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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중국 배터리시장 1위 '비야디'

biumgonggan 2021. 6. 9. 13:44

비야디는 미래를 대표하는 업체, 신기한 회사다.”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중국기업 비야디를 두고 이렇게 말했는데요. 버핏은 2008년 2억 3,000만 달러를 투자해 이 회사 지분의 10%를 인수했죠. 버핏의 투자로 비야디 주식은 1년 새 7배로 뛰었고, 중국 갑부 순위 100위권 밖이었던 창업주 왕촨푸 회장은 2009년 350억 위안으로 중국 최고 갑부에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워런 버핏은 왜 비야디에 주목했을까요?

비야디는 1995년에 설립된 휴대폰 배터리 제조업체인데요. 일본 기업이 장악하던 충전지 시장에 도전해 독자기술로 10년 만에 세계 2로 올라섰고, 배터리 기술을 기반으로 자동차 시장에 진출해 5년 만에 세계 최초로 가정에서 충전 가능한 전기자동차를 개발한 입지전적인 기업입니다. 중국 최초로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세계 최고 업적 100대 과학기술기업에서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치고 1위에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창업 당시 고작 20명이었던 직원이 20만 명 이상, 매출액 600억 위안, 순이익 30억 위안이라는 놀라운 성장세는 워런 버핏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죠. 오늘은 “너의 꿈을 세워라”라는 사명과 같이 비야디를 통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 있는 CEO 왕촨푸의 성공 스토리입니다.

1966년 중국에서 태어난 왕촨푸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면서 매우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5명의 누나들은 입 하나라도 덜기 위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집을 갔고, 형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학교를 그만둬야 했는데요. 가족들은 공부를 잘하는 그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도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요. 명문대학인 중난대학 야금 물리화학과에 들어가 4년 동안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 ‘베이징 유색금속 연구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으면서 연구능력을 인정받아 26세라는 젊은 나이에 실험실 부주임으로 파격 승진했죠. 그의 이름이 중국 전역에 알려지면서 27세에는 ‘비커 전지 유한공사’의 사장으로 초빙되는 등 젊은 나이에 승승장구했습니다. 그러다 그의 나이 29세가 되던 1995년 돌연 안정적인 월급쟁이 사장 자리를 던져 버리고 휴대폰 배터리 제조업체 비야디를 창업합니다. 2~3만 위안의 값비싼 휴대폰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을 보고 배터리 수요가 폭발할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인데요. 창업 2년 만인 1997년부터 이름도 없던 무명 기업인 비야디는 일거에 배터리 업계의 무서운 아이로 불리며 매출액 1억 위안 이상을 올리는 중견 기업으로 발돋움 한 이후 3년간 해마다 100% 이상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세계시장 점유율 40%를 달성합니다.

그의 성공에 대해 왕간즈 홍콩 ‘후이야그룹’ 부총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 회장은 보기 드물게 한 우물을 판 사람이다. 대학 때도 배터리, 대학원 때도 배터리, 지금도 배터리 사업에 몰두한 덕분에 성공할 수 있었다”라고 높이 평가했는데요. 당시 세계 휴대폰 배터리 시장은 일본 제조업체들이 쥐락펴락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휴대폰 배터리는 연구개발에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에 다른 중국 업체들은 비싼 로열티를 물어가며 외국 기술을 도입하고 있었죠. 불 보듯 뻔한 실패라며 조롱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하여 사업 초기 직접 연구하고 개발한 제품만 생산·판매하는 전략으로 원가를 절감했습니다. 더불어 원료 및 품질 관리·투자 등의 경영 부문도 직접 관리함으로써 저비용·고효율 체제도 갖췄는데요. 이러한 그의 노력은 1997년 하반기 아시아 외환위기 때 빛을 발합니다. 휴대폰 배터리 수요가 급감해 가격이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신생기업 비야디는 도산하지 않고 버텨낼 수 있었죠. 이후 경기가 회복되면서 필립스, 마츠시타, 소니 등 세계 굴지 업체들로부터 대규모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합니다.

두 번째 성공 비결은 과감하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2000년 초반 배터리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왕촨푸는 니켈수소 전지와 리튬 전지 부문의 연구에도 나섭니다. 당시 이 분야는 엄청난 설비투자와 연구개발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에 글로벌 배터리 업체들이 도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었죠. 그러나 그는 100억 위안에 가까운 엄청난 자금을 투자해 최고 인재와 설비를 갖춘 다음, 연구 개발에 매진하는데요. 2011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리튬이온 배터리 35만 개, 니켈수소 배터리 40만 개를 생산해, 무려 60% 이상의 물량을 수출하고 있죠. 또한 2003년에는 자동차 회사로서 이름도 민망할 만큼 형편없던 ‘친촨 자동차’ 지분을 77%를 인수하며 자동차 사업에도 뛰어듭니다. 경영진들은 오토바이보다 하나 나을 것 없는 자동차 만드는 회사를 인수해 모기업까지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반대하는데요. 왕촨푸는 이렇게 설득합니다. “자동차 사업은 배터리 사업과 관계도 많고 설사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습니다. 해보지도 않고 실패를 걱정하면 어떻게 발전하겠습니까?” 일일이 경영진을 설득하며 시작한 자동차 사업은 초기에 배터리 사업에서 번 수익을 자동차 사업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 투입되는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업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이브리드 자동차, 전기자동차, 전기버스 등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2009년에는 전년대비 판매 증가율 160%라는 기록을 낳았습니다. 또한 2010년에는 5인승 전기자동차 E6가 미국 시장에서 도요타 프리우스의 강력한 대항마로 기염을 토한 바 있습니다.

마지막 성공 비결은 기술자에 대한 신앙에 가까울 정도의 애정입니다. 그가 늘 입에 올리는 “기술자들은 내 자본이다. 나는 앞으로 직원을 30만 명까지 늘릴 생각이다. 이 가운데 10%는 기술자로 채울 것이다.”라는 말에서 잘 알 수 있는데요. 실제로, 왕촨푸는 인재 채용에 있어서 이러한 생각을 적극 반영하고 있습니다. 바로 ‘301 전략’입니다. 301 전략은 중국 엔지니어 300명이 글로벌 선진기업의 핵심인재 1명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상위 20%의 집단이 전체 매출의 80%를 만들어 낸다는 파레토 법칙의 상식을 깨뜨리는 개념이죠. 어떤 이들은 왕촨푸가 기존 상업 질서와 게임 규칙을 얕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는 “중국의 젊은 기술자 실력이 유럽 기술 전문가들보다 뛰어나 어떤 물건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 비야디가 만든 제품은 다른 기업에서 만든 비싼 제품보다 더 오래 쓸 수 있다”며 자신의 믿음에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동안 잘 나가던 비야디도 지난 3년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실적 부진으로 순이익이 97% 급감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비야디 탓에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체면을 구겼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인데요. 하지만 최근 왕촨푸 회장의 적극적인 구조조정 노력에 힘입어 지난 1년간 주가가 133% 치솟는 등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고, 실적 호전 소식을 들은 버핏도 비야디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고 전해집니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을 나는 실행하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나는 감히 생각하려 한다”는 왕촨푸. 최근 주춤했지만 無에서 有라는 기적을 일군 그의 경이적인 행보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