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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서리가 몰아치고 눈과 비가 온다고 해도 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아야 한다. 이 말은 중국 화빈그룹 옌빈 회장의 좌우명입니다. 화빈그룹의 경영철학이기도 한데요. 화빈그룹은 음료, 스포츠, 레저 및 무역, 호텔, 물류, 골프장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 부호 순위를 보면, 옌빈 회장의 자산은 중국의 부호 중 6를 차지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자산을 가진 옌빈 회장이 어렸을 때 국수 한 그릇 먹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가난했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무일푼에서 세계적인 부호로 거듭난 옌빈 회장의 성공스토리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옌빈 회장은 1954년 중국 산둥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중학교도 겨우 마칠 수 있을 정도였죠. 고구마로 배를 채우며 1년간 일해 번 돈이 고작 92위안, 한국 돈으로 약 1만 5,000원에 불과했답니다. 가난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열여덟 살 소년은 문화혁명이 일어나던 때에, 고향을 떠나 무작정 태국의 방콕으로 밀입국합니다. 하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죠. 끼니를 때울 돈이 없어 피를 팔아 근근이 끼니를이어나갔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옌빈이 할 수 있는 일은 맨몸으로 할 수 있는 막노동 정도였습니다. 옌빈은 차이나타운의 건설현장에서 한 작업반장을 만났습니다. “너 보아하니 힘 좀 쓰게 생겼구나. 내 밑에서 일해 볼래? 일당은 얼마면 되겠니?”하고 작업반장이 말했습니다. 옌빈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돈은 필요 없어요. 밥만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면 돼요.” 어릴 때부터 성격도 야무지고 눈치도 빨랐던 옌빈은 부지런하기까지 해서 곧바로 십장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겨우 겨우 아침 8시에 일어날 때, 옌빈은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숙소와 화장실 청소를 마쳤을 뿐 아니라 작업장에 나갈 준비까지 철저하게 했죠. 이런 옌빈을 신뢰한 작업반장은 옌빈에게 경리까지 맡겼습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자, 옌빈은 나만의 사업을 가져보자, 하는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해서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자금 밑천을 모았는데요. 하지만 사업을 하기엔 자금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었죠. 그는 이 난관을 어떻게 타개했을까요? 부지런하면서도 근면 성실한 태도를 높이 산 화교들이 옌빈을 믿고 사업자금을 제공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1984에 설립된 것이 화빈그룹입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철저한 준비성과 부지런함으로 사람들로부터 신뢰라는 가치를 얻은 것, 이것이 옌빈의 첫 번째 성공비결입니다.

두 번째 성공비결은 늘 새로운 기회를 찾아 과감히 도전하는 정신입니다. 화빈그룹을 세운 옌빈은 처음엔 길거리나 가정에 버려진 캔을 수집해 수출하는 소규모 국제 무역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서자 그는 새로운 사업을 찾게 되는데요.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태국의 음료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박카스와 비슷한 이 기능성 음료수는 태국에서 매년 10억 개가 넘게 팔릴 정도로 대히트중인 인기상품이었죠. 반면, 당시 중국인들은 물 대신 차를 주로 마시고 있었습니다. 중국에는 기능성 음료수 시장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상황이었죠. 옌빈은 이 음료수가 건강을 중시하는 중국사람에게도 통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 최초의 기능성 음료수인 홍뉴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그는 1995년, 중국 선전에 공장을 짓고 1998년에는 베이징에도 공장을 추가 건설하면서 홍뉴 그룹을 만들어 사업에 전념했습니다. 그 결과, 이젠 중국 기능성 음료시장의 80%를 차지할 만큼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레드불이라고 불리는 홍뉴는 현재 중국은 물론 세계 30여개 나라에서 팔리고 있는데요홍뉴 하나로 연간 16,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기회를 포착해 사업화하는 그의 끈기와 노력, 바로 이것이 옌빈의 두 번째 성공 비결입니다.

세 번째 성공 비결은 자신의 선택을 믿고 뚝심 있게 밀고나가는 추진력입니다. 홍뉴로 베이징에 진출한 직후인 1999년, 옌빈 회장은 사원들의 교육을 위해 연수원 용지를 물색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베이징 서북쪽 외곽에 있는 창핑구의 한 농장이 적당하다고 판단했지요. 그러나 그가 사들인 농장은 고비 사막과 가까워서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일년내내 황사가 심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나무를 심어 녹지로 가꾸면 된다고 생각해 뚝심있게 나무를 계속 심었죠. 그러자 황폐했던 농장이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녹지 천국으로 변모했습니다. 그때는 중국에서도 골프붐이 일어나기 시작할 때였는데요. 옌빈은 농장이 녹지로 바뀌자 골프장을 세워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룹의 부동산 사업을 담당하는 부하 임원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며 고개를 가로저었죠. “베이징에서 잔디를 잘 기르는 것은 아이를 키우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무와 잔디는 다른 얘기예요. 불가능합니다.”라며 결사반대했습니다. 여러분, 그 부하직원이 왜 그렇게 반대했을까요? 잔디의 뿌리는 고작해야 25cm 정도입니다. 연약한 잔디 뿌리가 잘 뻗어 내리게 하기 위해서는 유기질이 풍부한 토질이어야 하고 햇볕을 잘 받게 주변에 나무 그림자가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농장 토질은 황사바람 부는 메마른 땅이었고, 이미 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 까닭에 이런 곳에서 잔디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불가능해 보였죠. 잔디의 까다로운 생육조건을 모두 맞추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옌빈 회장은 “그래도 한 번 해봐. 안 돼도 자네를 해고하지는 않겠네.”하며 막무가내로 일을 추진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잔디는 뿌리를 내리지도 못하고 곧 죽어버렸습니다. 죽은 잔디를 뽑아내고 새 잔디를 심기를 몇 차례. 잔디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옌빈의 눈앞에 꿈에 그리던 녹색융단이 펼쳐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0년대 초에 화빈 골프장, 화빈장 위안이 세워진 것입니다. 화빈장 위안의 회원권 가격은 베이징의 다른 골프장보다 최대 5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무려 150만 위안, 우리나라 돈으로는 2억 7000만 원에 달하죠. 이렇게 가격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인기가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골프장은 부지가 무려 400만 제곱미터, 여의도 면적의 1.5배에 달하는데요. 이 넓은 부지에 골프계의 전설인 잭 니클라우스가 설계했습니다. 주변에 5성급 호텔과 체육관광 레저 등 복합 테마파크를 갖추어 베이징 최고급 골프장이 된 것입니다. 화빈장 위안은 이제 세계 500대 기업의 관계자들만 전체 회원의 47%에 이르고,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포함해서 VIP들이 즐기는 최고의 사교장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가능성을 믿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돌진한 힘! 두둑한 배짱과 끈기로 옌빈은 결국 성공을 이뤄냈습니다.

최근 옌빈 회장은 또 다른 새로운 꿈을 찾고 있습니다. 그린산업과 의료분야 산업을 새로운 미래 성장 동력사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데요. 끊임없이 새로운 꿈을 찾아 중국은 물론 해외 파트너들과의 협력사업도 활발히 전개해 나가고 있지요. 옌빈 회장은 전용 비행기를 몰고 한국 제주도 골프장으로 와서 라운딩을 할 정도로 한국을 자주 방문하는 지한파인 데요. 사실 방한의 가장 큰 목적은 협력사업에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1년 4월 한국의 한 병원과 공동으로 화빈장 위안에항노화 건강검진센터를 설립한 것입니다. 화빈 골프장을 찾는 0.1%의 고객을 위한 전략인데요. 건강관리와 도심 휴양을 합친 신개념의 의료서비스를 도입하는 것이지요. 골프장 회원이라는 자신의 자산에 한국의 뛰어난 의료기술을 접목시켜서 융합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합니다. 무일푼에서 세계적인 부호로 거듭난 옌빈 회장, 남다른 부지런함은 기본이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 그리고 뚝심 있게 밀고 나가는 추진력. 이것이 바로 옌빈의 3대 성공 비결인데요. 앞으로 펼쳐질 그의 새로운 꿈과 도전이 어떤 모습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감사합니다.