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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평생 동안 다른 사람의 생명을 몇 명이나 구할 수 있을까요? 의사와 같이 특별한 분이 아니라 평범한 일반 사람이라면 단 한 명도 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런데 혼자서 수백 명의 생명을 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을 구한 독일인 사업가 베르톨트 바이츠입니다. 그가 작년 7월 31일 향년 99세로 타계했을 때, 세계 언론은 그의 업적을 기리며 애도했는데요. 사실 그는 사람의 생명만 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업을 부활시키는 기적으로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오늘은 독일을 대표하는 철강회사인 티센크루프 그룹의 명예회장 베르톨트 바이츠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바이츠는 1913년 독일 제민에서 평범한 소시민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의 뜻에 따라 은행원이 되었다가, 1938년에 다국적 석유기업인 로열 더치 셀에서 일하던 중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지요. 26살이었던 바이츠는 군에 가는 대신 나치가 침략한 폴란드의 유전지역 갈리시아의 보리슬라프 공장 관리자가 됩니다. 이곳에서 바이츠는 유대인들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봤는데요. 머리에 총 맞은 아이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를 보기도 했지요. 이때 그는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유대인들을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됩니다. 생각 끝에 묘책을 떠올리죠. 유대인들이 정유공장에 필요한 기술자라고 거짓말을 한 겁니다. 또한 아이들은 집안 곳곳에 숨겨두었죠. 그러다가 큰일이 납니다. 게슈타포가 그를 의심한 거죠.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려다가 자기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츠는 유대인들을 구하려 한 것입니다. 다행히 고향 친구인 SS 장교가 바이츠를 구해주었지요. 이렇게 바이츠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구한 유대인들은 몇 명이나 될까요? 무려 약 800명이나 됩니다. 생명의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죠. 1973년 이스라엘 야드 바셈 유대인 대학살 박물관은 그를 ‘열방의 의인’으로 선정했습니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에게 수여하는 최고 영예인데요. 하지만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다. 단지 사람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에 유대인을 구했을 뿐이다."라고 했죠.
바이츠는 전후에 보험회사를 경영하던 당시 크루프 그룹의 알프레드 크루프 회장을 만납니다. 크루프 그룹은 독일군의 팬저 탱크, 유보트 등 각종 무기를 만든 독일 최대의 철강업체이자 군수업체인데요. 전쟁 중에 공장이 파괴되고 근로자들도 많이 다치거나 사망하면서 크루프 그룹도 타격이 심했습니다. 1945년 매출이 전쟁 직전에 비해 50분의 1 수준인 1억 5천만 라이히 마르크로 떨어졌지요.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1953년, 40살의 바이츠가 크루프 그룹의 경영자가 됩니다.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했을까요?
“전 세계가 미래의 시장이다” 바이츠는 사실 철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세계의 흐름을 읽는 감각은 탁월했습니다. 독일 내수 시장에서는 더 이상 매출을 올릴 수 없는 포화상태로 한계에 다다른 상황. 그가 돌파구로 찾은 것은 해외 시장이었죠. 그는 직접 세계 곳곳을 방문하면서 각 나라와 상업적, 정치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쌓았습니다. 그의 뛰어난 외교술에 1957년 소련을 비롯해서, 1959년 인도, 1961년 브라질, 1976년 중국에 진출하게 되었죠. 바이츠가 글로벌 경영을 진두지휘하면서 크루프 그룹은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그가 은퇴할 당시, 1990년 매출은 1953년에 비해 7배가 됐고 이익은 무려 43배가 되었죠. 한계가 무엇인지 정확히 깨닫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노력을 기울인 바이츠. 그의 열정이 폐허가 된 독일에서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겁니다.
1998년에 크루프와 티센이 합병하여 티센크루프 그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직면한 거죠. 그룹의 매출이 예년의 3/4 수준인 406억 유로로 떨어질 정도였습니다. 이 때, 은퇴한 CEO, 95살의 바이츠가 등장합니다. 바이츠는 크루프 그룹의 전통인 가족적인 기업문화를 지키려고 했습니다. 한 가족인데 다투지 말고 대화로 해결하자는 것이지요. 그 결과 2009년에 노사협력을 위한 ‘에센 선언’을 이끌어 냈고 구조조정이 원만하게 이루어졌지요. 당시 노조 측인 직장평의회 위원장 토마스 쉴렌츠는 “바이츠가 부르면 어느 누구도 거절할 수 없었다”라고 했는데요. 그가 인간적인 면모에서 수십 년 간 두터운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한 것과 같다.” 소중한 생명을 구하고, 독일 경제의 부활과 세계 평화를 위해 기여한 기업가 바이츠. 그가 기적처럼 행한 모든 일들이 인류를 위해 헌신한다는 숭고한 정신에서 비롯된 것 아니었을까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