를 박멸하겠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폭주가 시작됐습니다. 2016년 7월 15일 발생한 6시간짜리 쿠데타를 진압한 그는 반대파 5만 명을 숙청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노골적 장기집권 야욕을 드러내며 ‘21세기 술탄’이 될 준비에 돌입했는데요. 지지부진한 이슬람 국가(IS) 소탕과 시리아 난민 문제로 가뜩이나 불안한 중동 정세는 에르도안의 독재로 더 큰 위험에 빠졌습니다.

 

1954년 이스탄불에서 태어난 에르도안은 길거리에서 사탕과 생수를 팔며 고학한 자수성가형 정치인입니다.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뽑혔고 2001년 정의개발당(AK)을 창당한 후 2003년 총리에 올랐죠. 경제 성장 공을 앞세워 2007년, 2011년 잇따라 재집권하며 최초의 3선 총리가 됐는데요. 취임 당시 3000억 달러였던 터키 GDP를 8000억 달러대로 늘렸고 유럽연합(EU) 가입 협상도 시작했죠. 그는 터키의 국부 겸 초대 대통령인 케말 파샤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고 전 세계가 그를 ‘이슬람과 시장경제를 잘 융합한 지도자’로 칭송했습니다. 독실한 수니파 신자인 그는 3선 총리가 된 후 여성 히잡 착용, 공공장소에서의 애정표현 금지, 주류 판매 규제 등 강력한 이슬람 원리주의 정책을 폈는데요. 이에 서구 문물에 익숙해진 도시 엘리트, 1923년 터키 건국 때부터 정교분리 정책을 주도해온 군부와의 갈등이 커졌죠. 4선 총리를 금지한 정의개발당 당규 때문에 에르도안은 2014년 8월 대통령에 취임해 장기집권을 시도합니다. 내각제 국가인 터키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유명무실한데요. 이에 그는 미국식 대통령제로 개헌을 시도하며 언론, 사법, 군경의 반대파를 거세게 탄압했죠.

 

쿠데타 주동자는 터키 군에서 법률자문을 담당하던 무하렘 코세 대령과 젊은 군인 수십 명입니다. 반면 쿠데타를 진압한 사람들은 에르도안을 지지한 일반 국민들이었죠. 흔히 독재자의 전형처럼 여겨지는 군인 출신 정치인이 왜 터키에서는 개혁적 성향을 띠는 걸까요? 또 터키 국민은 에르도안의 독재를 알면서도 왜 군부의 탱크를 맨몸으로 막아섰을까요? 이는 터키 근대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1299년 등장한 오스만 왕조는 1453년 동로마를 멸망시킨 후 약 500년 간 중동, 중부 유럽, 북아프리카에 걸친 대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섰다 영토 대부분을 잃고 2류 국가로 전락하자 케말 파샤를 포함한 청년 장교들이 쿠데타로 만든 공화제 국가가 오늘날의 터키죠. 케말은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면 강력한 서구화가 필요하다며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고 히잡 금지, 여성 참정권, 라틴알파벳 사용 등 근대화 정책을 폈는데요. 케말 노선을 충실히 계승한 군부는 세속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대립해왔죠. 문제는 세속주의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겁니다. 자본가, 대도시 엘리트, 유럽에 가까운 서부는 근대화 혜택을 유감없이 누렸지만 저소득층과 동부 지역민은 소외됐죠.

 

이에 그는 저소득층을 위한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했는데요. 생필품인 빵과 차(茶) 값을 최대한 낮추고 자동차와 고급 가전제품 세율을 엄청나게 높였습니다. 반대파 탄압, 에르도안 일가족의 비리와 사치, 7000억 원을 쓴 대통령 관저 건설, “양성평등은 자연 이치에 어긋난다” 등 각종 막말에도 13년 집권이 가능했던 이유죠. 이번 쿠데타로 정적들이 대부분 체포돼 대통령제 개헌의 걸림돌도 사라졌습니다.

 

에르도안의 독재 강화로 미국과 유럽연합의 고민도 깊어졌는데요. 동서양이 교차하는 터키는 이슬람 국가 IS의 거점인 시리아 및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난민이 유럽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죠. IS 소탕, 난민 통제를 위해선 터키와의 협력이 꼭 필요하지만 쿠데타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는데요. 쿠데타를 빌미로 독재를 강화하려는 에르도안을 지지하기도, 그와 대립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에 빠진 겁니다. 에르도안은 이번 쿠데타의 배후로 자신의 정적으로 1999년부터 미국에서 망명 중인 이슬람 학자 펫훌라흐 귈렌을 지목했는데요. 귈렌의 송환을 두고 미국과 대립하고 있습니다. 나토(NATO)의 대러시아 방어선인 터키가 최근 러시아와 두드러지게 친해진 것도 서방의 고민인데요. 쿠데타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가장 먼저 에르도안에 전화를 걸어 그를 격려했고 정상회담도 제안했죠.

 

EU가 사형제 실시 국가를 거부한다는 걸 알면서 그가 사형제 부활을 공언한 건 신정일치 국가로의 회귀로도 볼 수 있습니다. 터키가 이란식 신정일치 국가를 추구하면 가뜩이나 세계의 화약고인 중동 정세는 더 불안해질 수밖에 없죠. IS 대원의 잠입, 소수민족 쿠르드 족의 분리독립 요구로 터키가 테러 빈발 지역이 됐다는 점도 중동 불안을 가중시킵니다. 2016년 6월 28일 이스탄불 공항 테러를 포함해 2016년에만 7차례 테러가 발생했고 수백 명의 사상자가 났죠. 경제도 휘청이고 있는데요. 리라화 가치는 연일 하락세에 GDP의 4%를 차지하는 관광업도 직격탄을 맞았고 국가신용등급도 강등됐죠. 결국 정정불안의 최대 피해자는 터키 국민인데요. 터키가 이 혼란을 수습하고 오스만 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도 터키 정국을 주시해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