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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런던 시장이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 런던 시민에게 감사합니다.” 2016년 5월 5일 기독교 전통이 강한 유럽 최대 도시 런던에서 최초의 무슬림 시장이 탄생했습니다. 파키스탄계 정치인 사디크 칸인데요.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 유럽 중소도시에서 무슬림 시장이 나온 적은 있지만 선진국 수도의 무슬림 시장은 처음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2015년 파리 테러와 시리아 난민 사태로 전 유럽에 이슬람 공포가 만연한 오늘날 왜 1400만 런던 시민은 그를 선택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사디크 칸은 1970년 영국 런던에서 가난한 파키스탄 이민자 가정의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작고한 아버지는 버스 운전기사, 어머니는 재봉사였고 무려 10명의 가족이 방 세 칸짜리 좁은 아파트에서 부대끼며 살았죠. 칸은 어려서부터 신문배달과 막노동을 하며 돈을 벌었는데요. 불과 15세에 노동당에 가입할 정도로 야심도 남달랐습니다. 북런던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인권 변호사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정치에 눈떴습니다. 2005년 하원의원에 뽑혔고 뛰어난 언변을 무기로 당시 노동당 내각을 이끌던 고든 브라운 전 총리의 눈에 들었습니다. 브라운 전 총리는 2008년 불과 38세인 그를 지방자치부 차관으로 발탁했는데요. 무슬림이 영국 내각에 입성한 첫 사례였습니다. 비록 2010년 총선 패배로 노동당은 야당이 됐지만 그는 예비 내각의 그림자 장관 즉 집권하면 내각에 임명되는 내정자 자격으로 여러 요직을 경험했죠.
2015년 9월 노동당의 런던시장 후보가 된 칸은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의 "예스 위 캔(Yes We Can)"을 "예스 위 칸(Yes We Khan)"이라는 문구로 바꿔 본격 선거 운동에 나섰습니다. 초반 판세는 그에게 불리했는데요. 그와 대결한 보수당의 잭 골드스미스 후보가 돈과 권력을 모두 지닌 소위 ‘금수저’였기 때문이죠. 독일계 유대인 금융가 집안에서 태어난 골드스미스는 물려받은 재산만 2억 파운드 우리 돈 약 3600억 원이 넘습니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모두 의원을 지냈죠. 공립학교를 전전한 후 평범한 법대를 졸업한 칸과 달리 골드스미스는 명문 이튼 칼리지와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최상류 층입니다. 두 사람의 부인도 대조적인데요. 칸의 아내 사디야 가 파키스탄계 버스 기사의 딸인 반면 골드스미스의 부인 앨리스는 세계적 금융 재벌 로스차일드 가의 상속녀입니다. 데이비드 캐머런 현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 등 보수당 거물들도 대거 골드스미스를 지원했었죠.
무슬림인 칸이 이런 강력한 상대를 꺾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유권자의 삶과 직결된 두 문제 즉 주거와 교통 문제에서 친(親) 서민 공약을 내놨기 때문인데요. 칸은 저렴한 주택을 더 많이 짓고 지하철과 버스 요금도 동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반면 골드스미스는 재원 마련의 어려움과 서비스 질 하락을 우려해 이를 반대했죠. 두 사람의 주장은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지녔지만 세계에서 가장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 집값에 지친 유권자들은 칸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죠.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1월 런던의 집값은 우리 돈 약 9억 원이며 집세도 평균 500만 원에 달합니다. 지지율 열세에 조급해진 보수당은 급기야 칸의 인종과 종교를 공격했는데요. 칸이 변호사 시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도와줬다고 주장하며 보수 유권자의 '반 무슬림 정서'를 자극한 거죠. 하지만 보수당의 의도와 달리 인종차별이란 여론의 거센 역풍에 직면했고 결국 칸은 약 14% 포인트 차이로 골드스미스를 꺾었습니다. 세계 언론은 전형적인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이긴 칸의 성공 스토리를 한 편의 현대판 동화로 칭송했는데요. 세계 유력 정치인들이 잇따라 그의 당선을 축하했고 ‘무슬림의 미국 입국 금지’ 등 이슬람 혐오 발언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주자까지 “칸의 미국 방문은 가능하다”라고 가세했죠. 하지만 칸은 “이슬람에 대한 트럼프의 무지가 오히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낳는다. 이슬람과 서양의 자유주의적 가치가 양립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트럼프가 틀렸다는 것을 내가 증명해 보이겠다”라고 준엄하게 응수했습니다.
그는 시장에 공식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유대인 대학살 추모식에 참석했습니다. 노동당이 전통적으로 이스라엘이 아닌 팔레스타인을 지지해왔다는 점, 그가 무슬림이란 점을 감안할 때 파격 행보라는 평가가 많은데요. 벌써 일부 언론은 “칸의 첫 발걸음이 유대계로 향했다는 것은 분열과 반목 대신 화합과 실용 노선을 걷겠다는 그의 의지를 잘 드러내 준다. 향후 4년간 시장 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차기 총리 후보군 중 선두 주자가 될 것”이라고 평가합니다. 앞으로도 그의 행보를 주목해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