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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사우디 여성참정권 허용

biumgonggan 2021. 7. 31. 23:13

여성이 운전과 여행을 할 수 없는 여성인권 후진국 사우디에서 2015년 12월 12일 건국 83년 만에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지방선거가 실시됐습니다. 남녀 모두 참정권이 없는 바티칸을 제외하고 여성 참정권이 없었던 마지막 나라, 사우디의 역사적 변화를 이끌어낸 주역이 바로 사우디 인권운동가 겸 여성 사학자 하툰 알파 시 교수입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재정난과 정정불안에 시달리는 중동 맹주 사우디가 왜 이런 변화를 택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알파 시는 1964년 사우디 2대 도시 제다의 수피파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이슬람 신비주의를 일컫는 수피는 신비 체험, 금욕 등을 통해 알라와의 합일을 추구하는 종파인데요. 그의 조상 중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모두 이슬람 지도자 이맘을 역임했을 정도로 그의 삶과 종교를 떼놓을 수 없습니다. 그는 사우디 명문 킹 사우 드대를 거쳐 영국 맨체스터대에서 역사학 박사를 취득한 신여성으로 2008년부터 킹사우드대 역사학 부교수로 재직 중인데요. 유명 경제학자 압델아지즈 아부 하마드와 결혼해 1남 1녀를 둔 워킹 맘이기도 하죠. 학자 알파시의 주 연구 주제는 기원전 2세기경 중동에서 번영했던 나바테아 왕국 및 나바테아 여성의 삶입니다. 그는 이 공부를 통해 622년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창시하기 전 중동 여성들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살았음을 알게 됩니다. 악명 높은 이슬람의 여성 차별이 아랍 전통이나 관습과 무관함을 깨닫고 2005년부터 각종 정치활동, 강연, 기고 등을 통해 여성 참정권 투쟁에 나서죠.

 

사우디가 중동에서 가장 억압적인 여성 정책을 펴는 이유는 초대 국왕 이븐 사우드가 엄격한 이슬람 규율 와하비즘을 건국이념으로 택한 탓인데요. 와하비즘 학자들이 내놓는 이슬람 법 해석 ‘파트와’는 사우디에서 절대적 효력을 발휘하죠. 때문에 명예살인 즉 여성이 가족 명예를 더럽힌다는 이유로 아버지나 오빠가 언제든 딸과 여동생을 죽일 수 있고 처벌도 안 받는 관습이 아직 존재합니다. 2002년 3월엔 메카의 10대 여학생 15명이 화재로 숨졌는데요. 베일을 안 쓴 여자가 학교 밖으로 나오면 안 된다며 종교경찰이 여학생 탈출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이름으로 이런 비상식적 일들이 자행되다보니 여성 참정권은 꿈도 꿀 수 없었죠.

 

알파시는 사우디 최초의 직선제가 도입된 2005년 지방선거 때부터 여성 참정권 허용을 주장했는데요. 정부는 이를 거부했고 2006년 성지 메카 대사원의 여성 입장을 허용해달라는 그의 요청도 막습니다. 하지만 알파시는 시민혁명 ‘아랍의 봄’이 중동을 물들인 2011년 초 ‘나의 조국’이란 뜻을 지닌 여성단체 발라디를 만들어 또 참정권을 요구합니다. 정부가 재차 거부하자 “여성만으로 구성된 지방의회를 만들겠다.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맞섰죠. 그의 집요한 투쟁과 꺾이지 않는 기개에 당시 통치자 압둘라 전 국왕도 두 손을 들었는데요. 사우디 정부는 2011년 9월 “2015년 지방선거의 여성 참정권을 허용한다”라고 밝혔고 4년 후 그 꿈은 현실이 됩니다.

 

선거에서 뽑힌 사우디 여성의원은 20명인데요. 전체 당선자 2016 명의 1% 정도지만 워낙 악조건이 많았던 터라 사우디 여성들은 이를 기적으로 여깁니다. 우선 이번에 유권자로 등록한 여성은 투표 자격이 있는 여성의 2% 뿐인 13만 명으로 남성 유권자의 10분의 1에 불과했고요, 여성 후보도 남성 후보의 13%인 979명에 그쳤죠. 여성 후보들은 남성 유권자 앞에서 선거 유세를 할 수 없어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을 통해서만 자신을 소개하고 공약을 설명해야 했습니다. 이 와중에 일부 남성들은 “악마의 문이 열렸다”며 여성 후보와 유권자를 공공연히 비난했죠. 그런데도 여성 의원 20명이 탄생한 건 사우디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적극 행사했기 때문인데요. 등록했던 여성 유권자 투표율은 82%에 달해 44%를 기록한 남성 투표율보다 배나 되었습니다. 일부 여성들은 투표 후 눈물까지 흘리며 소중한 한 표에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서구 언론은 이번 선거의 이면에 경제난과 후계구도 불안으로 민심을 잃은 사우디 정부가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는 속내가 담겼다고 분석합니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저유가로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는 심각한 경제난에 빠졌는데요. 이 와중에 2015년 1월 취임한 살만 국왕이 지지기반 확대를 위해 군인과 공무원 월급을 대폭 올리고 각종 포퓰리즘 정책을 펴자 재정적자가 GDP의 20%로 치솟았죠.

 

살만 국왕이 80세 노인인데도 확실한 후계자가 정해지지 않은 것도 문제입니다. 서열 2위인 무크린 왕세제도 70세이고, 초대 국왕 이븐사우드가 무려 45명의 왕자와 250여명의 손자를 둔 탓에 뚜렷한 후계구도를 확립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죠. 이 와중에 살만 국왕이 자신의 아들 모하메드 빈 살만을 국방장관으로 발탁하고 권력을 몰아주자 250명에 달하는 3세대 왕자들이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일반 국민은 물론 왕실까지 현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자 여론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여성 참정권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사우디는 오일머니로 쌓은 막대한 부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왔지만 성평등 지수는 아직도 세계 142개국 중 130위에 불과합니다. 사우디 정부의 의도와 관계없이 이번 여성참정권 허용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는 뜻이죠. 사우디 여성이 마음껏 운전과 여행을 즐기고 적극적 사회활동을 하는 날은 언제쯤 올 수 있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